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인도신문에 광고가 나왔다.
- New Delhi WORLD BOOK FAIR 2002-
월드북 페어라.. 그러고 보니 몇 해째 이맘 때가 되면 이 광고를 봤던 기억이 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올해는 여길 함 가겠다는 맘이 생겼다. 마음을 먹었더니 주변에 꼬시는 사람도 생긴다. 2년만에 만난 장기여행자‘니마’는 작년에 한 번 가봤는데 무지 볼만했노라고, 심지어는‘쉬네21’도 판다는 감언이설로 나를 꼬셨다.
신문에 주소가 나온 거 같기는 한데, 어디에 붙어 있는 동넨지 알 수가 없다.
‘Pragati Maidan’
다행히 론리플래닛에서 지도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이다. 바로 인디아 게이트 뒤쪽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북페어 광고에 걸맞게 행사장은 정말 거대했다. 참고로 이 프라가티 마이단이라는 곳이 한국 Koex같은 곳이란다. 실제로는 코엑스보다 훨씬 더 컸다. 역시 땅덩어리 큰 동네라...
먼저 들어간 곳은 국제관, 오로지 이때 만해도 본 기자 머릿속 생각은‘쉬네21’이랑‘고우영 만화삼국지 무삭제 원판 CD’를 구입해야겠다는 열망 뿐이었다. 국제관이라 정문 바로 앞에 있는지 몰라도 내부가 생각보다 화려했다. 나라가 다양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구색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인도 출판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윈도우즈 기반의 Quark Xpress 부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 DTP(DeskTop Publishing)산업의 일면은 볼 수 있었다.
정해진 길이 없이 이리저리 인파에 휘둘리던 중 그러면서‘쉬네21’을 살려는 일념으로 국제관을 기웃거리는데,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DPR Korea’
오홋!! 북한관이다.
DPR.. 진짜 들어본 지 오래된 말이다. 대학시절 같이 천리안에서 피씨통신하던 아는 선배의 아뒤가 DPR 아니었던가? 물론 그게 북한을 뜻한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지만...NK니 DPR이니 한창 때 암호같이 썼던 이니셜들이다.
반가움에 소리 함 질러보고 싶었지만, 본 기자 오랫동안 씨벌건 반공 교육 받고 자란 넘이다. 멈춰서서 심호흡 함 크게 쉬고 관찰을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북한관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전시를 하지 않는 듯 했다. 가려진 천 사이로 얼굴을 디밀었는데, 울 동네 삼촌같은 두 분이 밥을 먹고 있다. 난데 없이 펼쳐지는 식사풍경에 놀란 본 기자와 밥먹는 도중에 얼굴 디미는 본 기자 땜에 놀란 그 두분은, 호상 쌍방간에 암말도 못하는 골때린 풍경이 5초간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본 기자는 똑똑히 봤다. 깻잎간장 조림과 파김치, 그리고 상추와 마늘 송송박힌 된장.. 내가 조아하는 음식을 저들이 먹고 있다는 것도 갑자기 신기했지만, 부스 전체에 퍼지는 깻잎 냄새는 정말 압권이었다. 맨날 카레먹는 본 기자 위장에서 위액 250 ml가 급속하게 밀려들어왔다. 꼬르륵...
저,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한의 딴지일보라는 신문사 기자 되겠습니다.
사진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뭐라고요?
아, 남한 신문사에서 사진찍는 사람인데요. 부스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일 없습니다. 그리고 다 팔려서 찍을 것도 없시요.
그리고 지금은 식사시간 입네다.
얼핏 보기에도 팔려는 물건이 얼마 없어 보이기는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들로서는 상당히 늦은 식사였던 셈이다.
저기 언제 다시 문 여나요? 그냥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30분 있다 다시 문엽니다. 그때 오시던지 하시라요.
우선 후퇴. 비로서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콩닥거렸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방콕- 카트만두 구간의 비행기 안에서도 북한 분을 한 번 뵌 적이 있다. 그때는 김주석 뱃지보고 쫄아서 말도 몇 마디 못건냈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대화 함 해야지..
