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2002년), 파키스탄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면서 전세계 사람들의 똥꼬털에 고드름을 맺게 했던 인도(이때 배치한 국경병력은 아직도 자대로 귀환 안하고 국경에서 떠돌며 파키스탄과 총싸움을 일삼고 있다). 먼가 잠잠하게 해결 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느닷없는 <인도열차습격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개요는 담과 같다.

‘아요디야라는 데서 힌두사원 재건립 시위를 벌이고 지들 집으로 기차타고 귀환하던 극우 힌두교도들이 지들 집 거의 다 온 지점인 고드라 역 근처에서 무슬림(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습격을 당해, 기차 안의 얼라 15명 포함 57명이 죽고 기차는 홀랑 불에 타 버려따.’ (주1. 한겨레신문내용 참조)

주유소 습격이야 돈이 필요해서 한 짓이란 걸 통밥으로 딱 알텐데 아요디야인지 에헤디야인지 이상한 지명이 막 나오는 인도의 기차 습격은 왜.. 머땀시.. 워떤 빽그라운드로 일어난 것인지 신문기사만 가지고는 당췌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해서 본 특파원이 나섰다.

이제부터 인도 종교분쟁의 가장 큰 뇌관 중의 하나인‘아요디야'의 정체를 환타가 홀라당 벗겨주께. 자.. 발라당 떠나볼까?


1.라 마 야 나

인도넘들이 제일 좋아하는 2대 서사시가 있는데, 고게 바로‘마하바라타’와‘라마야나’라는 거다. 이 중‘마하바라타’는 열차습격사건과 상관없으니까 씹어 버리고 ‘라마야나’얘기를 해보자구.

‘라마야나’는‘라마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신화의 주인공은 바로 라마다. 현재 힌두교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 중에 하나인 라마는 인도인들에게는 정의, 덕의 군주로 칭송을 받고 있는데, 역사적 인물이라는 설과 함께, 힌두교에서는 3대 쌈잘하는 신 중의 하나인 비쉬뉴 신의 7번째 화신으로 믿어지고 있는 인물(신)이다.

신화의 내용을 간추려 보자면,

야요디야 왕의 큰아들인 라마는 활쏘기로 따지자면 영국의 윌리엄텔이나, 한국의 고주몽과 맞먹을 정도의 명궁이었다. 그리고 내기에서 아주 이쁜 부인 시타를 얻은 행운아였다. 하지만 역시 영웅의 앞날은 험난한 것인지, 계모의 농간으로 숲에서 14년간의 유배생활을 해야했다. 원래 왕이 되야 하나, 왕도 못되고, 숲속에 14년간 갇힌 라마, 니덜이나 나같은 사람이었다면 당근 하루에 108번씩 씨바거려야 겠으나 그러지 않고, 부인인 시타와 동생인 락쉬만, 그리고 따르는 무리와 함께, 나름대로 잼있게 살았더랜다.

하지만 숲에서도 덕과 정의의 상징인 라마는 불의를 보고 분기탱천하는 특유의 성깔을 버리지 못했는데, 마녀 수르파카나의 코와 귀마저 잘라버리면서 정의숲구현에 앞장서게 된다. 코하고 귀짤린 마녀는 지금의 스리랑카 땅에 살던 머리10개달린 마왕 라바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라마의 부인인 시타가 무지 이쁘다는 말을 살짝 흘리면서...

예나 지금이나 마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넘들은 무지 밝힌다. 라바나도 이런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랬나보다. 라바나는 라마의 부인 시타를 납치하고, 라마는 마눌을 찾으러 동생 락쉬만, 그리고 원숭이 장군 하누만을 델구 스리랑카 원정길에 나선다. 원숭이 장군 하누만은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를 한달음에 뛰어넘는가 하면, 라마의 동생 락쉬만이 화살에 맞자, 이를 고칠수 있는 의사의 집을 통채로 달랑 들어다가 치료도 받게끔 하는 등의 혁혁한 공을 세우며 결국 머리10개 달린 마왕 라바나를 라마가 물리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왕을 물리치고 돌아온 라마와 시타는 계모의 아들이 다스리던 아요디야 왕국을 통채로 헌납받고, 왕이 되어 아요디야를 다스렸다. 전설적인 군주로 덕의 화신으로 군림하면서, 결국 라마는 비쉬뉴 신의 7번째 화신으로까지 추앙받게 되었다.

