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얼리아답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8/30 Pages 신버전의 아이북 출력기능 by 환타fanta
  2. 2010/08/30 주말 삽행기 by 환타fanta
  3. 2009/09/26 환타옹의 컴퓨터 기변기-3- 80286AT-16Mhz by 환타fanta
  4. 2009/09/10 iTunes9 버그 by 환타fanta
  5. 2009/07/14 환타옹의 컴퓨터 기변기 -2- FS-A1F by 환타fanta
  6. 2009/07/06 컴퓨터 기변기 -1- IQ-1000 by 환타fanta (6)
  7. 2009/06/18 ipod OS 3.0 판올림 by 환타fanta (3)
  8. 2009/05/19 마녀 퇴원후 구입목록 -1- by 환타fanta (8)
맥의 표준 워드 프로세서인  Pages가 업데이트 됐다.
업데이트의 핵심은 바로 이북용 파일형식은 epub로 파일 출력이 가능해졌다는 것.
단지 파일 내보내기만 설정해주면 자동으로 iBook을 위시한 이북리더기로 출력이 가능해졌다는 것.

심심해서 인도개정판의 께랄라 원고를 Pages로 옮겨서 넣어봤다.
뭐 용량이 얼마 안되서이겠지만, 바로 파일이 뜬다.

이걸 iTunes의 구입함 항목에 넣고나서 아이폰 동기화만 시켜주면 이렇게


본문도 이렇게 보인다. 


뭐 내 원고는 이렇게 넣어서 틈틈히 보면서 수정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정말 아이폰 잊어먹으면 밑천이 다 날아가겠구나라는 두려움이 함께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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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산 맥북 프로에는 그전에 쓰던 1394a가 아닌 1394b가 달려있었다.
USB가 1.0부터 앞으로 나올 3.0까지 같은 소켓을 사용하는데 비해, 1394는 소켓 모양이 다르다.
아이들이 만져도 문제 없을 정도의 튼튼한 케이블이 개발당시의 중점과제중 하나였다는데,
그 때문인지 금속성 소켓으로 인해 가끔 찌릿함을 안겨주던 1394a에 비해 1394b의 소켓은 플라스틱 속에 금속 소켓이 내장된 형식이라. 아이가 빨지 않는한 안전할 것 같긴 하더라.

아 참고로 1394a가 전송속도 400Mbps인데 비해 1394b는 그 두배인 800Mbps다.
뭐 피씨쪽은 Sata를 직접 연결하더라만, 내 13인치 맥북 프로는 익스프레스 슬롯도 없는 기종이라 Sata를 직접 연결할 길은 없다.

에니웨이.
그러다보니 기존 맥북에서 1394로 구성했던 외장하드들이 맥북 프로를 구입하고 부터는 죄다 UBS2.0으로 구성을 바꿔야 했다.
뭐 다행히 지금 쓰고 있는 두개의 케이스가 모두 1394a와 USB겸용이라 케이스를 바꾸거나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USB는 대용량 파일을 전송하거나 할때 1394a에 비해 느리고 안정성도 떨어지며, CPU에 걸리는 부하도 많다.

대충 포기하고 살다. 한달전쯤.
한쪽 소켓은 1394b이고 또 한쪽은 1394a라 호환이 가능환 케이블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냉큼 질렀다.
그리고 다시 1394의 세계로 편입했다.
뭐 1394b의 속도를 즐기고 싶었으나 그럴려면 외장 케이스를 모두 갈아야 하는 상태. 게다가 하드 하나는 pata방식이라 케이스를 구하기도 힘들다.(지구상에 존재야 하겠지만.)

문제는,
1394가 상당히 불안했다.
하드가 잠자기 모드로 들어가면 아예 깨어나질 않거나, 심지어 시스템 커널패닉까지 일으켰다.
결국 보름쯤 쓰다. 새 케이스를 사서 1394b로 가자고 결심. 케이스 물색에 이르고, 급기야 세로텍에서 나오는 RS-2라는 놈을 주문했다.




뭔 놈의 케이스가 23만원.
하드 두개가 동시에 들어가고, 하드웨어 적으로 레이드 구성이 된단다.
사실 안정성이 더 중요한지라 레이드0 구성은 생각도 없었다.
그냥 하드 두개를 개별적으로 인식한다니, 그리고 1394b를 지원하고 안내 페이지에서
맥에 찰떡 궁합인것처럼 써놔서 주문한거다.

물건은 28일 도착했다.


룰루랄라…..조립을 했는데, 신발 하드 인식을 못하는거다.
살짝 패닉.
분리해서 재조립(사실 의미없는)하고, 커넥트부를 유심히 봤지만 접촉불량으로 인한 것 같지는 않았다.
1394b는 포기.
기존의 1394a,b 호환 케이블 접속. 인식불가.

근데 USB는 연결이 된다.

그런데, 내가 USB쓸려고 이걸 산 건 아니지.
1394b만 바라보고 23만원을 투자한거니까.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우선 가정할 수 있는 원인의 수는
내 랩탑쪽 1394포트의 고장
혹은 외장하드쪽 1394포트의 고장

내 랩탑쪽은 호환 케이블로 캠코더가 무리없이 연결되고 있었고, 외장 하드도 잠자기 패닉에 빠져서 그렇지 연결에는 문제가 없었다.
PRAM소거와 SMC리셋도 완료. 하드웨어 테스트 오케이.
내 쪽 문제는 아니다.

