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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뉴스의 성격이 각 나라의 공중파 방송들중 괜찮은(혹은 우리가 흥미있어할법한) 내용을 추려서
보내주는 걸로 아는데,
뭐 그건 좋다.
한국인은 아직도 세계로 향한 창이 많이 닫혀있는 편이니까.
내가 문제삼고 싶은건,
그 내용인데,
뭐냐면
중국 정부가 카슈가르의 위구르 인들이 살던 헌집들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준다는 내용이다.
카슈가르, 얼마전 난리가 났던 우루무치는 중국령 신장의 수도고,
카슈카르는 신장의 주역인 위구르인들이 독립국가를 세웠을때 수도였던 도시다.
즉 위구르인들의 정신적 수도이자, 저항의 구심일수 밖에 없는 동네다.
우루무치에서 수백명이 죽었다.
바로 중국의 식민통치 때문에.........
그 사건이 있은지 겨우 2주가 지난 지금
중국의 CCTV가 왜 그런 프로그램을, 그런 뉴스를 보냈을거라 생각하나?
중국정부는 위구르 니덜을 위해 이렇게 집도 지어주고 늬들 살기 좋게 만들어주는데,
일부 위구르넘들이 테러분자와 손을 잡고 폭동을 일으킨거야.
CCTV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였다.
그리고 KBS는 병신같이 중국정부의 은혜로운 위구르족 포용정책을
아까운 전파 써서, 한국민한테 홍보해준거다.
아무리 헌법이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는 엄연히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국가다.
우리도 나라 뺏겨, 수많은 사람들에게 테러민족, 테러분자 취급받던 바로 그들의 후손이고,
심지어 헌법에 그들의 뒤를 이었다고 명시한 나라다.
우리는 식민지배를 받는 민족에 대해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동조할수는 없겠으나,
최소한의 심적 연민만은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를 가진 민족인게다.
KBS가 김비서가 되어버린건 알겠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명박 핥아주는것까지도 이해가 되는데 말이다.
중국 정부까지 핥아줘야하는 건가?
정신좀 차려라......
그리고 뉴스 선정할때 생각좀 해라.
뇌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면 말이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뭐랄까? 한국에서 맛보는 중국요리의 모호함과 국적불명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물론 짜장, 짬뽕을 격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 요리가 한국식으로 변하가는 과정의 대표적인 퓨전요리인 이 두 요리를 중국에서 건너온것이라고
혹은 중국 요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산동지방과 가까운 탓에,
한국에서 살고 있는 중국집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화교들은 산동출신입니다.
중국을 다니다보면 느끼실지 모르는데, 산동지방 요리가 한국인의 입맛에 그럭저럭 잘 맞는 편입니다.
파를 중시하는 관계로 최소한 느끼함의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된데다,
동네 자체가 우리의 서해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관계로 해물요리도 많이 발달했죠.
해서 한국에서 맛보는 중국요리의 기본 베이스는 산동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덕분에 중국집에서 볼수 있는 극소수의 산동지방 이외의 요리.
이를테면 마파두부같은 것은, 사천지방에서 먹는 맛과 180도 다른 맛을 냅니다.
한국의 마파두부는 솔직히 매운케찹두부요리에 가깝죠.
몇해전부터 훠궈가 한국에 상륙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중국을 오가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아무래도 그 느끼한 동네에서, 느끼함을 한방에 해결할 유일한 요리가 훠궈다보니,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겠죠.
여의도의 중경신선로, 홍대의 불이아,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계 체인인 샤오뻬이양이라는 차마 먹기 어려울것 같은 귀여운 양그림이
상징인 회사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훠궈에 입맛을 길들일만한 때인 지금....
이제 슬슬 본격적인 사천요리 레스토랑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지금 소개할려는 마라향도 바로 사천요리 레스토랑입니다.
입구는, 한자만 없으면 인도식당이래도 믿을 것 같은 분위기
마라 麻辣. 산초과의 식물 열매로, 먹으면 화한맛이 납니다.
나쁘게 말하면 치약 씹어먹은 맛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맛의 상식이 다섯가지맛에 사천 사람들은 몇가지를 추가합니다.
시금 털털한맛과 화한맛이 그것인데요.
마라는 바로 화한맛이 나는 향신료의 일종.
