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하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공해, 혼잡, 교통체증 같은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 부르사가 처음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터미널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시내로 들어가 숙소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우리가 간 숙소는 시내 중심에서 가까운 '귀네쉬 오텔'이라는 곳이었는데, 50대 중반 정도의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여느 중년의 터키 여인처럼 헤자브(이슬람 여인들의 머릿수건)를 쓴 아주머니는 코란을 손에 들고 웃고 있었다. 마침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터라 한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주방에서 뜨끈한 차이(홍차)를 내 주신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의 친절함과 이방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언제나 감동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핫산 아저씨(주인아저씨 이름) 내외는 부르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사시는데 자기 형님 내외와 한 달 씩 번갈아가며 숙소를 운영하러 부르사 시내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파견근무(?)인 셈이다.


부르사는 이스탄불과 멀지 않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대로부터 수도권의 중요한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도시 이름은 B.C 2세기 비티니아 Bithynia의 왕이었던 푸르시아스 Prusias 1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로마,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았다. 터키 역사상 가장 강대한 왕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2대 술탄 오르한 Orhan이 이곳을 정복해 1326년 초대 수도로 정한 이후 무라트 Murat 1세가 에디르네로 천도할 때까지 36년간 부르사는 제국의 초석을 다지는 곳으로 번영을 누렸다. 이 때문에 부르사에는 오스만 제국의 시조인 오스만 가지를 비롯한 초대 술탄 다섯 명의 무덤과 울루 자미 등 제국의 영광을 간직한 빛나는 명소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시내 중심에 있는 울루 자미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여느 자미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일단 웅장한 규모에 압도된다. 1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부르사의 자미 중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부르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터키를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자미를 가 보았지만 울루 자미는 독특했다. 벽과 기둥에 이슬람 문자로 코란의 가르침과 이슬람 선지자의 이름이 씌어 있었는데 글자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이슬람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경건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침 라마단 기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코란을 읽으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교회나 성당과 달리 이슬람 사원에는 성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코란의 가르침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만이 진정한 창조주이며 인간이 만든 조각이나 그림은 자칫 우상숭배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이슬람에서는 조각과 회화 대신 서예와 조형미술이 발달한 거라고 한다. 거대한 규모와 멋진 이슬람 문자와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울루 자미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울루 자미를 나와 자미 뒤편에 자리한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르사는 예로부터 견직물 산업이 발달한 곳이라 상업 도시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이 같은 전통 때문인지 시장 안에는 대상들의 숙소이자 교역의 장소였던 한 Han이 여러 곳 있었다. 우리는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코자 한으로 갔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견고한 사각형으로 지어진 건물은 둔탁하고 완강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건물 자체에서 고집스런 역사가 묻어나는 듯 했다. 이층으로 된 사각형 건물에는 전통을 이어 지금도 실크 제품을 파는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몇 군데 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하다 1층으로 내려왔다. 정원에는 분수가 나오는 마스지드(예배를 드릴 수 있는 별채)가 있었는데 주변의 나무와 어우러져 한껏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야외 찻집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오래된 건물이 전해주는 옛 이야기를 더듬으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길가의 되네르 케밥 집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몇 개의 자미를 더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때였다. 잠시 쉬다 저녁을 먹으러 나갈 생각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신다. 알고 봤더니 라마단 기간에는 주변의 이웃과 친지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전통이 있어 우리에게도 권한 것이다. 하도 간곡히 권하셔서 터키 가정식도 먹어볼 겸 아주머니의 호의를 받기로 했다. 대신 우리도 터키의 전통에 따라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어 가까운 시장에 나가 양고기를 사다 선물로 드렸더니 왜 이런 걸 사왔냐고 나무라시더니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신다. 아주머니의 얼굴과 어렸을 적 시골에 사시던 외할머니의 표정이 겹쳐져 떠올랐다. 음식은 정갈하면서도 푸짐했다. 쇠고기로 만든 음식과 콩과 곡물로 만든 수프, 올리브와 대추야자 절임, 이름 모를 다양한 치즈, 빵과 샐러드 등등... 핫산 아저씨 내외분과 우리, 두 명의 서양 커플 여행자, 이웃에 사시는 아저씨는 마음껏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통 음악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구경하러 갔다. 장소는 재래시장 안에 있는 조그만 차이집 이었는데 언뜻 보기엔 흔한 차이집과 별 다를 게 없었는데 부르사에서 꽤 유명한 아마추어 연주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연주회라고 해야 무대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차이집에 모여 앉아 악기를 연주할 줄 알면 누구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관객과 연주자가 따로 없고 차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노래를 부르는 그야말로 '어울림의 장' 이었다. 터키 음악을 접하고 현지인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 나의 터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 가운데 한 군데이기도 하다.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연주였다. 차이집 주인아저씨는 자기 가게가 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게 대견한지 연신 자랑을 늘어놓았고, 열 두 세살 쯤 되어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아들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연주를 잘 했다. 연주하시는 분들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우리 편한대로 이름을 지었다. 희끗한 머리에 수염이 인상적이며 사즈를 연주하던 아저씨는 '고독한 기타맨', 풍채가 넉넉하고 인상 좋은 아저씨는 인도의 코끼리 신과 닮은 듯해 '가네쉬 아저씨', 영화 화양연화의 남자주인공을 닮은 노래를 잘 부르시던 '양조위 아저씨', 성악가에 견줄만큼 노래를 잘하고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김추자 아줌마' 등등... 음악과 차가 어우러진 소박한 음악회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버스를 타고 부르사 인근에 있는 주말르크즉 마을을 방문했다.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이라는 말이 귀를 솔깃하게 했기 때문이다. 주말르크즉에 도착할 무렵 잔뜩 웅크리고 있던 하늘에서는 기어이 가랑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인데다 날씨마저 궂어서 그런지 버스가 내리는 마을 어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돌이 깔린 골목을 따라 마을 탐방에 나섰다. 돌길을 따라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포도 넝쿨과 화분으로 소박하게 장식한 아담한 집들은 시골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대도시 부르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골목길을 걸으며 세월이 묻어있는 옛집들을 구경하다보니 정말로 오스만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을 곳곳에 무화과나무가 많았는데 잘 익은 보라색 무화과를 몇 개 슬쩍 따먹기도 하고 집에서 만든 잼과 야채절임(완전 무공해인데다 정말 맛있음)을 파는 아줌마들과 되지도 않는 터키어로 몇 마디 나눠보기도 하고 농기구를 전시해 놓은 조그만 박물관도 구경했다. 가랑비가 어느새 머리까지 촉촉이 젖었지만 왠지 마을을 떠나기가 아쉬웠다. 부르사를 여행한다면 주말르크즉 마을을 꼭 방문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며칠간의 부르사 여행은 아무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온 곳이라 감동이 특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스쳐가는 나그네에 불과한 우리를 진심으로 따뜻이 대해 준 귀네쉬 오텔의 핫산 아저씨 내외분, 사즈를 연주하며 외국 손님이라고 특별히 맛있는 차이를 대접해 주던 고독한 기타맨 아저씨, 가네쉬 아저씨.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어쩌면 장소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부르사를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르사 여행정보