구글링을 했다.
이런 신발.
다나와에 해당 상품의 첫번째 상품평이 맥 오에스 10.6에사 사용이 안되 반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더 검색을 하니 KMUG의 어떤 유저는 10.6에서 문제없이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검색의 범위를 늘려 영어 검색에 돌입했다.
맥 오에스가 10.6으로 업데이트 하면서 1394관련 이슈가 꽤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0.6에서 1394 I/O파일이 메이저업데이트를 했는데, 문제는 외장하드 제조사에서 쓰는 컨트롤러 칩과의 충돌이 있다는.

무려 29페이지짜리 이슈 토론글을 모두 본결과.
많은 유저들이 맥 오에스의 그전 버전인 10.5.8에서 1394 I/O관련 5개의 파일을 복사해 10.6의 해당위치에 넣으니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성격이 급해 백업없이 시스템 파일을 건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이랬는지….)
맥의 디스크 유틸리티에서 외장하드가 잡힌다.
오예! 쾌재를 부르며 디스크 권한복구를 하는데, 뭐가 마이 틀어졌단다…ㄷ ㄷ ㄷ ㄷ
그리고 재시동.
헐퀴. 아예 컴퓨터에 1394포트가 없는 걸로 잡힌다.
출동끝에 해당 파일을 죽여버린거다.
다시 원래 파일을 복사해 넣었는데.
안된다!!!! 이런 닝기미…

살릴려던 1394포트 사망.
결국 시스템을 새로 깔아야 하는 상황이다.
급하게 애물단지 외장하드 케이스를 USB로 전환하고
메일계정, 사파리 즐겨찾기 메뉴등등을 복사해 넣었다.

이미 새벽 3시 --;;;

어차피 시스템을 새로 깔아야 할 거.
정말 10.6의 문제인지 알아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대체 그 시간에 왜 들었을까?
나는 10.5를 깔고 있었다. --;;; ㄷ ㄷ ㄷ ㄷ ㄷ

새벽 4시

헐…..잡힌다….1394b
우선 10.6 오에스 문제고 이 경우 업체에서 펌웨어를 업그레이드 해줘야 하는데.
2009년 새로 나온 이 케이스를 만든 세로텍 홈페이지를 이잡듯이 둬져도 그런건 없었다.
Q&A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이슈도 없더라….(이럴수가 있나? --;;;)

우선 잠시 고민.
원도우로 치면 7쓰다 비스타로 내려가는 건데,
그나마 내껀 10.5가 깔려있던 기종이라 다행이지, 10.6부터 깔려나오는 작년 가을이후 모든 맥은
다운그레이드가 안된다.

게다가 애플은 구 오에스에 대한 지원이 좀 미약한 편이고, 모든 프로그램도 신 오에스 기준으로 딸려나오는지라. 내가 외장하드때문에 오에스를 다운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건 생각해보니 말도 안됐다.

결국 그냥 확인만 했다.
확인만 했어도 좋을텐데…이 빌어먹을 지적호기심.
그렇다면, 10.5의 최신 업데이트를 모두 받은 상태에서 1394 I/O파일들을 10.6으로 옮기면
어찌될까라는……
만약 되면 이 정돈 뭐 그냥 참고 쓰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해당파일 복사후, 다시 10.6을 깔았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 --;;;

10.6을 깔고
나는 왜 또 백업안하고 같은 짓을 또 한건가?
--; 가장 최신의 10.5파일을 10.6은 또 이해못하고 1394포트 사망선고. --;
해서 또 한번 10.6을 깔았다.

 
외장하드 케이스는 포기.
해뜨면 바로 반품 전화를 해야지 싶다.

우선 제작사인 세로텍의 홈피 어디에도 오에스를 가린다는 안내고지가 없다.
사실 이거 중요하다. 작년 가을 이후 생산된 맥은 10.5로 다운그레이드 자체가 안된다니까!
그리고 다나와 사용후기에 의하면 해당 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있다는데,
여기에 대해 대응안한다는건,
사실 반품 택배비를 내돈으로 내는 것도 졸 억울하다.
거의 이틀, 지금도 아직까지 프로그램 재 설치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다.

요즘 개막장 케이스가 많다는데 반품은 안해주거나 하진 않겠지?
소심한 나는(정말 난 생각보다 소심하다니까!!) 이미 상법, 전자상거래 소비자 보호법, 공정위 인터넷 쇼핑몰 가이드라인등
저쪽에서 삐리하게 나올경우의 대응논리와 내용증명 발사할 문장까지 미리 써놨다.


아 지친다. 신발.
1박 2일동안 오에스 4번이상 깔아봐라…사람 맛간다.

--;

아! 한줄 결론

세로텍에서 나오는 Frigo RS-2케이스는 스노 레퍼드랑 상극이다.
이 꼬라진데 케이먹에서도 이거 팔더라.
이거 좀 빡시게 알려야 한다.
23만원짜리 외장 케이스 사서, USB전용으로 쓸거 아니면 사면 좆된다.