안 본 곳 한 바퀴를 다시 도는데, 머릿속은 온통 북한관 생각 뿐이었다. 정확히 30분 후에 다시 북한관으로 갔다. 그동안 구라 안치고 시계를 한 30번 봤을꺼다.
문은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인산인해였다. 정말 이 구역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스윽- 들어갔다.
주로 파는 것이 책이 아니라 산수화, 밥상보, 그리고 부채였다. 안쪽에 책이 몇권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물건 파는 분(아까 맛나게 깻잎 김치 드시던) 이 힐끔 보길래 눈인사를 했다. 나가라고는 안했으니 허락을 받은 셈이지...
인파를 헤치고 책있는 데로 갔다. 우선 책보는 척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Tales of Chunhyang, 영문판 춘향전이었다. 그 위에는 고구려 시절의 벽화를 찍어놓은 사진집, 그리고 얼마전 조성했다는 단군릉에 대한 화보집 그리고 단군에 대한 책이 있었다. 나가라고 그럴까봐 눈치를 보면서 집사람과 고구려벽화 화보집을 펴서 소리내서 봤다.
이야! 씨바, 정말 좋다... 여기는 어떻게 이런 게 남아있나 몰라?
?그러게 말이야 정말 멋지다.
물끄러미 우리를 보던 깻잎 아저씨가 뭔가 주섬주섬 챙기더니 한 뭉테기 내놨다. 그 무뚝뚝함. 그러나 귀찮으니 먹고 떨어져라는 분명 아니었다.말없이 쓰윽 내미는 그런 게 더 우리스럽고, 정겹고, 깊이가 있다는 거, 한민족만이 아는 정서다.
천하명승 금강산/단군릉/왕건왕릉/조선의 민속1/Mt. Jongbang/Moran Hill
한글과 영어로 된 관광안내 팜플렛이었다. 그리고 입체사진으로 만든 비닐소재의 엽서 3장,‘금강산의 수류화개’엽서 2장,‘올빼미’엽서 한 장... 팜플렛이야 그냥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입체사진 엽서는 얼핏 보기에도 기념품으로 파는 것 같았다.
저 선생님.. 이 전단은 주는 거 같은데 엽서는 파는 거 같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아니 뭘...
말끝을 너무 흐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북한말이라 어법이 달라서 안들렸는지...
저.. 이 엽서가... 얼마죠?
뭐, 동포끼리 무슨 돈을.. 그냥 쓰시라요.
동포.. 씨바 이 무슨 고색창연 감동만발한 말이던가??한 동안 참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동포라... 동포... <반갑습네다> 노래 한 판 불러버리고 싶은 가슴을 열라 진정시키며 쓸어내렸다.
델리 북페어에 전시되는 북한책은 사실 몇 권 없었다. 외화벌이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파는 물건들은 암석화(천연 돌가루를 붙여 만드는 그림으로 북한이 이 쪽에 졸라 유명하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로 만든 액자들과(700루피; 21,000원), 그리고 같은 스타일의 큰 병풍 하나...
인도물가 치고도 무척 저렴하지만, 그림의 문외한인 본 기자가 보기에도 그림의 수준은 높아 보였다. 아, 집이든 절이든 뭐든 있으면 하나 사서 걸어놓는건데.. 하지만 본 기자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는 여행자, 당근 집이나 절은 없다. 딴지에서 원고료만 줘도 호텔에서는 살 텐데.. 씨바 언제 고료 받아보나.
인도인들이 보기에도 확실히 물건질에 비해 가격이 쌌던지,‘베리 칩’을 연발하며 계속 주문이 밀리고 있었다(인도넘들이 안깎고 물건사는 거 첨 봤다). 깻잎 아저씨(이하 깻잎 선생님)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가격표 붙인 스티커를 보여주고 종이로 포장만 해주고, 영어는 좀 젊으신 분이 했다. 바빠서 아주 많은 얘기를 하는 것도 실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교류가 문제되는 서로의 처지로 인해 아주 긴 얘기를 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었다. 슬프다.
