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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대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14 환타옹의 컴퓨터 기변기 -2- FS-A1F by 환타fanta
  2. 2009/07/06 컴퓨터 기변기 -1- IQ-1000 by 환타fanta (6)

이알 쿵후 1과 남극탐험에 삘이 꽃혀 구입한 MSX 기반의 IQ-1000.

세월은 화살처럼 빨랐다.(아니 그때는 10대였으니 지금처럼 빨르진 않았을거 같다만...)

게임업계는 몇가지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바로 메가 롬팩의 출현.

무려 1024KBit(바이트 아니다...바이트로 하면 128Kbytes)의 롬팩이 메가롬팩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첫번째 테이프를 끊은 회사는 요즘 위닝으로 유명한 코나미였다.

오락실용으로 먼저나온 그라디우스가 MSX로 컨버젼되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 한국에는 오락실용 그라디우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

대신 외전격인 사라만다가 있었다.

오프닝이 압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화려한 그래픽이었던 불꽃의 묘사.

음성지원....이끼나포 쎈탑~~<-뭐 이런...지금 들어도 뭔말인지....--;;;

그리고 종횡스크롤 지원........

전두환덕에 설치된 컴퓨터를 어찌하지 못했던(이미 MSX오락은 시들해졌을때...)

오락실들은 메가 게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그라디우스, 그리고 꿈의 대륙.......

남극탐험2에 해당하는 꿈의 대륙은....놀라웠다.

우주로도 나갈수 있었고, 보스전이 있었으며, 아이템을 먹으면 긴 점프등의 기술도 쓸수 있었다.

구입 1순위였던 꿈의 대륙...

하지만, 메가단위의 롬팩이니 얼마나 비쌌겠는가?

꿈의 대륙은 진정 내가 가야할 꿈의 대륙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란가?

당시 세운상가의 파워는 또 어떠했는가?

구동장치를 앞서 말한 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채,

데이터만 임시 보관하는 램 방식(당근 컴터 끄면 재로딩해야한다.)의

골든박스라는 신기가 출현했다.

가격은 롬팩값과 진배 없었으나 일단 구입하면 저렴한 카세트 레코더로 로딩이 가능한.....

물론 메가비트의 고용량이다보니, 로딩시간이 한시간이었고, 테이프의 특성상 에러라도 나기 시작하면

그 짓을 몇번이고 해야했다.

어쨋건 나는 드디어 그라디우스와 꿈의 대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욕구는 커져만 갔다.

이미 1986년 대우에서는 IQ-2000이라는 MSX2규격의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MSX2의 장점이라면

우선 512색중 256색을 동시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초 워크스테이션급(당시로는) 그래픽을 구현했다는 점.

꼴랑 16색뿐인 MSX1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다.

그리고 횡스크롤을 컴퓨터 차원에서 지원했다.

스크롤.....비행기 게임할때 화면이 자연스레 옆으로 넘어가는 그 기능인데.

MSX1때만해도 이걸 소프트웨어 적으로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화면이 손가락 반마디씩 깜빡거리며 움직였다.

부드러운 MSX2나 오락실 스크롤은 늘 부러웠다.

하지만,

컴퓨터 사서 늘 게임만 하던 나는 이미 신용을 잃었고,

신기종(그것도 당시 형편으로 무리해서 구입한 건데...)은 꿈속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초기에는 MSX2전용 게임 자체가 별로 없없다.

즉 512색중 256색을 쓴 프로그램이라곤, 컴퓨터 구입할때 따라오는 데모 프로그램빼고는 없었다는...

그래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

메가롬팩 시대가 열리며, 이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던 T&E라는 곳은, 게임을 마구 뱉어내기 시작했고(그래픽 빨은 좋았다.)

코나미도 우샤스, 메탈기어(전설의 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MSX1게임은 그라디우스 시리즈(끈질기게 1으로 발매했다.)

F1 스피리트같은 자동차 게임이 전부였다.

기변병...........

기변병...........

버뜨, 그런데 기변병은 쉽게 해결됐다.

파덜이 일본여행을 가서는 덜렁 한대를 사온거다.

바로 FS-A1F라는 파나소닉의 MSX2.

FDD내장형!!!!!

당시 3.5인치 FDD는 첨단 제품이었다.

한국에는 퀵디스크라는 1.8인치짜리 초소형 디스크 드라이브가 처음 보급되었고.(물론 애플쪽은 5인치 디스크를

예전부터 쓰고 있었다.) 3.5인치는 내가 FS-A1F를 구하고 1년후쯤 나왔는데, 약 40만원쯤 했다..(1987-8년 물가로!)

FDD..지금이야 느려터진 매체에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카세트 테이프에 비하면, 128Kbit를 한시간에서 1분여로 단축해준 신기중의 신기였다.

FDD가 조금씩 보급되며 바뀐 현상은, 카피 가게가 생겼다는것.

사실 당시의 모든 컴퓨터 가게들이 똑같았는데,

FDD를 가져가면 장당 2000-3000원씩 받고 그 안에 게임을 복사해줬다.

기억으로 연신내 어딘가에 있던 컴퓨터 숍이 일산 게임 복사가 가장 빨랐다.

일본에서 나오면 3-4일안에 카피본이 풀렸으니까......

나는 정말 미친듯이 게임에 빠졌고............

YS가 등장하며 FDD전용 게임도 나오면서 이제는 완전 오락실 부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또다른 기변병이 불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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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1982년이었을게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같은게 열렸다.