나의 삽햏이 뒤따라올 인간들이 일찌감치 포기하고 반품하는 교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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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
1986년. 시대는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 있었다.
국민 피씨라는 이름으로 8088-8Mhz의 XT과 80286-16Mhz의 AT가 전문가용 컴퓨터로.....시중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8비트 시장은 대우의 MSX2기종과 APPLE IIc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던 시절.
당시의 초딩, 중딩 유저들은 XT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게임이 없었으며, 심지어 소리도 안났다. 내는 소리래봐야 비프음 수준........

기본적으로 3중화음 8옥타브의 내장 사운드에,
FM카드라는 확장팩으로 보더 나은 음질을 구현했던 MSX의 게임환경과는 하늘과 땅차이.

하지만 신규로 컴퓨터를 사는 녀석들은 부모들의 선택에 의해 게임이 없는 그 삭막한 XT를 구입했다.
게임이래봐야 테트리스정도? 그들은 진실로 불행해 보였다.

당시 우리는 세운상가 한구석에서 판매하는 일본 잡지들을 탐독했다.
MSX FAN이라는 이름의 그 잡지는 일본에서 최신 유행하는 게임과 발매 예정작을...당시 한국에서는
볼수도 없던 올 칼라 인쇄로....우리들을 꿈의 세계로 인도 했다. 

1988년이었을거다. 
그 MSX FAN에서 세가에서 나온다는 새로운 게임기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16BIT CPU를 내장한 초고속의 메가 드라이브.

지금봐도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너무 멋진 이름이었다. 블랙으로 빠진 디자인과 유려한 곡선의 게임패드.

재믹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고, 당시 부잣집에나 간간히 보이던 패밀리 컴퓨터와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동네에는 CD-ROM이라는 컴퓨터 가게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개 첨단 제품중 하나인 CD를 구동하는(1배속-150k) 기계가 있었다.

거기 형의 말에 의하면, 곧 CD-ROM이라는 것이 컴퓨터에 보급되는데 1장에 백과사전이 들어간다는....
우린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거긴 뻥쟁이가 운영하는 컴퓨터 가게가 되었다.
3.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도 희귀한 시대에, 800K의 용량도 바다와 같이 넓던 시대에
640메가라니.......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가?

하여튼,
이 뻥쟁이가 어디선가 메가 드라이브를 구해왔다.......
당시 오락실에서 긍국의 첨단 초호화 미려한 그래픽을 선보이던 수왕기가.....(요즘으로 따지면 버추얼 파이터5 쯤 된다.)

세상에!!!! 
저 작은 박스에 롬팩을 꼽자 구동되기 시작했다.....아아!!!
오락실에서 쓰는것과 똑같은 68000CPU를 쓴다더니.....
나의 사랑 FS-A1F의 심장인 Z80A를 그저 사운드칩 따위로만 쓰는 기계가 있다니
대체 나의 MSX는 뭐란 말인가?

무엇보다 썬더 포스의 그래픽은 넋을 놓게했다.

'오락실 보다 더 좋아!!!!'

이 말 한마디로 모든게 끝났다. 


FS-A1F와, 애장품 메가 롬팩인 F1 SPIRIT, 사라만다, 그간 모아놓은 게임 플로피들......
왜 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사라만다의 스크롤이 눈에 띄는 화면 깜빡임이었음을 알면서 왜 그리도 배신감에 차던지.....

결국 난 뻥쟁이의 메가드라이브와 FS1AF를 바꿨다.

지금의 젊은 엄마라면 꿈도 못 꿀일이지만, 난 당시 엄마에게 키보드 분리형 16비트 컴퓨터와 바꾼다고 거짓말을 했다.  메가드라이브의 키보드는 영원히 일본에서 오는 중이 되었고.........

이렇게 난 초딩5이래 근 5년간 유지했던 퍼스널 컴퓨터 유저의 자리를 버리고, 게임기 유저로 탈바꿈했다.

사실 컴퓨터로도 맨날 게임만 했으니, 내 생활이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리고 다음핸가?  나는 고딩이 되었다.
고딩쯤 되니 이제 MSX는 거의 단종되는 분위기로, 대우 전자 역시 남미쪽에 MSX를 파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PC쪽은 다행히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35000원짜리 Adlib카드라는걸 꼽으면 예전 FM팩 수준의 음악이 나왔고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깜짝놀랄만큼의 움직임을 선보이던 페르시아의 왕자가 등장하며 나름 피씨 게임의 재발견이 되던 시대였다.




허큘리스 카드라고 불리던 흑백 그래픽 카드. 녹색이 눈에 좋아라고 자위하며 쓰던 녹색끼가 나는 그린색만 나오는 그린 모니터.....

당시 컴퓨터에는 TURBO라는 버튼의 키가 있었다. 그걸 누르면 80286의 경우 16Mhz의 속도가 25Mhz의 속도로 올라가며 테트리스를 도저히 제정신가지고는 즐길수 없는 초고속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PC TOOLS......
게임 플로피를 넣으면 기계어가 주우우욱 뜨던 신기한 물건. 이걸로 게임 난이도, 플레이어 숫자등을 조작하기도 하고, 게임 플로피를 복사하기도 하던......