라마야나 신화에서 파생된 신은 덕의 상징인 라마를 제외하고라도, 충성과 헌신의 상징인 원숭이 하누만도 신으로 승격되었다. 하누만과 라마야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중국의 <서유기>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 내에서 라마야나가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리고 아요디야

신화에서도 아요디야가 많이 나오지?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전설적 명군, 라마가 다스렸다고 믿고 있는 지역..거기가 어디? 바로 아요디야라는 말씀이다.당연히 힌두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성지가운데 한 군데라 할 수 있겠다.



2.아 요 디 야

아요디야라는 지명을 가장 중요하게 만든 것은 라마야나지만, 아요디야는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주변국 신화의 무대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까지...

안 믿어진다고? 그럼 본 기자와 함께 삼국유사를 함 따라가보자.

한국에서 제일 많은 성씨인 김해 김씨, 시조는 김수로왕, 그의 부인은 신화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후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허황옥은 2명의 신하와 부인, 그리고 20여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배로 금관국에 도착하여 조용히 이르되‘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부왕의 명을 받아 수로왕에게 시집왔노라’하였다 한다.

어때.. 죽이지? 당근 아유타국은 아요디야의 한자식의 음차이다.

아요디야를 수도로 삼은 왕국은 여럿이 있다. 그 중에 붓다가 생존했을 당시인 기원전 600년 경에는 코살라국이라는 나라의 수도였는데, 이 코살라국은 자신들의 기원을 태양신의 자손, 즉 바랏트 족이라 믿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는 Republic of India이지만 얘들말로 하면 Bharat Ganarajya이다. 즉 바라트족의 국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지들은 바라트족(태양족)의 후예라고 믿고 있다.

이제 좀 감이 오는가?

아요디야라는 동네는 현재의 인도를 상징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 땅에서 발생한 바라트족의 나라 코살라국이야 말로 현재 인도의 기원이고(우리가 우리 기원을 단군조선이라 하듯이) 그 코살라 국의 수도였던 곳이 아요디야이다.

멀고 먼 동방땅 가야에까지 세력을 떨치던 국가였을 만큼 한때 강성하기도 했을 정도니 이들이 이상정치의 화신으로 믿고 있는 라마신의 현실정치 무대라는 점까지 곁들여 아요디야가 힌두이즘에 끼치는 상징적 의미는 어마어마 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무굴시대에 아요디야는 부시같은 넘의 등장으로 몸살을 앓는다.



3.부시 같은 넘‘아우랑제브’

무굴시대.

옛날 세계사 시간에 슬쩍 들어본 것도 같지? 감이 확 오게끔 설명해줄까? 타지마할 있지? 그게 바로 무굴시대 작품이야. 빠굴말고 무굴.

비록 무굴이 이슬람 왕조 이긴 했지만, 다른 아랍의 무슬림과는 달리 무굴은 종교적 햇볕정책을 피던 나라였다. 20%도 채 안 되는 무슬림들이 힌두의 나라를 다스릴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대대로 힌두왕조와 결혼도 하고, 힌두교도 인정해주면서 무굴의 왕들은 종교간 화해를 실천하는데 무지 애를 써왔드랬다.

그런데 어느 시대, 어느 왕조에나 또라이가 한 마리씩 있자너?

무굴시대에도 몹시‘부시’스럽고‘오노’틱한 황제가 등극하니 그가 바로 아우랑제브란 넘이다.

자기 형제 다 죽이고, 아버지까지 7년간 가둬놓고 죽인 뒤 왕위에 오른 이 아우랑제브는 그 전까지의 무굴 황실의 전통인 힌두교 햇볕정책을 버리고, 힌두교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간 폐지되었던 非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지즈야)를 부활시킨 것은 물론, 각종 힌두사원을 뽀개버리고, 각종 신상들을 빠셔 버리고, 그 자리에 회교의 모스크를 세우게 된다.

그 중에 라마사원이 집중적으로 걸리면서 박살이 나게 되는데, 당근 라마사원의 본산인 아요디야가 딱!! 걸리게 된다. 아요디야의 라마사원은 이 부시스러운 아우랑제브 때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비브라 모스크라는 회교사원이 건립되게 된다.

짜잔.. 오늘날 열차습격사건이 발생하게 된 종교분쟁의 서막은 그렇게 올라간 것이다.


4.오늘의 인도

인도의 국교는 뭐게?

라는 질문에 열이면 아홉은‘힌두교요’하는데, 이거는 틀린 답 되겠다.