여기에 매운 고추맛이 더해지면, 어지간해서는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맵고 화한맛(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운 느낌입니다.)이
탄생하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맵다고 알고 있는 사천요리의 극의는 바로 이런 맵고 화한맛입니다.
처음에 사천요리 레스토랑이 홍대에, 그것도 이름이 마라향이라는데에서부터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잘 할까?
이제 출발합니다.
이 집은 단품요리도 판매하지만 점심때 취급하는 점심 세트가 또한 인기 만점입니다.
가격대 성능비가 높다는 평으로 인해, 미리 예약을 해야하죠.
우리는 사흘전에 예약을 했고, 빨리 해서인지 예약을 하는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당일,
식당을 찾기는 어렵지 않더군요. 상수동사거리에서 합정방향으로 내려오다보면, 오른쪽이 홍대 주차장골목과 연결되는데요.
주차장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블럭, 바로 왼편에 있습니다.
내부는 그냥 깔끔합니다.
요즘들어 인테리어에 너무 과하게 집착하는 중국집(레스토랑이라고 하죠..이런집들은...)들이 생겨나는데,
마라향은 딱 적당한, 과하지 않은 수준, 창가에는 몇개의 중국산, 중국풍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있습니다.
딱 손 탈것 같은......^^;;; 창가의 자사 미니어쳐
사실 이 날 저는 세트와 단품을 골고루 맛보고 싶었으나,
먼저 와 있던 일행이 세트 세개를 과감하게 시켜버리는 바람에 단품 요리는 맛보지 못했습니다.
세트의 첫번째 요리는 게살 스프입니다.
두부를 어떻게 쓸면 저리 될까에 대한 유치한 논쟁이 있었다.
사실 게살보다는 두부가 더 많았죠.
중국의 탕(스프)에 대해 거의 기대하지 않는 편인데,
먹을만 했습니다. 녹말의 밀도도 적당했고, 맛도 설끓이는 중국탕치고는 괜찮았습니다.
사실 스프야 뭐 에티파이저니 이 집 요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할만한건 아니죠.
두번째 세트요리는,
발채삼고라는 버섯요리입니다.
짜사 이야기를 안했는데, 특별히 언급할만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 물론 발채삼고는 훌륭했고....
뭐 해석하면, 머리카락 세가지 버섯--;; 정도???
발채는 사천지방의 민물에서 나는 민물수초의 일종입니다.
가느다란 청각같은 느낌이랄까요?
원래 발채삼고의 핵심은 사실 송이버섯입니다.
가을철에 사천, 운남지방을 여행하면 시골 장터에서 송이를 채취해서 파는데, 가격이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합니다.
(물론 지금은 송이에 환장한 일본, 한국인 여행자로 인해 외국인으로 보이면 엄청 가격이 튀긴 합니다만...)
버뜨, 한국에서 송이는 금값이죠.
새송이, 팽이, 표고가 나름 송이의 역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든 은행도 아주 맛있더군요.
스프와 거의 비슷한 간의 음식이 연이어 나온다는 것은 좀 그랬으나, 요리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세번째, 메인입니다. 마라새우라고 부르더군요.
마라향의 마라새우. 새우, 물은 좋더라.
베이징의 꾸이제라는 곳을 가면, 이런 마라새우를 전문으로 파는 거리가 있습니다.
사실 새우는 그리 대중적이진 않구요. 갯가제가 더 일반적입니다. 중국에서는 이걸 마라룽샤(룽샤는 바닷가대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는데, 중국은 갯가재를 굳이 다른 종으로 구분하지 않나봅니다. 뭐 새끼 바닷가재처럼 생기긴 했죠.)
중국 전역에서 대중적인 요리에 속하는데, 이게 또 마라와 고추의 조화가 중요한지라 동네마다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건 중국에서 오신 분 --; 양이 좀 다르다 --;;
제가 먹어본바로는 스촨의 핵심지역중 하나인 충칭과 베이징에서 맛본것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마라향의 마라새우는 맛으로 비교하자면
우선 합격선,
다만 중국의 그것이 마라향만큼 고추향이 강한 반면,
마라향의 마라새우는 마라향이 우선입니다.
미리 세트메뉴를 주문해놓았다는 동행은 마라의 화한 맛에 온몸에 힘이 쭉빠지는.....