이 모든 것이 고딩쯤 되니....무한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게임기도 16비트인 시대에........컴퓨터도 당연히 16비트여야지.......

라고 마음을 먹으니 그 둔탁해 보이던 키보드 분리형도 왜 그리 멋져보이던지........

결국 정부 시책(16비트로의 전환), 16비트 일본 컴퓨터(메가드라이브)의 키보드 수급의 어려움 --;;;
등 근거로 마덜을 설득, 다시 한대를 장만했다.

80286 16Mhz의 초고속 cpu와
두개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장착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초고가인 30만원짜리 VGA카드(640*480의 해상도에서 256칼라를 뽑아주신다-이게 있으면 수영복 입은 미소녀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와
60만원짜리 14인치 VGA 모니터를 장착한.....나름 수퍼 컴퓨터.

그리고 엡손의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비록 시끄럽긴 했지만.....프린터도 소유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때부터 게임은 좀 덜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고딩때 컴퓨터 동아리에서 알게된 아래아 한글 1.0의 충격은 정말....잊을 수 없다.
컴퓨터로 뭔가 '일'을 할수있는 진정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래아 한글 1.5부턴가 필기체가 지원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때는 영어샘이 매일 하루에 2-3장 단어 쓴거를 뵈줘야 안맞았다.

뭐 나같은 어중간한 중간줄이 단어를 외울리 없다.
그냥 쓰는거지.
아이들에 따라 볼펜 두개를 동시에 잡고 한번의 수고로 두줄을 쓰는 신공도 등장했다.

뭐...난 주로 맞았다.

사나이가 화끈하게 두세대 맞고 말지...찌질하게 영어수업 시작하기전 쉬는시간 10분을 모두 투자해.....
연습장을 채우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뭐, 앞줄놈들은 정말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남는 영어공부 증거 페이퍼가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평소 등한시하던 앞줄 재수탱이들에게 그거 몇대 안맞을려고 알랑대는 것도 싫었다.

진정 대인배는 결코 아니었지만, 
잔소리 5분 듣느니 10대 맞는게 속편할 때였다.

후후........
아래아 한글 1.5의 필기체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바로 필기체를 한가득 출력하자는.....

난 이미 그 당시 컨트롤 씨와 컨트롤 브이가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크하하하하하!!! --;;;

결과는 대 성공!!!!
영어샘이 못알아봤다.

근 한달간 꽤 해피한 시절을 보냈다.
문제는, 이런 비밀은 자랑하면 안된다는 거다.
나의 성공(?)을 시기한 몇몇 과거의 얻어맞던 동지중 한녀석이 영어샘에게 꼰질르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프린터가 뭔지도 모르던 영어샘은 그녀석이 한 말의 반이상을 못알아들은게 확실하지만,
평소의 나에 비해 서체가 너무 출중하고, 자세히 보니 정말 글자가 모두 똑같은 크기라는데 
이유야 어쨋건 짜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를 복날의 개잡듯 팼다.
한 40대 맞았을려나?


80286사마는 당시 연애 전선에도 투입되었다.
바로 고등학교 축제. 

슬슬 언니라는 존재에 대한 흥미를 보이던 때.
축제는 합법적으로 언니들을 만날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당시 미팅, 소개팅은 아주 뒷줄 날날이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

나는 요즘말로는 피씨동아리, 당시 이름 공작반이라는...뭔가 공작스러운 소속이었다.
뭐 피씨보급률이 지금과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던 때라....
피씨동아리는 뭔가 범생이(실은 오타쿠지만...) 분위기를 풍기던 때다.

우리 동아리의 언니들을 홀리는 방법은

우선 유일한 브이지에이 카드 소유자인 내가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준다..(과일, 꽃, 풍경같은.....)<=이런게 이때는 신기할 때다 --;

베이직좀 만지던 아이들은 MSX를 이용, 금속판에 손을 올려놓으면 랜덤으로 아이큐, 재능, 미모등의 항목을 화면에 띄워주고, 마지막에 살짝 전기가 통하게 하는......뭐 나름 꽤 첨단으로 보이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ADLIB사운드 카드를 이용해, 연니들이 원하는 연주곡을 틀어주는...뭐 나름 꽤 멋진 구성이었다.

사실 당시 다른반 아이들을 보자면
서예반은 반장이 한복입고 나와 붓글씨를 써주며 파리가 날리고 있었고
정말 구시대의 유물인 타자부는......타이핑으로 모나리자같은 그림을 만들어서 액자전시하고,
뭐 타자 빨리치기 시범같은걸 하고 있었다. --;;

솔직히 우리가 볼거리로써는 거의 최고.......

였지만, 우리는 모두 오타쿠들로 이루어진 동아리.

우리반 멤버들은 다들 한덩치 하거나, 키가 작거나, 당시로서는 전자파때문에 그렇다고 믿었던 아토피 피부병자등등.....