장사하는 모습도 정겨웠고, 게다가 잘 팔리기까지 하니 나도 기분 좋았다.
약간 손님이 뜸해지자 깻님선생님이 먼저 말을 거셨다.
거, 신문사서 일한다구요?
아, 네.. 일간지가 아니라 딴지일보라고 인터넷에 떠다니는 신문입니다.
뭐라구요? 딴지?
남북한의 장벽이 역시, 몹시, 졸라 높았다. 민족 정론지 딴지일보를 모르다니..어서 빨리 통일이 되서 북녘 동포에게도 명랑 쏘사이어티 이데올로기를 세뇌시켜야 할 텐데..일단 화재부터 돌리자.
(단군릉 전단지를 보면서) 정말 대단합니다.
얘기만 들었는데 정말 규모가 장대하군요?
거 일전에 다 찍어가지 않더랬습니까?
동무는 그 때 평양에 안 왔더랬습니까?
네.. 그 딴지일보가.. 신문사 중에.. 막냅니다. 막내라 못갔습니다.
막내라 하는 것이 제일 적당한 듯 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그래요? 막내구만.. 젊은 동무 신문사도 빨리 성장해서
공화국에도 오고 그래야지...
감사합니다.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다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래 이건 서로에게 예의는 분명 아닌 듯 싶었다. 본 기자야 반쯤 언론인이라고 우길려면 우길 수야 있다지만, 이 분들이야.. 국가공무원들일 텐데...
선생님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림이랑 책이랑 표지좀 찍겠습니다.
다시 분주해진 부스 안쪽에서 그림들을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비치는 사진들을 깻잎선생님은 틈틈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공연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뭐랄까? 초딩때 나혼자 좋은 옷입고 등교할 때 느끼는 그런 감정? 하여간..조금은 신기로운 눈초리로 카메라를 보시는 깻잎선생님 앞에서나는 '잘사는 남한 청년의 자부심'보다는 '선생처럼 수수하지 못한 남한 청년'의부끄러움이 들었다.
남의 가게에 왔으니 물건은 팔아줘야겠지? 부채가 가장 만만해 보이길래, 이리 저리 물건을 살펴보는데, 부채에 붙어있는 술마무리가 안 좋았다. 깻잎선생님이 아셨는지 박스에서 마감이 잘된 것을 하나 꺼내주신다.
이거이 좋구마니...
깻잎냄새나는 입에서 정감어린 우리말이 나온다.
그냥 이거로 할께요.. 이게 더 그림이 이쁘네요.
집사람이 대꾸했다. 어느 덧..가야 할 시간이었다.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엽서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남한 분들에게 이 곳을 알려줘도 되겠습니까?
동포들한테 오시게 알리시라요. 괜찮습네다.
그 동안 한 마디도 안 하던 젊은 분이 이렇게 한마디 했다.
그 순간 두 분의 손을 꽉 잡고 티벳으로 내 달려 남은 깻잎김치 안주삼아 막걸리나 한잔(델리의 티벳인 구역에는 한국의 막걸리와 거의 유사한‘창’이라는 술이 있다)하자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씨바.. 말이라도 해볼껄!!
악수하자고 내미는 손을 잡았다. 내 감정의 오버였는지 모르지만 왜 이렇게 손이따뜻한 걸까?
그렇게 헤어졌는데, 아쉬움이 넘 많이 남았던 본 기자, 밖에서 한 20분쯤 서성이다가 물건파는 모습이나마 몰래 한 컷 더 찍었다( 집에 와서 카메라 확인해보니 깻잎 선생님은 안 찍히고 젊은 분만 찍혔다).
문득 대학 때 외치던 구호가 입안을 간지럽힌다.
'칠천만이 하나되어 조국통일 쟁취하자!'
느닷없이 이곳 델리에서, 본 기자 가슴 울컥 통일을 생각한다. 통일은 관념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난 삼촌 같은 두분의 모습처럼 실체인 것이다.