오선생을 처음 만난(음담패설임 --;) 사람처럼 축 늘어지더군요.
새우의 선도는 합격점, 함께 들어가있는 모시조개는 알이 좀 작더군요.
뭐 가격을 생각하면 여기까지만 왔어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매웠으면 하지만, 제가 한국인 평균보다 맵게 먹는 편이라......
힘이 쭉빠진 일행에서 보듯, 이만해도 마라를 처음 접하는 일반의 한국인들에게는 벅찬 모양입니다.
네번째 코스는 레몬기정입니다.
양상추도 맛있었다는....--;;
최근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중국집의 특징인 쫀득한 튀김옷을 입힌 닭튀김에,
탕수육소스가 아닌 레몬소스를 뿌렸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성들은 딱 좋아할만,
남성입장에서는 튀김옷이 좀 크고, 고기가 적은 편이라 뻥튀기잖아? 라고 느낄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
탕수욕 매니아는 마녀는 닭보다 돼지, 레몬소스보다는 파인애플을 가미한 탕수육 소스가 더 낳다고 한마디 하더군요.
처음 이런류의 음식을 맛본다면, 단연 반할 겁니다.
저희들이 까칠하다는 건,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섯번째는 주식입니다.
인터넷으로 본 바에 의하면 볶음밥도 나오는거 같던데,
저희가 있을때는 짜장과 짬뽕만 선택이 가능했습니다.
우선 면,
면이 상당히 가느다란 편이고,
일반적으로 면을 쫄깃하게 만들기 위해 소다물에 삶는데,
이 집 면은 그냥 소다물에 삶은 면보다 더 쫄깃했습니다.
식감, 면의 느낌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양도 평균의 배를 가진 분이라면 지금까지 먹은 것도 있고 만족스러울 겁니다만,
저는 한젓갈에 끝이 나더군요.
뭐 제 배가 큰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짜장은
불맛이 느껴지더군요. 들통에 부글부글 끓여서 국자로 떠주는 짜장은 결코 아닙니다.
완두콩 두세알이 있었다면 더 이뻤을텐데.....
잘 볶았고, 기름을 잘 뽑아서 느끼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면도 한몫을 했구요.
장은 약간 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만, 이것 역시 개인차가 심한 문제라....
짬뽕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게가 두덩나 들어있었다. 세트 메뉴 짬뽕치고는 좀 의외..뭐 나야 좋았지만.....
돼지가 아닌 닭국물베이스로 보였고, 해물맛과의 조화도 잘 이루어졌습니다.
짬뽕안의 해물도 냉동이 아닌 생물로 보이는 식감이었습니다.
매운 정도도 딱 적당한 수준,
처음에는 좀 약하지 싶은데, 마실수록 깊은 시원함이 몰려옵니다.
이제 후식이 뭘까 궁금해지더군요.
후식은 연시 샤베트였습니다.
망고에 질린 나는 망고보다 감이 좋았다는.....--;;
흠....한국에서 토종디저트를 거의 안먹어본지라,
저는 이런식 처음봤는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더군요.
망고에 질린 인간이라, 개인적으로는 연시가 훨씬 부담도 없고 좋았습니다.
가장 중요한건 가격이겠죠.
이 거 다먹고 15000원이면 상당히 괜찮은 조건입니다.
물론 점심 식사에 15000을 투자할 직장인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접대나, 사장님이 한번쯤 쏘신다면, 살살 구슬려서 끌고 올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트메뉴는 매월 개정이 됩니다.
제가 먹은 것을 7월의 세트구요.
8월에는 다시 바뀐다는 이야기죠.
8월에도 날 잡아서 하루 갈수 있을지도 모르나,
저의 만족도가 88점인데 비해
마녀는 75점이라네요.
마녀의 감점 포인트는 육식부족.
저의 플러스 포인트는 적절한 채식 요리의 배분입니다.
둘이 이런 부분에서는 식성이 많이 달라서요.
저는 추천합니다.
맛 ****
분위기 ****
가격대비 성능 *****
친절도 ****
이알 쿵후 1과 남극탐험에 삘이 꽃혀 구입한 MSX 기반의 IQ-1000.
세월은 화살처럼 빨랐다.(아니 그때는 10대였으니 지금처럼 빨르진 않았을거 같다만...)