언니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오빠들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가장 볼거리가 많았음에도 꽃한송이(요즘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이때는 언니들이 꽃한송이씩 들고댕기며 마음에 드는 (주로) 놈의 책상에 올려주곤 했었다....나도 몇개 받았다 으하하하하 --;;;

축제가 끝나면, 
방명록을 뒤진다.
방명록에는 늘 전화번호 항목이 있었고,
이때만해도 다들 순순히 전번을 남기곤 했었다.
동아리에서 가장 하는거 없는 넘은 방명록을 관리했는데, 어엽쁜 언니들이 쓴것은 별도 마킹으로 특별관리하기 시작했다.

축제가 끝나고 난 후의 즐거움은......바로 전화걸기........
당시에도 꽤나 부드러운 혓바닥의 소유자였던 탓에, 1학년때부터
선배들의 몽둥이 아래.....전화는 늘 내가 담당했다.

대체 뭔 정신으로 그랬나 모르겠는데,

이번 보성고 축제때, 공작반 기억하셈? 네......운세도 봐주던...네..아하하하하하
길동 진흥아파트맞은편에 오렌지 카운티서 만날까요?(젤 이쁜 언니...)
길동 사거리에있는 빨간집아시죠? 거기서 만날까요?

별 시나리오도 없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만나자는 제안에
꽤 많은 언니들이 그냥 나왔다.
물론 나는 안나갔다 --;; 나가긴 선배들이 나갔지.

2학년이 되서는 나도 나갈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난.......그런 언니들을 사적으로 만나면 좀더 젠틀하게 존댓말을 써야한다는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무엇보다 머리 가르마가 뭔지도 모르고 살던 오타쿠라.....
전화상으로나 자신감 만빵의 수컷이었던것 같다.


-온라인 상에서 대충 쓰고 있는데, 갑자기 정서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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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 플레이 화면을 보시면 될겁니다.
세번째 곡부터 노래 제목앞에 멈춰있는것은 더블클릭을 했는데 키가 안먹히는 겁니다.
검색창에서 배회하는 이유도 그거구요. 

그나저나 퀵타임 엑스의 신기능을 이렇게 써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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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 쿵후 1과 남극탐험에 삘이 꽃혀 구입한 MSX 기반의 IQ-1000.

세월은 화살처럼 빨랐다.(아니 그때는 10대였으니 지금처럼 빨르진 않았을거 같다만...)

게임업계는 몇가지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바로 메가 롬팩의 출현.

무려 1024KBit(바이트 아니다...바이트로 하면 128Kbytes)의 롬팩이 메가롬팩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첫번째 테이프를 끊은 회사는 요즘 위닝으로 유명한 코나미였다.

오락실용으로 먼저나온 그라디우스가 MSX로 컨버젼되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 한국에는 오락실용 그라디우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

대신 외전격인 사라만다가 있었다.

오프닝이 압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화려한 그래픽이었던 불꽃의 묘사.

음성지원....이끼나포 쎈탑~~<-뭐 이런...지금 들어도 뭔말인지....--;;;

그리고 종횡스크롤 지원........

전두환덕에 설치된 컴퓨터를 어찌하지 못했던(이미 MSX오락은 시들해졌을때...)

오락실들은 메가 게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그라디우스, 그리고 꿈의 대륙.......

남극탐험2에 해당하는 꿈의 대륙은....놀라웠다.

우주로도 나갈수 있었고, 보스전이 있었으며, 아이템을 먹으면 긴 점프등의 기술도 쓸수 있었다.

구입 1순위였던 꿈의 대륙...

하지만, 메가단위의 롬팩이니 얼마나 비쌌겠는가?

꿈의 대륙은 진정 내가 가야할 꿈의 대륙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란가?

당시 세운상가의 파워는 또 어떠했는가?

구동장치를 앞서 말한 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채,

데이터만 임시 보관하는 램 방식(당근 컴터 끄면 재로딩해야한다.)의

골든박스라는 신기가 출현했다.

가격은 롬팩값과 진배 없었으나 일단 구입하면 저렴한 카세트 레코더로 로딩이 가능한.....

물론 메가비트의 고용량이다보니, 로딩시간이 한시간이었고, 테이프의 특성상 에러라도 나기 시작하면

그 짓을 몇번이고 해야했다.

어쨋건 나는 드디어 그라디우스와 꿈의 대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욕구는 커져만 갔다.

이미 1986년 대우에서는 IQ-2000이라는 MSX2규격의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MSX2의 장점이라면

우선 512색중 256색을 동시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초 워크스테이션급(당시로는) 그래픽을 구현했다는 점.

꼴랑 16색뿐인 MSX1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다.

그리고 횡스크롤을 컴퓨터 차원에서 지원했다.

스크롤.....비행기 게임할때 화면이 자연스레 옆으로 넘어가는 그 기능인데.

MSX1때만해도 이걸 소프트웨어 적으로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화면이 손가락 반마디씩 깜빡거리며 움직였다.

부드러운 MSX2나 오락실 스크롤은 늘 부러웠다.

하지만,

컴퓨터 사서 늘 게임만 하던 나는 이미 신용을 잃었고,

신기종(그것도 당시 형편으로 무리해서 구입한 건데...)은 꿈속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초기에는 MSX2전용 게임 자체가 별로 없없다.

