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시대는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 있었다.
국민 피씨라는 이름으로 8088-8Mhz의 XT과 80286-16Mhz의 AT가 전문가용 컴퓨터로.....시중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8비트 시장은 대우의 MSX2기종과 APPLE IIc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던 시절.
당시의 초딩, 중딩 유저들은 XT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게임이 없었으며, 심지어 소리도 안났다. 내는 소리래봐야 비프음 수준........
기본적으로 3중화음 8옥타브의 내장 사운드에,
FM카드라는 확장팩으로 보더 나은 음질을 구현했던 MSX의 게임환경과는 하늘과 땅차이.
하지만 신규로 컴퓨터를 사는 녀석들은 부모들의 선택에 의해 게임이 없는 그 삭막한 XT를 구입했다.
게임이래봐야 테트리스정도? 그들은 진실로 불행해 보였다.
당시 우리는 세운상가 한구석에서 판매하는 일본 잡지들을 탐독했다.
MSX FAN이라는 이름의 그 잡지는 일본에서 최신 유행하는 게임과 발매 예정작을...당시 한국에서는
볼수도 없던 올 칼라 인쇄로....우리들을 꿈의 세계로 인도 했다.
1988년이었을거다.
그 MSX FAN에서 세가에서 나온다는 새로운 게임기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16BIT CPU를 내장한 초고속의 메가 드라이브.
지금봐도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너무 멋진 이름이었다. 블랙으로 빠진 디자인과 유려한 곡선의 게임패드.
재믹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고, 당시 부잣집에나 간간히 보이던 패밀리 컴퓨터와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동네에는 CD-ROM이라는 컴퓨터 가게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개 첨단 제품중 하나인 CD를 구동하는(1배속-150k) 기계가 있었다.
거기 형의 말에 의하면, 곧 CD-ROM이라는 것이 컴퓨터에 보급되는데 1장에 백과사전이 들어간다는....
우린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거긴 뻥쟁이가 운영하는 컴퓨터 가게가 되었다.
3.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도 희귀한 시대에, 800K의 용량도 바다와 같이 넓던 시대에
640메가라니.......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가?
하여튼,
이 뻥쟁이가 어디선가 메가 드라이브를 구해왔다.......
당시 오락실에서 긍국의 첨단 초호화 미려한 그래픽을 선보이던 수왕기가.....(요즘으로 따지면 버추얼 파이터5 쯤 된다.)
세상에!!!!
저 작은 박스에 롬팩을 꼽자 구동되기 시작했다.....아아!!!
오락실에서 쓰는것과 똑같은 68000CPU를 쓴다더니.....
나의 사랑 FS-A1F의 심장인 Z80A를 그저 사운드칩 따위로만 쓰는 기계가 있다니
대체 나의 MSX는 뭐란 말인가?
무엇보다 썬더 포스의 그래픽은 넋을 놓게했다.
'오락실 보다 더 좋아!!!!'
이 말 한마디로 모든게 끝났다.
FS-A1F와, 애장품 메가 롬팩인 F1 SPIRIT, 사라만다, 그간 모아놓은 게임 플로피들......
왜 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사라만다의 스크롤이 눈에 띄는 화면 깜빡임이었음을 알면서 왜 그리도 배신감에 차던지.....
결국 난 뻥쟁이의 메가드라이브와 FS1AF를 바꿨다.
지금의 젊은 엄마라면 꿈도 못 꿀일이지만, 난 당시 엄마에게 키보드 분리형 16비트 컴퓨터와 바꾼다고 거짓말을 했다. 메가드라이브의 키보드는 영원히 일본에서 오는 중이 되었고.........
이렇게 난 초딩5이래 근 5년간 유지했던 퍼스널 컴퓨터 유저의 자리를 버리고, 게임기 유저로 탈바꿈했다.
사실 컴퓨터로도 맨날 게임만 했으니, 내 생활이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리고 다음핸가? 나는 고딩이 되었다.