지리적으로 이스탄불과 가까워 손쉽게 방문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위에 언급한 것 말고도 부르사는 보고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터키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형극인 카라괴즈 공연, 메블라나 교단의 세마의식(콘야까지 갈 수 없는 여행자는 좋은 선택이다) 등. 또한 질 좋은 광천수가 솟아나는 온천이 주변에 있어 온천 마니아라면 행복한 비명을 참을 길 없다. 보너스 하나 더! 양고기를 저며 요거트와 곁들여 먹는 '이스켄데르 케밥'과 밤을 이용해 만든 간식인 '케스타네 쉐케르'는 부르사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글쓴이 터키프렌즈(발간예정) 저자 샥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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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더웠다. 여름철 평균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터키 남동부 지역의 특성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고 하필이면 이 시기에 방문한 실책 아닌 실책을 탓하며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 숙박한 하산케이프에서 미디야트를 거쳐 이라크 국경 부근에 있는 성 가브리엘 수도원까지 갔다가 마르딘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찜통같은 날씨에 에어컨도 시원찮은 돌무쉬에 하루 종일 시달린 터라 시원한 냉수와 샤워가 그리웠지만 우리의 계획은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 관광업이 발달하지 않은 도시라 배낭족을 위한 중, 저가 숙소는 아예 없었고 고공행진의 숙박비를 자랑하는 고급숙소만 몇 군데 있을 뿐이었다.

