1997년 11월 이십 몇일의 밤을 나는 기억한다.
그날 나는 길동에서 술을 먹고, 친구와 함께 자주가는 야식집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당시 경제 부총리였던 임창용이 나와 IMF 구제금융이라는 걸 신청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뭘 알았나?
우리나라 이제 망하는거야?
글쎄 나도 몰라....
이런 대화만 오갔다.
그날은 꽤 추웠으며, 길동에서 성내동 집으로 오는 10여분의 거리를 종종걸음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두번째 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율은 달러당 2000원을 순식간에 넘었다.
환전을 미리 해놓은 나는 앉아서 두배쯤의 돈을 벌었다.
달러부족으로 인해 생긴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을 금을 내 놓았고
그 당시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오렌지족(돈 펑펑 쓰는 부잣집 자제를 당시에는 오렌지족이라고 했다.)도 상상못하는 행위.
해외여행객=매국노였다.
하지만 당장 인도를 가지 못하면 내 명에 못 죽을것 같던 나는....결국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을 거쳐 인도로 가는 비행기는 반쯤 비어있었고, 한국인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리고 6개월후 한국에 돌아왔다.
김포에서 내리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하고, 가정이 파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독기어린 표정으로 무언갈 향해 달려갈것 같던 그 표정은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로 인한 일격.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고
그 어떤 조직도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채 각개 전투만을 펼쳤다.
사람들은 수없이 잘렸지만,
우리는 고작, 나라나 체제가 아닌 정권만을 그것도 오차 범위내의 근소한 차로,
극우진영과 연합까지 해서야 바꿀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우리는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집단으로 대응해도 이길까 말까한 시스템과의 싸움에, 각개약진으로 돌파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80년대의 빛나는 유산인
집단 지성과 집단 해결의 방식을 모두 놓아버리고,
토플과 토익, 학점의 수렁.
모두가 경쟁자인 시대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만 행복할 수 있는(그러나 언제 뒤쳐질지 늘 걱정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촛불 집회의 그 어떤 모습보다.
우리가 세대와 계급적 이익을 뛰어넘어, 사회적 불의에 집단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능력을 부활시켰기에
이를 긍정한다.
시청으로 나가보라.
20대와 40대가, 전혀 모르는 그들이 단지 거리에 섰다는 동지애적 애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20대는 40대를 꼰대라 부르지 않으며
40재는 20대의 말을 경청한다.
아이를 보행기에 태우고 마실나오듯 집회를 나온 가족들을 보며.
애기 이쁘네요. 하면서 볼을 만져도
이제 괜찮은 세상이 오고 있다.
나같은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지나가면
수고한다는 모르는 사람들의 격려가 들려온다.
나와 그들은 실제 모르는 사람이고
과거의 경우를 봤을때, 모르는 사이에 서로 말을 거는 일은 '도를 믿으세요?' 나부랭이나 노방전도하는 기독교 조직을 빼고는 없었다.
밤새 김밥을 말아오는 사람들
양이 부족하면 알아서 김밥의 반을 꽉 깨물어 먹고, 남은 반을 옆사람에게 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 해방을 본다.
아파트값 짬짜미가 아닌 긍정적 의미의 공동체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굳건한 믿음이 지금 시청을 중심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나는 다시 세상을 긍정한다.
우리는 이제서야 IMF의 망령을 극복해 가고 있다.
시위는,
거리는,
우리가 책에서 배우는 그 어떤 것보다 엄청난 진리를 일깨운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운 이명박이여.
당신은 유다가 배신했기에 예수가 존재할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유다같은 존재다.
마이 배웠다. 이제 그만 내려와라.
그날 나는 길동에서 술을 먹고, 친구와 함께 자주가는 야식집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당시 경제 부총리였던 임창용이 나와 IMF 구제금융이라는 걸 신청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뭘 알았나?
우리나라 이제 망하는거야?
글쎄 나도 몰라....
이런 대화만 오갔다.
그날은 꽤 추웠으며, 길동에서 성내동 집으로 오는 10여분의 거리를 종종걸음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두번째 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율은 달러당 2000원을 순식간에 넘었다.
환전을 미리 해놓은 나는 앉아서 두배쯤의 돈을 벌었다.
달러부족으로 인해 생긴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을 금을 내 놓았고
그 당시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오렌지족(돈 펑펑 쓰는 부잣집 자제를 당시에는 오렌지족이라고 했다.)도 상상못하는 행위.
해외여행객=매국노였다.
하지만 당장 인도를 가지 못하면 내 명에 못 죽을것 같던 나는....결국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을 거쳐 인도로 가는 비행기는 반쯤 비어있었고, 한국인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리고 6개월후 한국에 돌아왔다.
김포에서 내리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하고, 가정이 파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독기어린 표정으로 무언갈 향해 달려갈것 같던 그 표정은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로 인한 일격.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고
그 어떤 조직도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채 각개 전투만을 펼쳤다.
사람들은 수없이 잘렸지만,
우리는 고작, 나라나 체제가 아닌 정권만을 그것도 오차 범위내의 근소한 차로,
극우진영과 연합까지 해서야 바꿀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우리는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집단으로 대응해도 이길까 말까한 시스템과의 싸움에, 각개약진으로 돌파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80년대의 빛나는 유산인
집단 지성과 집단 해결의 방식을 모두 놓아버리고,
토플과 토익, 학점의 수렁.
모두가 경쟁자인 시대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만 행복할 수 있는(그러나 언제 뒤쳐질지 늘 걱정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촛불 집회의 그 어떤 모습보다.
우리가 세대와 계급적 이익을 뛰어넘어, 사회적 불의에 집단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능력을 부활시켰기에
이를 긍정한다.
시청으로 나가보라.
20대와 40대가, 전혀 모르는 그들이 단지 거리에 섰다는 동지애적 애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20대는 40대를 꼰대라 부르지 않으며
40재는 20대의 말을 경청한다.
아이를 보행기에 태우고 마실나오듯 집회를 나온 가족들을 보며.
애기 이쁘네요. 하면서 볼을 만져도
이제 괜찮은 세상이 오고 있다.
나같은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지나가면
수고한다는 모르는 사람들의 격려가 들려온다.
나와 그들은 실제 모르는 사람이고
과거의 경우를 봤을때, 모르는 사이에 서로 말을 거는 일은 '도를 믿으세요?' 나부랭이나 노방전도하는 기독교 조직을 빼고는 없었다.
밤새 김밥을 말아오는 사람들
양이 부족하면 알아서 김밥의 반을 꽉 깨물어 먹고, 남은 반을 옆사람에게 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 해방을 본다.
아파트값 짬짜미가 아닌 긍정적 의미의 공동체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굳건한 믿음이 지금 시청을 중심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나는 다시 세상을 긍정한다.
우리는 이제서야 IMF의 망령을 극복해 가고 있다.
시위는,
거리는,
우리가 책에서 배우는 그 어떤 것보다 엄청난 진리를 일깨운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운 이명박이여.
당신은 유다가 배신했기에 예수가 존재할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유다같은 존재다.
마이 배웠다. 이제 그만 내려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