즉 512색중 256색을 쓴 프로그램이라곤, 컴퓨터 구입할때 따라오는 데모 프로그램빼고는 없었다는...

그래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

메가롬팩 시대가 열리며, 이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던 T&E라는 곳은, 게임을 마구 뱉어내기 시작했고(그래픽 빨은 좋았다.)

코나미도 우샤스, 메탈기어(전설의 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MSX1게임은 그라디우스 시리즈(끈질기게 1으로 발매했다.)

F1 스피리트같은 자동차 게임이 전부였다.

기변병...........

기변병...........

버뜨, 그런데 기변병은 쉽게 해결됐다.

파덜이 일본여행을 가서는 덜렁 한대를 사온거다.

바로 FS-A1F라는 파나소닉의 MSX2.

FDD내장형!!!!!

당시 3.5인치 FDD는 첨단 제품이었다.

한국에는 퀵디스크라는 1.8인치짜리 초소형 디스크 드라이브가 처음 보급되었고.(물론 애플쪽은 5인치 디스크를

예전부터 쓰고 있었다.) 3.5인치는 내가 FS-A1F를 구하고 1년후쯤 나왔는데, 약 40만원쯤 했다..(1987-8년 물가로!)

FDD..지금이야 느려터진 매체에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카세트 테이프에 비하면, 128Kbit를 한시간에서 1분여로 단축해준 신기중의 신기였다.

FDD가 조금씩 보급되며 바뀐 현상은, 카피 가게가 생겼다는것.

사실 당시의 모든 컴퓨터 가게들이 똑같았는데,

FDD를 가져가면 장당 2000-3000원씩 받고 그 안에 게임을 복사해줬다.

기억으로 연신내 어딘가에 있던 컴퓨터 숍이 일산 게임 복사가 가장 빨랐다.

일본에서 나오면 3-4일안에 카피본이 풀렸으니까......

나는 정말 미친듯이 게임에 빠졌고............

YS가 등장하며 FDD전용 게임도 나오면서 이제는 완전 오락실 부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또다른 기변병이 불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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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1982년이었을게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같은게 열렸다.

컴퓨터라는 단어에 생소하던 시대니 만큼 언론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그때 대상인지 1등인지를 받은 아이가 있었는데,

뭐 병든 엄마를 살리기위해서 용궁으로 가는 게임을 만든 친구였다.

단지 까만 화면에 깜빡 깜빡이는 움직임따위였지만, 그건 신세계였다.



'엄마를 살리기위해'라는 단어에서 나는,

이거 사달라고 하면 먹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혼자 상상의 나래(지금 뭔 상상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를 피면서 흐뭇해했다.

당시 초딩의 대부분은 주산학원을 다녔다.

주판이라고 아는가 모르겠는데,


나 초딩때는 이거 다 배워야 했다.

이때가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올땐데,

아무래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주판의 시대가 저물걸 예상한듯한 학원들은

벽마다, 주판이 전자계산기보다 빠르다는 포스터를 붙여놓곤 했었다.

뭐 더하기 빼기는....버튼 누르는 속도보다 저게 빠르긴 하다.

주산학원은 덤으로 암산이라는 걸 가르쳤다.

선생이 1+25+32+8을 말로 부르면-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1원이요, 이십오원이요, 삼십이원이요 식으로 끝에 꼭 원짜를 붙였다.-

주판을 좀 놓을줄 알면, 이 암산을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책상에 가상의 주판을 상상하며 손으로 튕기면 계산이 되었다.

뭐...그 당시는 물자가 부족해서, 그냥 맨바닥에도 상상력을 동원한 터치 기능이 가능했다....지금이야 터치폰 있어야하지만 --;


하여간 주산학원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교육적 효과는 두뇌개발이었다.

이 때 양지의 주산학원과 함께 두뇌개발을 강조하던 분야는 상대적으로 음지였던 전자오락실이다. --;

하여간, 컴퓨터도 컴퓨터 판매상들 주장에 의하면 두뇌개발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 완제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그 대상인가 받은 친구 집을 티비가 비췄을때얼핏 컴퓨터라는걸 봤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효성이라고 써져있었다.(당시 효성은 애플 2+ 호환기종을 만들고 있었을게다.)

이 기억을 뒤로....



그 다음 기억은 1984년이다.

둔촌동에도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이때는 드디어 국내에서도, 아니 대기업에서도 컴퓨터가 막 양산되던 때였다.

우리의 가전3사도 모두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삼성의 SPC-1000




금성(지금의 엘지)의 FC-80, 100, 150 시리즈(서로 호환 안됐다 --;;)




그리고 대우의 아이큐 1000이었다.(참고로 금성의 FC-80도 MSX방식이었다.)


학원에서는 삼성 SPC-1000으로 수업을 했다.


컴퓨터라는게 배우면 금방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수 있을거 같았지만.

현실은 베이직과의 싸움이었다.


당시의 학원 교육이라는건, 칠판에 베이직 코드를 적어주면

그걸 타이핑 친다음(타이핑은 알아서 배워야 했고, 그래서 그때는 대부분 독수리였다.)