사실 살인적인(?) 숙박비를 감수하고서 남동아나톨리아의 끝자락 마르딘을 찾은 건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보고 싶어서였다. 문명의 발상지라는 점을 꼽지 않더라도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사막과 평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차창 밖으로 황량하고 건조한 풍경이 지나가며 바람이 불 때는 노란 먼지가 풀썩거렸다. 마르딘을 비롯한 터키의 남동부 지방은 온통 돌이다. 사막기후가 완연한 연한 노란빛의 흙과 돌이 온통 도시를 뒤덮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집인지 땅인지 구별이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천의 얼굴을 간직한 터키에서도 마르딘의 위상은 각별하다. 지리적으로 시리아와 인접해 있는데다 터키인, 쿠르드인, 아랍인, 시리아인 등 다민족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면모를 보이는 곳으로 단연 으뜸이다. 도시 이름인 마르딘도 시리아어로 성채를 의미하는 ‘메르딘’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우뚝 솟은 바위산 아래 경사면을 따라 신학교와 자미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산의 발끝부터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이어진다. 그 옛날 아랍의 대상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바다같은 이 평원을 가로질러 아나톨리아 고원의 입구인 마르딘까지 와서 거래를 했으리라. 한 번의 장사로 팔자를 고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목숨을 걸고 떠난 대상들의 심정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대상들의 흔적도 더듬어볼 겸 옛 정취를 간직한 재래시장으로 들어섰다. 도시에서 가장 크다는 울루 자미가 시장 안에 있어 자미 순례를 겸해 시장 구경에 나선 것이다. 어느 도시든 시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어디서 금방 잡았는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고기가 투박한 양팔 저울에 매달려 흥정하는 이들의 고성이 오가는 푸줏간을 지나 도대체 몇 종류나 되는지 셀 수 없는 치즈상인의 호객을 뒤로하고 아랍풍의 옷을 입은 아저씨와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니 과일전이 이어진다. 낯선 곳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의 습성을 파악하는데 재래시장만한 데가 없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울루 자미에 도착하니 먼저 거대한 높이의 미나레(이슬람 사원의 첨탑)가 이방인을 맞이한다. 본당은 일반적인 자미와 달리 직사각형의 기다란 건물이었는데 원래 시리아 정교회 건물로 쓰던 곳을 자미로 개조했다고 한다. 자미 옆에는 병설 신학교가 있었는데 마침 수업이 끝난 시간이라 경내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소리처럼 깔리고 있었다. 잠시 그늘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우리 생김새가 희한했는지 어린애들이 삼삼오오 다가온다. 한 녀석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베냐민'이라고 한다. 야곱의 막내아들 이름이다. 베냐민은 우리가 신기한지 자기가 나서서 자미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자미를 천천히 둘러보고 들어올 때 봐 두었던 정문 앞의 찻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너 명의 동네 젊은이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베냐민이 인사를 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메소포타미아 평원 전망이 썩 좋은 테라스가 나온다. 차를 주문하고 벌써 우리와 친구가 된 베냐민에게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한다. 옆에 있던 동네 형이 괜찮으니까 고르라고 하니 그제서야 그럼 콜라를 마시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잘 접은 종이 박스를 가져와서 뿌듯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내 놓는다. 뭔가 싶어서 안을 들여다봤더니 노란 병아리 두 마리가 있다. 자기가 키우고 있는 거라고 하며 동생도 손을 못대게 하는 귀한 거란다. 우리에게 콜라를 대접받았으니 자기도 뭔가 '손님대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체면과 염치를 차릴 줄 아는 것이다.

터키의 동부가 서부지방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다. 서부 터키는 여느 한국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많지만 동부의 아이들은 일곱 살 정도만 되면 벌써 반 성인이다. 제 할 일을 알아서 함은 물론이고 집안에서 한 사람 몫을 하고 말도 어른스럽게 한다. 예전 우리나라의 시골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잊고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베냐민이 일깨워주는 것 같아서 꼭 껴안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시장으로 나왔다.

