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한풀 꺾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월14일 정체 불명의 무장 괴한이 카슈미르에서 학살 사건을 저지른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은 남아시아 전체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인도는 10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고 동부 해군까지 국경 인근으로 이동시켰으며, 파키스탄은 이에 맞서 3회에 걸친 미사일 실험으로 ‘우리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만방에 공표했다. 아시아 16개국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중재가 무위로 돌아가자, 외신은 전면전 가능성까지 점쳤다. 그러나 전쟁 분위기만큼이나 화해 기류도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인도를 교차 방문한 이후 들리는 소식들은 낙관적이다. 물론 표현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아미티지는 “긴장이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분쟁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여운을 두었다. 그러나 양국은 모든 분쟁이 해결된 것 같은 분위기이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거취에 대해 인도에 보증을 선 것으로 보인다. 아미티지가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을 만나 ‘테러 집단의 월경을 막겠다’는 확약을 받아내고 이를 인도 정부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인도 정부 역시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들의 월경이 줄어들었음을 확인했다.

전면전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6월10일의 아미티지 방문은 파키스탄에 대한 인도 정부의 화해 조처로 귀결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항공기 영공 통과 금지 해제’만 발표되었다. 대다수 외신은 환영하면서도 화해 조처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부도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바로 다음날 벵갈 만 주둔 동부 함대에서 서부 해안으로 지원 나온 함정 5척을 원대 복귀시킨다고 발표했다.

사실 지금까지 나온 화해 조처는 이것이 전부다. 두 나라 간의 상업 항공로는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다. 해군 함정 철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키스탄 해군과 인도 서부 함대도 여전히 대치 중이다. 단지 지원 함대만이 자대로 복귀했을 뿐이다. 아직 평화를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전쟁의 불씨까지 꺼진 것은 아닌 것이다.

인도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인도 군부의 ‘정치 불개입 원칙’이다. 인도 군부의 정치 불개입의 뿌리를 카스트 제도에서 찾는 학자들이 있을 만큼 확실히 지켜져 온 이 원칙에 따라 인도는 지금까지 문민 우위 국가의 모습을 보여 왔다. 심지어 총리가 내부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도 군부는 전선만을 지켰다. 인도 주변 대부분의 나라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군사 쿠데타에 시달린 것에 비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6월9일 인도 해군 참모총장은 묘한 발언을 했다. “인도 해군은 작전 명령이 떨어지면 4시간 안에 파키스탄을 공격할 수 있다.” 전쟁 분위기가 한참 고조되고 있을 때나 나옴직한 발언이었다. 당시는 아미티지와의 회담이 마무리되어 화해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이런 발언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카슈미르 전선에서 인도군은 선제 공격을 계속했다. 심지어 화해 조처가 발표된 날도, 그리고 이틀이 지난 6월13일에도 말이다.

영국의 <텔레그래프> 6월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인도군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공격을 최종 승인해 달라고 중앙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군 수뇌부의 한 장성은 “위기에 처한 연립 정부는 공격 계획 거부가 정치적 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달래면서 때리는 외교적 수단으로 보기에는 인도 중앙 정부와 군부가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좋고 파키스탄 좋은’ 묘수 찾기

지난해 12월 이후 긴장이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을 때 인도 정부와 언론이 가장 열심히 유포한 소문은 알 카에다 관련설이었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있다거나 인도령 카슈미르에 있다는 미확인 보도가 인도 신문들의 1면을 장식하기까지 했다. 물론 외신들은 누구 하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화해 조처가 발표되고 불과 몇 시간 후, 잠무 카슈미르 북부 LoC(카슈미르 통제선) 인근의 도시 드라스에서 의미 심장한 뉴스가 타전되었다.

‘인도 정부군, 알 카에다 요원 2명 사살’. 이 기사 한 줄로 인도 정부가 끊임없이 주장해 왔던 알 카에다 활동설은 단지 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6월10일 파키스탄에서 출국해 미국으로 들어간 ‘더러운 폭탄(방사능 유출 폭탄) 투척 혐의자’가 미국 연방수사국에 체포됐다. 이 사람은 알 카에다 요원으로 확인되었다. 이 날은 인도 정부가 1차 화해 조처를 발표한 날이다. 하지만 인도 언론은 대부분 화해 조처를 단신 처리하고, 파키스탄 출신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와 관련한 워싱턴발 기사로 1면을 가득 채웠다. 6월12일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LoC 부근에서 알 카에다가 활동하고 있는 징후를 포착했다면서 알 카에다-파키스탄 테러리스트 연계 문제를 사실상 확인했다.

‘미국이 직접 알 카에다 분쇄를 위한 작전을 펼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럼스펠드는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막판에 미국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인 서북 변경구에서 작전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파키스탄 정부에 요청했던 것으로 보아, 직·간접으로 개입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알 카에다가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떠오르면서 분명 국면은 2라운드로 접어든 느낌이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 간의 전면전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인도와 국내 이슬람 단체, 야당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정쩡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인도는 미국의 확고한 지원을 담보로 해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두 나라 사이의 핵전쟁을 비롯한 전면전 가능성을 없애면서, 테러와의 전쟁 제2 라운드, 즉 ‘카슈미르 전투’라는 새로운 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자존심 싸움으로 치닫던 급박한 상황에서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이 절묘한 수 때문에 전면전의 위험은 사라졌다. 그러나 또 다른 전장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카슈미르이다. 지난해 9월 이후 부시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틀이 무너질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이곳이었지만, 이제 카슈미르는 부시가 마음껏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방콕/전명윤 · 이성규 (리포트25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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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