실행(기억으로 F5를 누르면 실행이 되었다.)하는 방식.

처음 그린건 원이었다.--;


10 screen 2

20 circle(120,80), 40

30 goto

run


뭐 대충 기억을 복기하자면 이런거였고,

그러면 화면에 원이 그려졌다.


음......그게 다다.


이때는 마우스니 GUI니 없던 시절이고, 도스보다도 예전으로서

컴퓨터를 키면 베이직 언어가 로드되고, 커서만 깜빡거렸다.


SPC-1000은 카세트 레코더 내장식이었는데,

이때는 카세트 레코더에 프로그램을 녹음했다.(스피커로 들으면 삐이이이이이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이 즈음 나오기 시작한 더블데크또한 덕분에 인기품목이었다.

그게 있으면 대충.....프로그램을 구울수(?)있었으니까......


하여간, 난 사실 컴퓨터 배우면 게임을 좀 마음껏 할줄 알았는데,

이놈의 삼성컴은 칼라도 안나오고, 게임속 캐릭터도 한번 움직일때마다 화면이 일렁였다.

지금 생각나는 인상적인 게임이라곤 캥거루 뿐이다.


그 즈음.....그러니까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1985년

오락실에는, 전두환의 컴퓨터 육성책의 하나로,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지금의 공중 컴퓨터의 효시인데,나무 상자안에 컴퓨터 키보드만 돌충된 형태로...(당시는 바디+키보드 일체형)

이렇게 보급된 기종이 대우의 IQ-1000이었는데, 이건 삼성컴같은 자체규격(맞나?)이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아스키가 만든 일종의 수입 규격인 MSX방식이었다.

8비트 시절에는 미국,유럽의 애플 호환기와 일본및 몇몇 나라의 MSX방식의 싸움이었는데,

MSX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빨랐고(애플은 1Mhz-기가가 아니다. MSX는 무려 3.58Mhz였다!!)


별도의 확장없이 16색의 칼라가 나왔으며, 티비와 연결이 가능해서 별도의 모니터 요금이 들지 않았다.


하여간,

당시 기준으로 최고의 멀티미디어 컴퓨터다 보니, 오락실에서 MSX로 베이직을 공부하는 녀석은 진정 얼빠진 놈이었고,

대부분 게임을 로드시켜 하고 있었다.

당시의 명작게임이라면

요술나무


양배추(세계최초의 코스프레 게임 --;;; 일지도..)


이얼 쿵후


등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삘이 왔다구나 할까?

내가 가야할 길은 삼성이 아니라 대우였다.

그리고 컴퓨터 구입은 의외로 싱거웠다.


1985년 뭔 바람이 불어서인지 가전제품을 다량구입

(우리집 최초의 칼라 티비, 냉장고, 컴퓨터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게 된 것이다.


티비는 당시 처음 시작한 스테레오(이게 뭔지도 몰랐다.) 및 음성다중(어지러웠다.) 방송을 지원하는 14인치.

냉장고도 당시로서는 처음인 영하 20도 급속냉각기능이 있는 아이씨 냉장고

그리고 아이큐 1000............


사양은 다음과 같다.

MSX BASIC V1.0 (16 KB)

  • RAM: 8 KB minimum, most machines provided either 32K or 64K, machines with 128 KB exist
  • Video Display Processor: Texas Instruments TMS9918 family
    • Video RAM: 16 KB
    • Text modes: 40×24 and 32×24
    • Resolution: 256×192 (16 colours) <=이거 중요하다. 당시로서는 최강....16색!!
    • Sprites: 32, 1 colour, max 4 per horizontal line
  • Sound chip: General Instrument AY-3-8910 <=3중화음 8옥타브를 지원하던....오디오 칩


베이직 프로그램 연마는, 아이큐 1000을 구입하는 즉시 잊었다.

엠에스엑스는 두가지 방법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롬팩이라고 하는 지금의 닌텐도 디에스같은 롬 칩을 끼우는 방식과

SPC-1000에서도 애용하던 카세트 테이프(데이터 레코더라고 했다..)를 쓰는 법....


롬팩은 넣자마자 게임이 되었지만, 비쌌다.

1985년 물가로 19800원에서 29800원까지.....

카세트 테이프 게임은 쌌다...3000원...

당시로서는 3000원도 꽤 큰돈.......

진정 부잣집 자제들은 롬팩을 박스로 가져다 놓고 했지만,


난 한달에 게임 테이프 한개 사기도 버거웠고,

덕분에 한우물만 팔 수 있게 되었다. --;;;

하여튼 첫번째 게임기 --;;; 아니 컴퓨터 아이큐 100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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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팟의 장점은 그냥 버리기로 했다....

불법 앱을 안쓰는 편인데다, 기존의 해킹 오에스로 가능하던 일들이

유료 앱으로 대부분 가능해졌고, 해킹 OS는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게 너무 많아서

아이팟이 무거워진다.

지금 동기화 진행중....

무엇이 바꼈을래나.....오호호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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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d touch에서 OS 3.0으로의 변경점.

우선 해킹팟도 그냥 깔면 된다.

