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된, 이후에는 부분 봉쇄된 대한문앞의 분향소는
마치 80년 몇일의 해방구를 보낸 광주 같았다.
아니 광주를 몸으로 겪지 못한 세대니,
말로만 듣던, 이미지로만 알던 바로 그 곳 같았다.

이제 곧 사십줄이 눈에 보이는 남자 여러명이 대한문앞에 소주몇병 사놓고, 상가집 분위기를 연출했다.
울컥, 울컥........
마녀가 수술실에 누워있을때도, 틈틈이 농담이 나오던 내가.......
말을 잃어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같이 모였던 선배 말마따나.
대한민국에서  예비군 말년차 이후의 나이들이
부동산, 돈, 승진, 육아라는 화두가 아닌
정의라는 단어로 가슴이 벌컥 벌컥 거린다는 것은 정말 특이한 상황이다.

나이 사십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 양심의 소리를 듣고 분개하고, 내 나라의 현실에 너무 화가나 눈물을 흘렸다.
중학생때, 동네에서 제일 덩치큰놈에게 대들다 흠씬 맞았을때처럼.
분노에 분노를 더해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지며, 눈물이 흐른다.

이명박은 정말 탁월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우리는 모두 양심의 소리라는 걸 다시 듣게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원초적인, 정의라는 단어를 선생님께 처음 들은 아이들처럼
사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주먹이 쥐어진다.

문상가서 문상을 못했다.
절을 하면 그를 진정 보낼거 같아.
두려워 문상을 하지 못했다.
조문소 옆에 신문지 깔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도 울고 있다.

누군가 구슬피 부르는 아리랑의 슬픈 곡조에 울고
흐느끼는 어떤 노신사의 떨리는 어깨를 바라보며 울고
그 어떤 슬픔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몽둥이로 우리를 후려갈길 준비를 하는
더러운 정권의 주구들을 바라보며 울었다.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라는 감정마저 덧 없는듯,
모두 퀭한채,
흐느끼기만 했다.

이미 우리 가슴속엔,
용산에서, 노무현까지. 불에 타다 못해 재가되어, 허공으로 다 날라가버린 텅빈 가슴만
남아있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2009년 5월 23일 밤과 24일
대한문 앞의 기록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