인도는 비록 힌두교가 80.3%, 숫자로 8억이나 되지만, 헌법상 국교가 없는 나라다. 이런 걸 유식한 말로 <세속주의 국가>라 하는데,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나, 초대 수상 네루는 특정 종교에 매몰되던 양식없는 정치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법적으로 공립학교에서는 종교교육조차 시키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인도가 힌두의 나라가 되는 것을 막는 각종 제동장치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비폭력보다 종교의 절대성이라는 허상을 ?i고 말았다. 간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과정에서 통일 인디아를 주장하다 극단적 힌두주의자 총에 맞아 죽는다. 이때 등장하는 이름, 바로 RSS. 간디 암살조직의 이름이다.

이 RSS를 비롯한 힌두 극우세력 뭉탱이들이 다시 한 번 대형사고를 치는데, 이제 조금 속도를 내서 1992년으로 가보자.

현재의 집권당을 BJP(Bharatiya Janata Party)라고 하는데, 울나라 말로 하면 인도 인민당쯤 되고 사고뭉치 RSS조직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당이다.

1991년 벽두부터 인도는 총선의 열풍이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때 분위기를 좀 보자면, 그 동안 1969년과 79년을 제외하고 한 번도 야당이 되어본 적이 없는 만년 집권당 인도국민회의는 만성적인 부정부패로 인해 더이상 집권의 가능성을 기약할수 없었다.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 해 5월 23일 치러진 총선에 몇 개의 변수가 등장하는데, 첫째는 전 수상이자 네루가문의 3대손인 라지브 간디가 선거 직전인 5월 21일 암살당한 일이다. 이틀 후 벌어진 선거에서는 네루가문에 대한 동정표가 국민회의에 쏟아지면서 국민회의가 기사회생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두 번째 변수는‘종교’가 인도정치의 주요변수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인도 인민당의 약진인데, 얘들이 내세우는 강령 중에‘힌두트바’라는 것이 있다. 즉 힌두들의 국가건설이었던 거다. 얘네들이 선거운동을 어떤 식으로 했냐면, 라마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신인 크리슈나신이 죽었다고 믿어지는 곳이자, 인도에서 가장 큰 사원이자, 무슬림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적이 있는 솜나트라는 곳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이른바 종교정당으로서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행진이었다. 그리고 이 행진의 종착지는 아요디야였다. 분명 BJP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요디야에 회교사원인 비브리 모스크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째 지역감정을 정치에 졸라 이용해 먹는 동방의 어느 나라가 막 오버래핑 되지 않냐?

하여간..

종착지인 아요디야에 도착하니, 라마신의 사원이 있어야 할 곳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는 것을 행진에 참가한 힌두교도들은 발견했다. 그대로 눈이 훌렁 뒤집히는 행진맨들. 그리고 주최측의 교묘한 선동.

결국 비브리 모스크는 1992년 12월 6일 일단의 힌두교도들에 의해 폭파된다. 이를 기해 인도 전국에서는 힌두와 무슬림의 쌍방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때 사망자는 대략 2,000~3,000으로 추산한다.

회교사원이 부서지자, 집권당 국민회의는 즉각적으로 회교사원을 재건할 것을,거꾸로 BJP는 라마사원을 이 자리에 짓겠다고 공약했으나, 아무리 철심장 국민회의라도 인구의 90% 가량이 힌두인 나라에서 모스크를 재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 아요디야 사태라는 것 자체가 힌두교도의 자발적 문제의식에 의해 발생된 종교문제는 아니다. 순전히 선거운동의 와중에서 나찌같은 BJP정당의 선동에 의해 벌어진 정치드라마다. 어찌되었건 이 사태를 계기로 지역정당이었던 BJP는 전국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인도사에 있어서 불행의 전주곡이 드뎌 울린 것이다.

97년도 총선국면을 맞이하는데, 이때 BJP의 선거운동은 정말 가관이었다. 수십대의 마차에 올라탄 라마와 락쉬만, 하누만, 시타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재림한 것이다. 물론 배우들과 정치인이 연출한 이벤트였지만 라마신이 본격적으로 선거판에 뛰어든 것이다.

인도인들은 열광했고, BJP는 한술 더떠 선거공약으로‘라마신의 정치재현’을 떠들어댔다. 당시 BJP보다 더한 힌두교 또라이 쉬브세나라는 넘들은 공공연히 유세장에서‘이 곳에 무슬림이 있다면 꺼져라! 니들의 표는 필요없다!’라고 연설했을 정도다. 이들의 선거공약 중에‘아요디야’라마사원 재건이 있었음은 당근이다.