게임업계는 몇가지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바로 메가 롬팩의 출현.
무려 1024KBit(바이트 아니다...바이트로 하면 128Kbytes)의 롬팩이 메가롬팩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첫번째 테이프를 끊은 회사는 요즘 위닝으로 유명한 코나미였다.
오락실용으로 먼저나온 그라디우스가 MSX로 컨버젼되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 한국에는 오락실용 그라디우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
대신 외전격인 사라만다가 있었다.
오프닝이 압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화려한 그래픽이었던 불꽃의 묘사.
음성지원....이끼나포 쎈탑~~<-뭐 이런...지금 들어도 뭔말인지....--;;;
그리고 종횡스크롤 지원........
전두환덕에 설치된 컴퓨터를 어찌하지 못했던(이미 MSX오락은 시들해졌을때...)
오락실들은 메가 게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그라디우스, 그리고 꿈의 대륙.......
남극탐험2에 해당하는 꿈의 대륙은....놀라웠다.
우주로도 나갈수 있었고, 보스전이 있었으며, 아이템을 먹으면 긴 점프등의 기술도 쓸수 있었다.
구입 1순위였던 꿈의 대륙...
하지만, 메가단위의 롬팩이니 얼마나 비쌌겠는가?
꿈의 대륙은 진정 내가 가야할 꿈의 대륙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란가?
당시 세운상가의 파워는 또 어떠했는가?
구동장치를 앞서 말한 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채,
데이터만 임시 보관하는 램 방식(당근 컴터 끄면 재로딩해야한다.)의
골든박스라는 신기가 출현했다.
가격은 롬팩값과 진배 없었으나 일단 구입하면 저렴한 카세트 레코더로 로딩이 가능한.....
물론 메가비트의 고용량이다보니, 로딩시간이 한시간이었고, 테이프의 특성상 에러라도 나기 시작하면
그 짓을 몇번이고 해야했다.
어쨋건 나는 드디어 그라디우스와 꿈의 대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욕구는 커져만 갔다.
이미 1986년 대우에서는 IQ-2000이라는 MSX2규격의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MSX2의 장점이라면
우선 512색중 256색을 동시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초 워크스테이션급(당시로는) 그래픽을 구현했다는 점.
꼴랑 16색뿐인 MSX1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다.
그리고 횡스크롤을 컴퓨터 차원에서 지원했다.
스크롤.....비행기 게임할때 화면이 자연스레 옆으로 넘어가는 그 기능인데.
MSX1때만해도 이걸 소프트웨어 적으로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화면이 손가락 반마디씩 깜빡거리며 움직였다.
부드러운 MSX2나 오락실 스크롤은 늘 부러웠다.
하지만,
컴퓨터 사서 늘 게임만 하던 나는 이미 신용을 잃었고,
신기종(그것도 당시 형편으로 무리해서 구입한 건데...)은 꿈속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초기에는 MSX2전용 게임 자체가 별로 없없다.
즉 512색중 256색을 쓴 프로그램이라곤, 컴퓨터 구입할때 따라오는 데모 프로그램빼고는 없었다는...
그래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
메가롬팩 시대가 열리며, 이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던 T&E라는 곳은, 게임을 마구 뱉어내기 시작했고(그래픽 빨은 좋았다.)
코나미도 우샤스, 메탈기어(전설의 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MSX1게임은 그라디우스 시리즈(끈질기게 1으로 발매했다.)
F1 스피리트같은 자동차 게임이 전부였다.
기변병...........
기변병...........
버뜨, 그런데 기변병은 쉽게 해결됐다.
파덜이 일본여행을 가서는 덜렁 한대를 사온거다.
바로 FS-A1F라는 파나소닉의 MSX2.
FDD내장형!!!!!
당시 3.5인치 FDD는 첨단 제품이었다.
한국에는 퀵디스크라는 1.8인치짜리 초소형 디스크 드라이브가 처음 보급되었고.(물론 애플쪽은 5인치 디스크를
예전부터 쓰고 있었다.) 3.5인치는 내가 FS-A1F를 구하고 1년후쯤 나왔는데, 약 40만원쯤 했다..(1987-8년 물가로!)