고딩쯤 되니 이제 MSX는 거의 단종되는 분위기로, 대우 전자 역시 남미쪽에 MSX를 파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PC쪽은 다행히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35000원짜리 Adlib카드라는걸 꼽으면 예전 FM팩 수준의 음악이 나왔고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깜짝놀랄만큼의 움직임을 선보이던 페르시아의 왕자가 등장하며 나름 피씨 게임의 재발견이 되던 시대였다.
허큘리스 카드라고 불리던 흑백 그래픽 카드. 녹색이 눈에 좋아라고 자위하며 쓰던 녹색끼가 나는 그린색만 나오는 그린 모니터.....
당시 컴퓨터에는 TURBO라는 버튼의 키가 있었다. 그걸 누르면 80286의 경우 16Mhz의 속도가 25Mhz의 속도로 올라가며 테트리스를 도저히 제정신가지고는 즐길수 없는 초고속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PC TOOLS......
게임 플로피를 넣으면 기계어가 주우우욱 뜨던 신기한 물건. 이걸로 게임 난이도, 플레이어 숫자등을 조작하기도 하고, 게임 플로피를 복사하기도 하던......
이 모든 것이 고딩쯤 되니....무한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게임기도 16비트인 시대에........컴퓨터도 당연히 16비트여야지.......
라고 마음을 먹으니 그 둔탁해 보이던 키보드 분리형도 왜 그리 멋져보이던지........
결국 정부 시책(16비트로의 전환), 16비트 일본 컴퓨터(메가드라이브)의 키보드 수급의 어려움 --;;;
등 근거로 마덜을 설득, 다시 한대를 장만했다.
80286 16Mhz의 초고속 cpu와
두개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장착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초고가인 30만원짜리 VGA카드(640*480의 해상도에서 256칼라를 뽑아주신다-이게 있으면 수영복 입은 미소녀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와
60만원짜리 14인치 VGA 모니터를 장착한.....나름 수퍼 컴퓨터.
그리고 엡손의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비록 시끄럽긴 했지만.....프린터도 소유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때부터 게임은 좀 덜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고딩때 컴퓨터 동아리에서 알게된 아래아 한글 1.0의 충격은 정말....잊을 수 없다.
컴퓨터로 뭔가 '일'을 할수있는 진정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래아 한글 1.5부턴가 필기체가 지원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때는 영어샘이 매일 하루에 2-3장 단어 쓴거를 뵈줘야 안맞았다.
뭐 나같은 어중간한 중간줄이 단어를 외울리 없다.
그냥 쓰는거지.
아이들에 따라 볼펜 두개를 동시에 잡고 한번의 수고로 두줄을 쓰는 신공도 등장했다.
뭐...난 주로 맞았다.
사나이가 화끈하게 두세대 맞고 말지...찌질하게 영어수업 시작하기전 쉬는시간 10분을 모두 투자해.....
연습장을 채우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뭐, 앞줄놈들은 정말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남는 영어공부 증거 페이퍼가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평소 등한시하던 앞줄 재수탱이들에게 그거 몇대 안맞을려고 알랑대는 것도 싫었다.
진정 대인배는 결코 아니었지만,
잔소리 5분 듣느니 10대 맞는게 속편할 때였다.
후후........
아래아 한글 1.5의 필기체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바로 필기체를 한가득 출력하자는.....
난 이미 그 당시 컨트롤 씨와 컨트롤 브이가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크하하하하하!!! --;;;
결과는 대 성공!!!!
영어샘이 못알아봤다.
근 한달간 꽤 해피한 시절을 보냈다.
문제는, 이런 비밀은 자랑하면 안된다는 거다.
나의 성공(?)을 시기한 몇몇 과거의 얻어맞던 동지중 한녀석이 영어샘에게 꼰질르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프린터가 뭔지도 모르던 영어샘은 그녀석이 한 말의 반이상을 못알아들은게 확실하지만,
평소의 나에 비해 서체가 너무 출중하고, 자세히 보니 정말 글자가 모두 똑같은 크기라는데
이유야 어쨋건 짜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를 복날의 개잡듯 팼다.