동포라는 말을 요즘도 혼자 중얼거리는
환타
- New Delhi WORLD BOOK FAIR 2002-
월드북 페어라.. 그러고 보니 몇 해째 이맘 때가 되면 이 광고를 봤던 기억이 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올해는 여길 함 가겠다는 맘이 생겼다. 마음을 먹었더니 주변에 꼬시는 사람도 생긴다. 2년만에 만난 장기여행자‘니마’는 작년에 한 번 가봤는데 무지 볼만했노라고, 심지어는‘쉬네21’도 판다는 감언이설로 나를 꼬셨다.
신문에 주소가 나온 거 같기는 한데, 어디에 붙어 있는 동넨지 알 수가 없다.
‘Pragati Maidan’
다행히 론리플래닛에서 지도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이다. 바로 인디아 게이트 뒤쪽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북페어 광고에 걸맞게 행사장은 정말 거대했다. 참고로 이 프라가티 마이단이라는 곳이 한국 Koex같은 곳이란다. 실제로는 코엑스보다 훨씬 더 컸다. 역시 땅덩어리 큰 동네라...
먼저 들어간 곳은 국제관, 오로지 이때 만해도 본 기자 머릿속 생각은‘쉬네21’이랑‘고우영 만화삼국지 무삭제 원판 CD’를 구입해야겠다는 열망 뿐이었다. 국제관이라 정문 바로 앞에 있는지 몰라도 내부가 생각보다 화려했다. 나라가 다양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구색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인도 출판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윈도우즈 기반의 Quark Xpress 부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 DTP(DeskTop Publishing)산업의 일면은 볼 수 있었다.
정해진 길이 없이 이리저리 인파에 휘둘리던 중 그러면서‘쉬네21’을 살려는 일념으로 국제관을 기웃거리는데,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DPR Korea’
오홋!! 북한관이다.
DPR.. 진짜 들어본 지 오래된 말이다. 대학시절 같이 천리안에서 피씨통신하던 아는 선배의 아뒤가 DPR 아니었던가? 물론 그게 북한을 뜻한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지만...NK니 DPR이니 한창 때 암호같이 썼던 이니셜들이다.
반가움에 소리 함 질러보고 싶었지만, 본 기자 오랫동안 씨벌건 반공 교육 받고 자란 넘이다. 멈춰서서 심호흡 함 크게 쉬고 관찰을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북한관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전시를 하지 않는 듯 했다. 가려진 천 사이로 얼굴을 디밀었는데, 울 동네 삼촌같은 두 분이 밥을 먹고 있다. 난데 없이 펼쳐지는 식사풍경에 놀란 본 기자와 밥먹는 도중에 얼굴 디미는 본 기자 땜에 놀란 그 두분은, 호상 쌍방간에 암말도 못하는 골때린 풍경이 5초간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본 기자는 똑똑히 봤다. 깻잎간장 조림과 파김치, 그리고 상추와 마늘 송송박힌 된장.. 내가 조아하는 음식을 저들이 먹고 있다는 것도 갑자기 신기했지만, 부스 전체에 퍼지는 깻잎 냄새는 정말 압권이었다. 맨날 카레먹는 본 기자 위장에서 위액 250 ml가 급속하게 밀려들어왔다. 꼬르륵...
저,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한의 딴지일보라는 신문사 기자 되겠습니다.
사진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뭐라고요?
아, 남한 신문사에서 사진찍는 사람인데요. 부스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일 없습니다. 그리고 다 팔려서 찍을 것도 없시요.
그리고 지금은 식사시간 입네다.
얼핏 보기에도 팔려는 물건이 얼마 없어 보이기는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들로서는 상당히 늦은 식사였던 셈이다.
저기 언제 다시 문 여나요? 그냥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30분 있다 다시 문엽니다. 그때 오시던지 하시라요.
우선 후퇴. 비로서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콩닥거렸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방콕- 카트만두 구간의 비행기 안에서도 북한 분을 한 번 뵌 적이 있다. 그때는 김주석 뱃지보고 쫄아서 말도 몇 마디 못건냈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대화 함 해야지..