FDD..지금이야 느려터진 매체에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카세트 테이프에 비하면, 128Kbit를 한시간에서 1분여로 단축해준 신기중의 신기였다.
FDD가 조금씩 보급되며 바뀐 현상은, 카피 가게가 생겼다는것.
사실 당시의 모든 컴퓨터 가게들이 똑같았는데,
FDD를 가져가면 장당 2000-3000원씩 받고 그 안에 게임을 복사해줬다.
기억으로 연신내 어딘가에 있던 컴퓨터 숍이 일산 게임 복사가 가장 빨랐다.
일본에서 나오면 3-4일안에 카피본이 풀렸으니까......
나는 정말 미친듯이 게임에 빠졌고............
YS가 등장하며 FDD전용 게임도 나오면서 이제는 완전 오락실 부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또다른 기변병이 불기 시작했으니.......
글 쓰다보니 여기가 살짝 그립네....(이런적 거의 없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1982년이었을게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같은게 열렸다.
컴퓨터라는 단어에 생소하던 시대니 만큼 언론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그때 대상인지 1등인지를 받은 아이가 있었는데,
뭐 병든 엄마를 살리기위해서 용궁으로 가는 게임을 만든 친구였다.
단지 까만 화면에 깜빡 깜빡이는 움직임따위였지만, 그건 신세계였다.
'엄마를 살리기위해'라는 단어에서 나는,
이거 사달라고 하면 먹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혼자 상상의 나래(지금 뭔 상상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를 피면서 흐뭇해했다.
당시 초딩의 대부분은 주산학원을 다녔다.
주판이라고 아는가 모르겠는데,
나 초딩때는 이거 다 배워야 했다.
이때가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올땐데,
아무래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주판의 시대가 저물걸 예상한듯한 학원들은
벽마다, 주판이 전자계산기보다 빠르다는 포스터를 붙여놓곤 했었다.
뭐 더하기 빼기는....버튼 누르는 속도보다 저게 빠르긴 하다.
주산학원은 덤으로 암산이라는 걸 가르쳤다.
선생이 1+25+32+8을 말로 부르면-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1원이요, 이십오원이요, 삼십이원이요 식으로 끝에 꼭 원짜를 붙였다.-
주판을 좀 놓을줄 알면, 이 암산을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책상에 가상의 주판을 상상하며 손으로 튕기면 계산이 되었다.
뭐...그 당시는 물자가 부족해서, 그냥 맨바닥에도 상상력을 동원한 터치 기능이 가능했다....지금이야 터치폰 있어야하지만 --;
하여간 주산학원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교육적 효과는 두뇌개발이었다.
이 때 양지의 주산학원과 함께 두뇌개발을 강조하던 분야는 상대적으로 음지였던 전자오락실이다. --;
하여간, 컴퓨터도 컴퓨터 판매상들 주장에 의하면 두뇌개발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 완제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그 대상인가 받은 친구 집을 티비가 비췄을때얼핏 컴퓨터라는걸 봤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효성이라고 써져있었다.(당시 효성은 애플 2+ 호환기종을 만들고 있었을게다.)
이 기억을 뒤로....
그 다음 기억은 1984년이다.
둔촌동에도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이때는 드디어 국내에서도, 아니 대기업에서도 컴퓨터가 막 양산되던 때였다.
우리의 가전3사도 모두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삼성의 SPC-1000
금성(지금의 엘지)의 FC-80, 100, 150 시리즈(서로 호환 안됐다 --;;)
그리고 대우의 아이큐 1000이었다.(참고로 금성의 FC-80도 MSX방식이었다.)
학원에서는 삼성 SPC-1000으로 수업을 했다.
컴퓨터라는게 배우면 금방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수 있을거 같았지만.
현실은 베이직과의 싸움이었다.
당시의 학원 교육이라는건, 칠판에 베이직 코드를 적어주면
그걸 타이핑 친다음(타이핑은 알아서 배워야 했고, 그래서 그때는 대부분 독수리였다.)
실행(기억으로 F5를 누르면 실행이 되었다.)하는 방식.
처음 그린건 원이었다.--;
10 screen 2
20 circle(120,80), 40
30 goto
run
뭐 대충 기억을 복기하자면 이런거였고,
그러면 화면에 원이 그려졌다.
음......그게 다다.