바쁠 것 없는 걸음으로 이국적인 풍취를 즐기며 어슬렁거리다가 어떤 아저씨가 뭔가를 그리고 있어 가까이 가 봤더니 웬 희한한 그림이었다. 머리는 사람 여자고 몸통은 비늘이 있는 뱀인데 신기하게도 몸통 아래 다리가 달려있고 꼬리는 뱀 머리가 아닌가! 별 희한한 그림도 다 있구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아저씨가 뭔가 설명하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림 속 주인공의 이름은 '샤흐마란 Shahmaran'이라고 하는데 기괴한 생김새와는 달리 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주며 풍요를 관장하는 지혜의 신으로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 있었다. 뱀은 고대 그리스에서 치료의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 의료 신의 상징으로 추앙받았고 현대에 들어서도 국제보건기구의 상징으로 쓰일 정도로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인류 보편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징그럽게 생각했으니 이런 실례가 있는가!

오후에는 수도원과 신학교를 다녀왔다. 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자파란 수도원'은 지난 시절 시리아 정교회의 총주교좌가 있던 유서깊은 곳이다. 자파란은 '사프란'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B.C 1000년 경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태양신을 모시던 신전이었다고 하는데 지하에 태양신에게 제사지내던 공간이 남아 있었다. 무정물도 오래되면 생명이 깃드는 걸까?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도원의 돌들이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이 들어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의 햇살은 강렬했고 인적 드문 수도원 마당에서 그만 현기증이 나며 길을 잃을 것 같았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두 곳의 이슬람 신학교를 둘러보고 평원이 잘 내려다보이는 노란 색 간판의 PTT(우체국) 맞은편 찻집에 앉아 차를 마셨다. 옛날 대상들의 숙소인 케르반사라이를 보수해 우체국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고풍스런 석조 건물이 지금까지도 쓰임새를 다하고 있어 반가웠는데 몇 년 전 터키 TV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라 터키 관광객들에게는 빼 놓지 않는 기념사진 촬영장소가 되었다. 사실 별 볼 일 없는 지방도시에 불과했던 마르딘이 유명하게 된 데는 드라마의 힘이 컸다는 후문이다. 미디어의 힘이란... 마르딘의 PTT가 한국의 정동진처럼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며 홍차를 홀짝거렸다.

관광객도 돌아가고 어둑해질 무렵까지 메소포타미아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바다같이 넓은 평원에서 건조하고 뜨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디선가 대상들의 노랫소리가 낙타 방울소리와 함께 들리는 듯했다.


<마르딘 여행정보>

지리적으로 터키의 남동부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방문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간다면 20시간이 소요되는데 다행히 국내선 비행기가 매일 다니고 있다. 성자 아브라함의 탄생지인 샨르우르파와는 2시간 30분 거리며 인근의 미디야트, 하산케이프를 방문하는 기점으로 활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누사이빈 Nusaybin을 통해 시리아로 넘어갈 수도 있다. 남동 아나톨리아를 여행한다면 마르딘을 꼭 빼 놓지 말기 바란다.


글쓴이 터키프렌즈(발간예정) 저자 샥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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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터키의 전 국토는 해발 5~600m의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고원을 아나톨리아라고 부르죠. 가이드북 취재차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말 괜찮은 동네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곳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란 해 본 사람만 아는데 아마시아가 바로 그런 곳이더군요.

아마시아는 인구 10만이 안 되는 지방의 소도시인데 바위산 아래로 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중세의 전통가옥이 줄지어 있고 골목길을 다니다보면 왠지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은 정감이 서려 있더군요. 게다가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곳이었던 듯 바위산 중턱에 고대 왕들의 석굴 무덤이 있어 아마시아 일대의 계곡을 일명 ‘왕들의 계곡 King's Valley'이라고도 부르지요.

생각해 보세요.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산 아래 강이 휘돌아 나가고 낮은 처마를 맞댄 전통 목조 가옥들이 얼굴을 부비고 있는 마을의 산 중턱에는 고대의 영화를 간직한 왕들의 무덤이 있고 산꼭대기에는 위풍당당한 성이 버티고 있는 풍경을요.


가이드북 쓰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레스토랑을 방문하게 되는데 책에 올라가는 나름대로의 선정 기준이 있습니다. 맛과 실내 분위기, 독특한 메뉴, 종업원의 태도 뭐 이런 건데 야외 식당일 경우 주변 경관과의 조화나 전망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되죠.