이들은 이 문제를 중앙정부의 총선에 끌고 들어왔고, 여기에 승부수를 걸었다. 선거결과 집권당이던 국민회의는 260석에서 140석으로 줄어드는 패배를 했고(득표율 29.77%), BJP는 161석을 확보하여 제 1당이 되었다(득표율 23.5%).

여기서 득표율은 국민회의가 높은데, 왜 BJP가 의석이 더 많냐고? 오호..예리한 넘.

인도 역시 한국과 같은 소선거구제다. 국민회의는 주로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은 반면, BJP는 이른바 힌두벨트라고 하는 힌두교 우세지역에서 싹쓸이를 했다.

자! BJP는 96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제 1 당이라는 이름만 얻었을 뿐 과반수를 차지해서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당은 아니었다. 그리고 극우 또라이 일부 정당을 제외하고는 이들과 아무도 연합하려 하지 않았다. 96년, BJP정부는 단지 12일만 집권했을 뿐이다.

하지만 BJP를 배제한 연립정부는 너무나 가지가 많았다. 97년 11월 연립정부는 사퇴하고, 대통령은 또 다시 하원을 해산했다. 2년 만에 다시 총선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인도 최초의 히틀러 정권이 탄생했다. BJP는 170석으로 불과 10석을 늘리는데 그쳤지만, 이제 BJP가 앞으로 인도 정치계의 강자가 되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군소정당들은 재빠르게 BJP 아래로 헤쳐모여를 실시했다. BJP 연립정권은 265석을 확보, 정권을 인수했다. 신정권이 들어서자마자 BJP는 대형사고를 쳤다. 바로 인도의 핵실험이 그것이다. 결국 98년 5월 인도는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고, 미국과 일본의 경제제제가 잇따랐다.

이 글을 쓰는 2002년 3월 1일 현재 인도는 BJP 치하다. 그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불과 15루피 하던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에 한해 750루피로 급상승했다. 물론 다른 유적지도 이보다는 덜하지만 대략 50~100배 정도가 올랐다. 극우정권의 힌두선민정치 탓이다. 돈없는 여행객의 입장에서도 이덜은 그저 씨바쉐이덜이다.

하지만 선동 밖에 잘하는 것이 없는 BJP 정부는 정책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해 민심은 뒤로 돌아섰다. 먼저 번‘카쉬미르를 알려주마’에서도 언급했듯이, 절묘하게 2001년 12월 국회의사당 테러가 났다. 올 2월 얼마 전에 끝난 4개주 지방의회 선거는 BJP의 경제실정에 대한 심판과, 이제는 BJP가 파놓은 힌두극우주의의 함정에 BJP가 빠졌음을 의미한다. BJP는 아요디야 사원재건을 공약으로 했지만, 집권 여당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다시 인도를 혼란에 빠져들게 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또 원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때는 야당이었지만, 이제는 난리나면 지들이 책임져야 하는 여당이자네?

차일피일 미루는 BJP에 연립정권의 한 당사자인 VHP가 깽판을 치고 들어왔다.

‘니들 자꾸 밍기적 거리면 이젠 우리가 니들처럼 사고친다!’

선거 직전, VHP(VISHVA HINDU PARISHAD; 그림)는 3월 15일부터 자기들의 손으로 아요디야의 라마사원을 재건하겠노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한 BJP 정권은 올 2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그들의 텃밭이자 아요디야가 속해 있는 우타르프라데쉬 주에서도 주정권을 잃고야 말았다.

칼은 칼에 망하고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에 망하고 종교분쟁은 종교분쟁으로 망하는 법.

그러나 청출어람이라. 이번에는 BJP의 성공담을 답습하는 VHP에 의해 연일 아요디야는 라마사원 재건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2월 27일 구자라트에서 벌어진 회교도들의 열차습격은 이 와중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기차에는 아요디야에서 라마사원 재건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과격힌두들이 타고 있었다. 이제 인도열차습격 사건의 배경과 전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11일 현재 이어지는 분쟁으로 사망자수가 712명으로 늘어난 상태이고, 또다시 유혈충돌이 예상된다는데,

아.. 어떤 씨바가 인도가 정신과 명상과 평화와 비폭력의 나라라 했던가? 도나 좀 깨우치러 여행왔다가 폭력만 배우고 빽홈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졸라!!


한달에 한번씩 지랄나는게 지겨운 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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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