안 본 곳 한 바퀴를 다시 도는데, 머릿속은 온통 북한관 생각 뿐이었다. 정확히 30분 후에 다시 북한관으로 갔다. 그동안 구라 안치고 시계를 한 30번 봤을꺼다.
문은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인산인해였다. 정말 이 구역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스윽- 들어갔다.
주로 파는 것이 책이 아니라 산수화, 밥상보, 그리고 부채였다. 안쪽에 책이 몇권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물건 파는 분(아까 맛나게 깻잎 김치 드시던) 이 힐끔 보길래 눈인사를 했다. 나가라고는 안했으니 허락을 받은 셈이지...
인파를 헤치고 책있는 데로 갔다. 우선 책보는 척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Tales of Chunhyang, 영문판 춘향전이었다. 그 위에는 고구려 시절의 벽화를 찍어놓은 사진집, 그리고 얼마전 조성했다는 단군릉에 대한 화보집 그리고 단군에 대한 책이 있었다. 나가라고 그럴까봐 눈치를 보면서 집사람과 고구려벽화 화보집을 펴서 소리내서 봤다.
이야! 씨바, 정말 좋다... 여기는 어떻게 이런 게 남아있나 몰라?
?그러게 말이야 정말 멋지다.
물끄러미 우리를 보던 깻잎 아저씨가 뭔가 주섬주섬 챙기더니 한 뭉테기 내놨다. 그 무뚝뚝함. 그러나 귀찮으니 먹고 떨어져라는 분명 아니었다.말없이 쓰윽 내미는 그런 게 더 우리스럽고, 정겹고, 깊이가 있다는 거, 한민족만이 아는 정서다.
천하명승 금강산/단군릉/왕건왕릉/조선의 민속1/Mt. Jongbang/Moran Hill
한글과 영어로 된 관광안내 팜플렛이었다. 그리고 입체사진으로 만든 비닐소재의 엽서 3장,‘금강산의 수류화개’엽서 2장,‘올빼미’엽서 한 장... 팜플렛이야 그냥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입체사진 엽서는 얼핏 보기에도 기념품으로 파는 것 같았다.
저 선생님.. 이 전단은 주는 거 같은데 엽서는 파는 거 같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아니 뭘...
말끝을 너무 흐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북한말이라 어법이 달라서 안들렸는지...
저.. 이 엽서가... 얼마죠?
뭐, 동포끼리 무슨 돈을.. 그냥 쓰시라요.
동포.. 씨바 이 무슨 고색창연 감동만발한 말이던가??한 동안 참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동포라... 동포... <반갑습네다> 노래 한 판 불러버리고 싶은 가슴을 열라 진정시키며 쓸어내렸다.
델리 북페어에 전시되는 북한책은 사실 몇 권 없었다. 외화벌이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파는 물건들은 암석화(천연 돌가루를 붙여 만드는 그림으로 북한이 이 쪽에 졸라 유명하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로 만든 액자들과(700루피; 21,000원), 그리고 같은 스타일의 큰 병풍 하나...
인도물가 치고도 무척 저렴하지만, 그림의 문외한인 본 기자가 보기에도 그림의 수준은 높아 보였다. 아, 집이든 절이든 뭐든 있으면 하나 사서 걸어놓는건데.. 하지만 본 기자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는 여행자, 당근 집이나 절은 없다. 딴지에서 원고료만 줘도 호텔에서는 살 텐데.. 씨바 언제 고료 받아보나.
인도인들이 보기에도 확실히 물건질에 비해 가격이 쌌던지,‘베리 칩’을 연발하며 계속 주문이 밀리고 있었다(인도넘들이 안깎고 물건사는 거 첨 봤다). 깻잎 아저씨(이하 깻잎 선생님)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가격표 붙인 스티커를 보여주고 종이로 포장만 해주고, 영어는 좀 젊으신 분이 했다. 바빠서 아주 많은 얘기를 하는 것도 실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교류가 문제되는 서로의 처지로 인해 아주 긴 얘기를 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었다. 슬프다.