아마시아에 있는 알리 카야 Ali Kaya 레스토랑은 제가 가 본 터키의 수많은 식당 중 자신있게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가지 남쪽 산 중턱에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정말 끝내줍니다. 아마시아의 멋진 경관을 카메라에 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정도죠. 산 중턱에 있어 올라가는 게 좀 힘든데 걸어가기 싫으면 시내에서 전화하면 태우러 옵니다. 저는 풍경을 즐길 요량으로 그냥 걸어갔는데 풀숲에서 거북이도 만나고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경관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겠습니까. 음식이 맛있어야지. 근데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집은 경치도 좋지만 음식도 깔끔하게 잘 나옵니다. 매니저한테 잘 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가지요리인 토캇 Tokat 케밥을 추천해 주더군요. 그거랑 양고기 갈비인 쿠주 피르졸라 Kuzu Pirzola를 시켰는데 아~ 맛있었습니다. 물론 올라가느라 고생해서 더 맛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암튼 괜찮더군요.

멋진 경치에 맛있는 음식에 마침 해도 뉘엿거릴 때라 측광이 들어 사진 찍기도 좋았는데 이 집은 주류 허가증이 있어 술을 팔더군요. 맥주까지 한 잔 홀짝거리고 있는데 그 때 마침 마을의 자미(이슬람 사원)에서 에잔(하루 다섯 번 올리는 이슬람의 기도)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와 온 골짜기 곳곳에 울려퍼질 때의 그 감동이란....(아~ 또 가고 싶어라)


 

아무튼 경치 잘 보고 음식 잘 먹고 맥주도 한 잔하고 노닥거리다보니 어느덧 밤이더군요. 여기저기서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데 아마시아가 야경이 또 끝내 준다는 거 아닙니까. 이거 진짜 노다지라 아니할 수 없는 곳인데... ㅎㅎㅎ

아마시아 시청에서 관광객 유치에 꽤 신경을 쓰는 모양인지 곳곳에 가로등 시설을 잘 해 놨더군요. 특히 건너편 산 중턱의 석굴 무덤에 조명을 밝혀놓으니 거의 환상이더라구요. 물론 좋은 야경으로 치자면야 유럽의 발달된 도시들이 많겠지만 터키에서 야경이 아름답기로 아마시아를 따라갈 만한 데가 없을 것 같더군요.


 

경치 좋고 서비스 좋고 야경까지 다 보고 매니저한테 시내로 갈 거라고 하니까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차를 태워주더군요. 이거 정말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는데 여기서 잠깐! 아무리 좋아도 비싸면 그림의 떡.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이 집 음식 요금은 시내의 레스토랑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기엔 비쌀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으니 마음 놓고 경치 즐기러 올라가셔도 됩니다. 2인 기준으로 20YTL(한국 돈 1만 4천원) 정도면 충분하죠. 술 한 잔 곁들여도 끽해야 2만원이면 되거든요. 좋은 경치에 음식에 픽업 서비스까지 뭐 이정도면 정말 싼 거죠. 솔직히 이 집은 입장료를 따로 받아도 될 거 같았을 정도니까요.

아마시아에 가시거든 알리 카야 레스토랑에 꼭 가보세요~~




 

Tip 알리카야 레스토랑 잘 즐기기

1. 해 질 무렵에 올라가서 차나 맥주를 한 잔 하며 경치를 즐긴다. 손님 없을 때 남들보다 좀 일찍 가서 전망좋은 자리를 꿰차자는 이야기.

2. 경치도 즐기고 시간도 적당해지면 음식을 주문해서 저녁식사를 한다. 물론 자리를 이동하면 절대 안 된다.

3. 음식을 다 먹고 야경을 즐기며(밤일 테니까) 또 다시 차를 한 잔 마신다.

4. 밥 잘 먹고 차 잘 마시고 사진 잘 찍고 할 거 다 한 후 매니저한테 차를 태워달라고 요청한다.