한 40대 맞았을려나?
80286사마는 당시 연애 전선에도 투입되었다.
바로 고등학교 축제.
슬슬 언니라는 존재에 대한 흥미를 보이던 때.
축제는 합법적으로 언니들을 만날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당시 미팅, 소개팅은 아주 뒷줄 날날이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
나는 요즘말로는 피씨동아리, 당시 이름 공작반이라는...뭔가 공작스러운 소속이었다.
뭐 피씨보급률이 지금과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던 때라....
피씨동아리는 뭔가 범생이(실은 오타쿠지만...) 분위기를 풍기던 때다.
우리 동아리의 언니들을 홀리는 방법은
우선 유일한 브이지에이 카드 소유자인 내가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준다..(과일, 꽃, 풍경같은.....)<=이런게 이때는 신기할 때다 --;
베이직좀 만지던 아이들은 MSX를 이용, 금속판에 손을 올려놓으면 랜덤으로 아이큐, 재능, 미모등의 항목을 화면에 띄워주고, 마지막에 살짝 전기가 통하게 하는......뭐 나름 꽤 첨단으로 보이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ADLIB사운드 카드를 이용해, 연니들이 원하는 연주곡을 틀어주는...뭐 나름 꽤 멋진 구성이었다.
사실 당시 다른반 아이들을 보자면
서예반은 반장이 한복입고 나와 붓글씨를 써주며 파리가 날리고 있었고
정말 구시대의 유물인 타자부는......타이핑으로 모나리자같은 그림을 만들어서 액자전시하고,
뭐 타자 빨리치기 시범같은걸 하고 있었다. --;;
솔직히 우리가 볼거리로써는 거의 최고.......
였지만, 우리는 모두 오타쿠들로 이루어진 동아리.
우리반 멤버들은 다들 한덩치 하거나, 키가 작거나, 당시로서는 전자파때문에 그렇다고 믿었던 아토피 피부병자등등.....
언니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오빠들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가장 볼거리가 많았음에도 꽃한송이(요즘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이때는 언니들이 꽃한송이씩 들고댕기며 마음에 드는 (주로) 놈의 책상에 올려주곤 했었다....나도 몇개 받았다 으하하하하 --;;;
축제가 끝나면,
방명록을 뒤진다.
방명록에는 늘 전화번호 항목이 있었고,
이때만해도 다들 순순히 전번을 남기곤 했었다.
동아리에서 가장 하는거 없는 넘은 방명록을 관리했는데, 어엽쁜 언니들이 쓴것은 별도 마킹으로 특별관리하기 시작했다.
축제가 끝나고 난 후의 즐거움은......바로 전화걸기........
당시에도 꽤나 부드러운 혓바닥의 소유자였던 탓에, 1학년때부터
선배들의 몽둥이 아래.....전화는 늘 내가 담당했다.
대체 뭔 정신으로 그랬나 모르겠는데,
이번 보성고 축제때, 공작반 기억하셈? 네......운세도 봐주던...네..아하하하하하
길동 진흥아파트맞은편에 오렌지 카운티서 만날까요?(젤 이쁜 언니...)
길동 사거리에있는 빨간집아시죠? 거기서 만날까요?
별 시나리오도 없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만나자는 제안에
꽤 많은 언니들이 그냥 나왔다.
물론 나는 안나갔다 --;; 나가긴 선배들이 나갔지.
2학년이 되서는 나도 나갈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난.......그런 언니들을 사적으로 만나면 좀더 젠틀하게 존댓말을 써야한다는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무엇보다 머리 가르마가 뭔지도 모르고 살던 오타쿠라.....
전화상으로나 자신감 만빵의 수컷이었던것 같다.
-온라인 상에서 대충 쓰고 있는데, 갑자기 정서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