그냥 덮어버린다. 다만 싸이디아등 해킹팟 관련 프로그램들은 다 지워진다.


확실히 빨라졌다.

OS 최적화 탓인지, 가로세로축 화면변경이나 어플리케이션 구동이 훨씬 매끄럽다.


검색기능 스팟라이트는 아주 유용하고

음성메모기능도 일 할때 꽤 도움이 될듯.....

복잡하게 치거나 쓰느니 음성메모로 처리하는게 깔끔하다.

다만 내 발음이 좀 문제라 --;;;

음질하나는 끝내준다....(물론 마이크 달린 이어폰이 있어야 한다는...)


카피 엔 페이스트 기능도.....생각외로 쓸만함....

딱보면 알수 있게 만든 직관성도...만족....

더 써보고 다시 포스팅 하든가 하겠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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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퇴원해서 잘 지낸다.

자기네 집이라 나름 안정적인듯.

난 남의 집이라 답답하고 짜증나고 그렇다.

시간이 펑펑 남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손에 안잡힌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집도 절도 없진 않았지만, 매년 반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신세라, 살림장만을 거의 안했었다.

티비는 모니터 겸용이고, 냉장고, 세탁기도 모두 최저가로 구비.

임대긴 하지만 새 아파트로 이사 갈려니, 게다가 환자가 하나 붙으니 살게 너무 많다.

현재까지 구입한 놈들을 보자면,


샤프 공기청정기

웅진케어스, 휘센등과 치열한 경쟁끝에....

성능과 광고상 구라가 비교적 적다는 소비자보호원의 조사결과가 선택을 결정짓게 했다.

지금은 마녀네 친정, 안방(마녀랑 내가 차지했음 --;)에서 작동중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이사가면 거실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삼성 닥터바이러스


일종의 음이온 발생기같은 개념의 공기 청정기.

사이즈도 작고, 커버할수 있는 평형도 3평내외다.

지금까지 나온 이런 계열의 머신중 살균력이 가장 강하단다.

이건 사실 미리 사서 마녀의 무균실에서도 역활을 톡톡히 했다.

이건 정말 효과가 있어보이는게,

내 천식이 잦아들었다는...--;;

이사가면, 침실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에어비타 네오


어쩌다 보니 껌뻑이는걸 퍼왔다.

이것도 일종의 공기청정기다.

원리는 삼성의 닥터 바이러스랑 거의 비슷한 듯.

화장실 혹은 하찌가 갇히게 될 작은 방에 놓여지지 싶다.

졸지에, 공기청정기만 세대를, 그 것도 회사별로 구입했다는...--;;

아마 1년후쯤 비교기가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이온발생방식은 오존문제를 따져봐야 한다는데, 회사들이 공개를 안하는지, 샤프것을 제외하고는

설명서에 나와있지 않았다.

3개나 돌리다 오존으로 사람 잡는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한경희 아기사랑 아토스팀


살균이 중요해서 스팀청소기로 밀어줘야 한다는.......

집에 진공청소기도 있으니, 청소기만 두대.--;;;

이렇게 완전 무균 상태로 놓으면 저항력은 더 떨어질텐데..이게 잘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오므론 전자 혈압계


매일 혈압을 잰 후, 병원 외래시 담당 교수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왕 사는 김에 젤 좋다는 걸 샀는데,

마녀가 면역억제제 부작용 때문인지 원래 저혈압끼가 살짝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160-100선으로 고혈합끼가 약간 있다.

좀 안정되고 약 줄이면 혈압도 내려간다지만, 매일 아침 혈압재며 나까지 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아이솔라 칫솔 살균기


이식후 6개월 넘으면 충치있는 이빨 다 치료해야 한단다. --;;;;

뭐 이쪽으로 감염이 된다나 뭐라나?

하튼 그런 전차에다가, 칫솔에 세균이 많다네.

감염방지가 최대의 목적인 관계로 이번에는 칫솔 살균기다. --;;;



나이키+ 조깅화

아직 조깅을 할 단계는 아니지만, 하여튼 걷기 운동용으로.....

그 동안 이런거 안사고 사느라.....번듯한 운동화 한켤레 없다는....

아이팟과의 연동을 위해 나이키+모델을 우선으로 골랐다.

시원하고 가볍다. 나이키+모델치고는 가격도 가장 저렴한 편.

덩달아 나도 한켤레샀다.

같은 모델로............



나이키 스포츠킷


나이키+ 신발과 연동되는 스포츠 킷.

이거 깔고 걷거나 뛰면 운동거리, 소모 칼로리등이 아이팟에 나오고

별도로 아이튠이나 나이키 홈페이지를 통해 데이터를 등록, 관리할 수 있단다.

난 처음에 나이키+ 신발만 사면 되는줄 알았다.

아이팟 터치 구동시키고 아무리 해도 센서가 작동을 안해서 매장으로 직행.

이걸 또 사야 된단다....

괜시리 항의먼저 했으면 개망신 당할뻔 했다.



이게 지금까지 지른거다.

아니 환자용 에어매트, 마사지기계등등 소소한것들은 아직도 더 있다만.......

대충 여기까지가 마녀 관리용 건강용품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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