 

터키 프렌즈(발간 예정) 저자 샥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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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Aperture priority | Multi-Segment | 1/640sec | f7.1 | 0EV | 55mm | No Flash | 2007:10:01 16:14:20

여섯 개의 미나레를 거느린 위풍당당한 블루모스크. 뒤편의 바다는 마르마라 해.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이스탄불!
유적 때문에 도시 개발은 물론 집도 제대로 못 짓는다는 유적의 보고 이스탄불에서 유물 넘버원을 꼽으라면 어딜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구시가인 술탄아흐멧 지역의 아야소피아와 술탄 아흐멧 1세 자미를 꼽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 같다. 오래된 역사와 건축학적인 미, 안정감, 주변 환경(마르마라 해)과의 어울림 등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건물이다. 이 아름다운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야소피아 박물관 Ayasofya Müzesi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비잔틴 성당 건축의 백미. 세계사 시간에 비잔틴 건축의 대표로 열심히 외웠던 ‘성 소피아’ 바로 그 성당이다. 원래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로 ‘신성한 예지(銳智)’를 뜻하며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었다.

아야소피아 성당 자리에는 원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세웠던 거대한 교회가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된 후 416년 재건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532년 니카혁명 때 파괴되는 불운한 운명을 맞는다. 제국의 수도에 교회가 없다는 건 국가의 자존심과도 상통하는 것. 결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itinianus, 재위 527~565)때 제국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기술자 1백 명과 연인원 1만 명을 동원해 거대 역사를 시작하게 되고 5년 10개월 만인 537년 완공되었다.

설계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이자 건축가인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로스가 담당했는데 안쪽 깊이 77m, 너비 71.7m로 하여 거의 정사각형의 그리스 십자형 플랜에 가깝다. 놀라운 점은 장대한 규모의 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기둥이 아닌 15층 높이의 거대한 돔이라는 사실이다. 높이 55미터, 폭 33미터에 달하는 거대 돔을 코끼리 다리라 불리는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헌당식에 임한 황제는 성당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나머지 <오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에게 이겼도다!>라고 외치며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약 900년 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려오던 아야 소피아의 운명은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때 헐릴 위기까지 처했으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한 술탄 메흐멧 2세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대신 원래의 용도가 바뀌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지금 볼 수 있는 건물 주위의 미나레(첨탑)는 이 때 건립된 것이고 내부의 모자이크 화는 회벽으로 덮이게 된다.

터키 공화국 들어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 공개됐는데 기독교의 특징인 모자이크 화와 코란의 금문자, 미나레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동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술탄아흐멧 1세 자미 (블루모스크) Sultanahmet Camii (Blue Mosque)

아야소피아 맞은편에 자리한 자미로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 ‘자미’는 이슬람 사원을 지칭하는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이 사원은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인 아흐멧 1세가 지은 것으로 1609년에 착공해 1616년에 완공되었다. 유독 종교적 신념이 철저했던 술탄은 기공식에 참석해 직접 땅을 파고 흙을 날랐다고 한다.

건물은 높이 43m, 직경 27.5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중간 돔과 30개의 작은 돔들이 받치고 있는 형태이며 6개의 미나레가 본당을 호위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해 소리치는 것(높이 올라가면 소리가 더 잘 퍼지니까)과 외부인에게 자미의 위치를 쉽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 그것이다. 오스만제국 시대에 들면서 이 미나레의 개수가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술탄아흐멧 1세 자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고의 자미를 짓고 싶었던 술탄은 당시 2~4개의 미나레가 일반적이던 자미 건축전통을 뒤엎고 무려 6개나 만들었던 것. 건설 당시 이슬람의 총 본산인 메카의 미나레도 6개였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자신은 황금(터키어로 ‘알툰Altun’)으로 지어달라고 한 것을 건축가인 마흐멧 아Mahmet Ağa가 숫자 6(터키어로 ‘알트Altu’)으로 잘못 알아듣고 지었다는 후일담이 생겨났다. 참고로 마흐멧 아는 오스만 제국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의 수제자.

내부에는 26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고 있으며 이즈닉에서 생산된 2만 1,000여장의 푸른 기조의 타일이 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이른바 ‘블루모스크’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자미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이 있어 시민의 휴식처로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꽃밭에 앉아 예배를 드리러 드나드는 터키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Aperture priority | Multi-Segment | 63/100sec | f5 | 0EV | 46mm | No Flash | 2007:10:03 21:08:17

아야소피아 야경. 실제로 보면 정말 죽이죠. 뒤로 보이는 배경은 마르마라 해 건너 아시아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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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