이때는 마우스니 GUI니 없던 시절이고, 도스보다도 예전으로서
컴퓨터를 키면 베이직 언어가 로드되고, 커서만 깜빡거렸다.
SPC-1000은 카세트 레코더 내장식이었는데,
이때는 카세트 레코더에 프로그램을 녹음했다.(스피커로 들으면 삐이이이이이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이 즈음 나오기 시작한 더블데크또한 덕분에 인기품목이었다.
그게 있으면 대충.....프로그램을 구울수(?)있었으니까......
하여간, 난 사실 컴퓨터 배우면 게임을 좀 마음껏 할줄 알았는데,
이놈의 삼성컴은 칼라도 안나오고, 게임속 캐릭터도 한번 움직일때마다 화면이 일렁였다.
지금 생각나는 인상적인 게임이라곤 캥거루 뿐이다.
그 즈음.....그러니까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1985년
오락실에는, 전두환의 컴퓨터 육성책의 하나로,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지금의 공중 컴퓨터의 효시인데,나무 상자안에 컴퓨터 키보드만 돌충된 형태로...(당시는 바디+키보드 일체형)
이렇게 보급된 기종이 대우의 IQ-1000이었는데, 이건 삼성컴같은 자체규격(맞나?)이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아스키가 만든 일종의 수입 규격인 MSX방식이었다.
8비트 시절에는 미국,유럽의 애플 호환기와 일본및 몇몇 나라의 MSX방식의 싸움이었는데,
MSX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빨랐고(애플은 1Mhz-기가가 아니다. MSX는 무려 3.58Mhz였다!!)
별도의 확장없이 16색의 칼라가 나왔으며, 티비와 연결이 가능해서 별도의 모니터 요금이 들지 않았다.
하여간,
당시 기준으로 최고의 멀티미디어 컴퓨터다 보니, 오락실에서 MSX로 베이직을 공부하는 녀석은 진정 얼빠진 놈이었고,
대부분 게임을 로드시켜 하고 있었다.
당시의 명작게임이라면
요술나무
양배추(세계최초의 코스프레 게임 --;;; 일지도..)
이얼 쿵후
등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삘이 왔다구나 할까?
내가 가야할 길은 삼성이 아니라 대우였다.
그리고 컴퓨터 구입은 의외로 싱거웠다.
1985년 뭔 바람이 불어서인지 가전제품을 다량구입
(우리집 최초의 칼라 티비, 냉장고, 컴퓨터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게 된 것이다.
티비는 당시 처음 시작한 스테레오(이게 뭔지도 몰랐다.) 및 음성다중(어지러웠다.) 방송을 지원하는 14인치.
냉장고도 당시로서는 처음인 영하 20도 급속냉각기능이 있는 아이씨 냉장고
그리고 아이큐 1000............
사양은 다음과 같다.
MSX BASIC V1.0 (16 KB)
- RAM: 8 KB minimum, most machines provided either 32K or 64K, machines with 128 KB exist
-
Video Display Processor: Texas Instruments TMS9918 family
- Video RAM: 16 KB
- Text modes: 40×24 and 32×24
- Resolution: 256×192 (16 colours) <=이거 중요하다. 당시로서는 최강....16색!!
- Sprites: 32, 1 colour, max 4 per horizontal line
- Sound chip: General Instrument AY-3-8910 <=3중화음 8옥타브를 지원하던....오디오 칩
베이직 프로그램 연마는, 아이큐 1000을 구입하는 즉시 잊었다.
엠에스엑스는 두가지 방법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롬팩이라고 하는 지금의 닌텐도 디에스같은 롬 칩을 끼우는 방식과
SPC-1000에서도 애용하던 카세트 테이프(데이터 레코더라고 했다..)를 쓰는 법....
롬팩은 넣자마자 게임이 되었지만, 비쌌다.
1985년 물가로 19800원에서 29800원까지.....
카세트 테이프 게임은 쌌다...3000원...
당시로서는 3000원도 꽤 큰돈.......
진정 부잣집 자제들은 롬팩을 박스로 가져다 놓고 했지만,
난 한달에 게임 테이프 한개 사기도 버거웠고,
덕분에 한우물만 팔 수 있게 되었다. --;;;
하여튼 첫번째 게임기 --;;; 아니 컴퓨터 아이큐 1000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