장사하는 모습도 정겨웠고, 게다가 잘 팔리기까지 하니 나도 기분 좋았다.
약간 손님이 뜸해지자 깻님선생님이 먼저 말을 거셨다.
거, 신문사서 일한다구요?
아, 네.. 일간지가 아니라 딴지일보라고 인터넷에 떠다니는 신문입니다.
뭐라구요? 딴지?
남북한의 장벽이 역시, 몹시, 졸라 높았다. 민족 정론지 딴지일보를 모르다니..어서 빨리 통일이 되서 북녘 동포에게도 명랑 쏘사이어티 이데올로기를 세뇌시켜야 할 텐데..일단 화재부터 돌리자.
(단군릉 전단지를 보면서) 정말 대단합니다.
얘기만 들었는데 정말 규모가 장대하군요?
거 일전에 다 찍어가지 않더랬습니까?
동무는 그 때 평양에 안 왔더랬습니까?
네.. 그 딴지일보가.. 신문사 중에.. 막냅니다. 막내라 못갔습니다.
막내라 하는 것이 제일 적당한 듯 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그래요? 막내구만.. 젊은 동무 신문사도 빨리 성장해서
공화국에도 오고 그래야지...
감사합니다.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다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래 이건 서로에게 예의는 분명 아닌 듯 싶었다. 본 기자야 반쯤 언론인이라고 우길려면 우길 수야 있다지만, 이 분들이야.. 국가공무원들일 텐데...
선생님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림이랑 책이랑 표지좀 찍겠습니다.
다시 분주해진 부스 안쪽에서 그림들을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비치는 사진들을 깻잎선생님은 틈틈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공연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뭐랄까? 초딩때 나혼자 좋은 옷입고 등교할 때 느끼는 그런 감정? 하여간..조금은 신기로운 눈초리로 카메라를 보시는 깻잎선생님 앞에서나는 '잘사는 남한 청년의 자부심'보다는 '선생처럼 수수하지 못한 남한 청년'의부끄러움이 들었다.
남의 가게에 왔으니 물건은 팔아줘야겠지? 부채가 가장 만만해 보이길래, 이리 저리 물건을 살펴보는데, 부채에 붙어있는 술마무리가 안 좋았다. 깻잎선생님이 아셨는지 박스에서 마감이 잘된 것을 하나 꺼내주신다.
이거이 좋구마니...
깻잎냄새나는 입에서 정감어린 우리말이 나온다.
그냥 이거로 할께요.. 이게 더 그림이 이쁘네요.
집사람이 대꾸했다. 어느 덧..가야 할 시간이었다.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엽서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남한 분들에게 이 곳을 알려줘도 되겠습니까?
동포들한테 오시게 알리시라요. 괜찮습네다.
그 동안 한 마디도 안 하던 젊은 분이 이렇게 한마디 했다.
그 순간 두 분의 손을 꽉 잡고 티벳으로 내 달려 남은 깻잎김치 안주삼아 막걸리나 한잔(델리의 티벳인 구역에는 한국의 막걸리와 거의 유사한‘창’이라는 술이 있다)하자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씨바.. 말이라도 해볼껄!!
악수하자고 내미는 손을 잡았다. 내 감정의 오버였는지 모르지만 왜 이렇게 손이따뜻한 걸까?
그렇게 헤어졌는데, 아쉬움이 넘 많이 남았던 본 기자, 밖에서 한 20분쯤 서성이다가 물건파는 모습이나마 몰래 한 컷 더 찍었다( 집에 와서 카메라 확인해보니 깻잎 선생님은 안 찍히고 젊은 분만 찍혔다).
문득 대학 때 외치던 구호가 입안을 간지럽힌다.
'칠천만이 하나되어 조국통일 쟁취하자!'
느닷없이 이곳 델리에서, 본 기자 가슴 울컥 통일을 생각한다. 통일은 관념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난 삼촌 같은 두분의 모습처럼 실체인 것이다.
동포라는 말을 요즘도 혼자 중얼거리는
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