컴퓨터라는 단어에 생소하던 시대니 만큼 언론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그때 대상인지 1등인지를 받은 아이가 있었는데,

뭐 병든 엄마를 살리기위해서 용궁으로 가는 게임을 만든 친구였다.

단지 까만 화면에 깜빡 깜빡이는 움직임따위였지만, 그건 신세계였다.



'엄마를 살리기위해'라는 단어에서 나는,

이거 사달라고 하면 먹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혼자 상상의 나래(지금 뭔 상상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를 피면서 흐뭇해했다.

당시 초딩의 대부분은 주산학원을 다녔다.

주판이라고 아는가 모르겠는데,


나 초딩때는 이거 다 배워야 했다.

이때가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올땐데,

아무래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주판의 시대가 저물걸 예상한듯한 학원들은

벽마다, 주판이 전자계산기보다 빠르다는 포스터를 붙여놓곤 했었다.

뭐 더하기 빼기는....버튼 누르는 속도보다 저게 빠르긴 하다.

주산학원은 덤으로 암산이라는 걸 가르쳤다.

선생이 1+25+32+8을 말로 부르면-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1원이요, 이십오원이요, 삼십이원이요 식으로 끝에 꼭 원짜를 붙였다.-

주판을 좀 놓을줄 알면, 이 암산을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책상에 가상의 주판을 상상하며 손으로 튕기면 계산이 되었다.

뭐...그 당시는 물자가 부족해서, 그냥 맨바닥에도 상상력을 동원한 터치 기능이 가능했다....지금이야 터치폰 있어야하지만 --;


하여간 주산학원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교육적 효과는 두뇌개발이었다.

이 때 양지의 주산학원과 함께 두뇌개발을 강조하던 분야는 상대적으로 음지였던 전자오락실이다. --;

하여간, 컴퓨터도 컴퓨터 판매상들 주장에 의하면 두뇌개발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 완제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그 대상인가 받은 친구 집을 티비가 비췄을때얼핏 컴퓨터라는걸 봤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효성이라고 써져있었다.(당시 효성은 애플 2+ 호환기종을 만들고 있었을게다.)

이 기억을 뒤로....



그 다음 기억은 1984년이다.

둔촌동에도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이때는 드디어 국내에서도, 아니 대기업에서도 컴퓨터가 막 양산되던 때였다.

우리의 가전3사도 모두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삼성의 SPC-1000




금성(지금의 엘지)의 FC-80, 100, 150 시리즈(서로 호환 안됐다 --;;)




그리고 대우의 아이큐 1000이었다.(참고로 금성의 FC-80도 MSX방식이었다.)


학원에서는 삼성 SPC-1000으로 수업을 했다.


컴퓨터라는게 배우면 금방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수 있을거 같았지만.

현실은 베이직과의 싸움이었다.


당시의 학원 교육이라는건, 칠판에 베이직 코드를 적어주면

그걸 타이핑 친다음(타이핑은 알아서 배워야 했고, 그래서 그때는 대부분 독수리였다.)

실행(기억으로 F5를 누르면 실행이 되었다.)하는 방식.

처음 그린건 원이었다.--;


10 screen 2

20 circle(120,80), 40

30 goto

run


뭐 대충 기억을 복기하자면 이런거였고,

그러면 화면에 원이 그려졌다.


음......그게 다다.


이때는 마우스니 GUI니 없던 시절이고, 도스보다도 예전으로서

컴퓨터를 키면 베이직 언어가 로드되고, 커서만 깜빡거렸다.


SPC-1000은 카세트 레코더 내장식이었는데,

이때는 카세트 레코더에 프로그램을 녹음했다.(스피커로 들으면 삐이이이이이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이 즈음 나오기 시작한 더블데크또한 덕분에 인기품목이었다.

그게 있으면 대충.....프로그램을 구울수(?)있었으니까......


하여간, 난 사실 컴퓨터 배우면 게임을 좀 마음껏 할줄 알았는데,

이놈의 삼성컴은 칼라도 안나오고, 게임속 캐릭터도 한번 움직일때마다 화면이 일렁였다.

지금 생각나는 인상적인 게임이라곤 캥거루 뿐이다.


그 즈음.....그러니까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1985년

오락실에는, 전두환의 컴퓨터 육성책의 하나로,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지금의 공중 컴퓨터의 효시인데,나무 상자안에 컴퓨터 키보드만 돌충된 형태로...(당시는 바디+키보드 일체형)

이렇게 보급된 기종이 대우의 IQ-1000이었는데, 이건 삼성컴같은 자체규격(맞나?)이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아스키가 만든 일종의 수입 규격인 MSX방식이었다.

8비트 시절에는 미국,유럽의 애플 호환기와 일본및 몇몇 나라의 MSX방식의 싸움이었는데,

MSX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빨랐고(애플은 1Mhz-기가가 아니다. MSX는 무려 3.58Mhz였다!!)


별도의 확장없이 16색의 칼라가 나왔으며, 티비와 연결이 가능해서 별도의 모니터 요금이 들지 않았다.


하여간,

당시 기준으로 최고의 멀티미디어 컴퓨터다 보니, 오락실에서 MSX로 베이직을 공부하는 녀석은 진정 얼빠진 놈이었고,

대부분 게임을 로드시켜 하고 있었다.

당시의 명작게임이라면

요술나무


양배추(세계최초의 코스프레 게임 --;;; 일지도..)


이얼 쿵후


등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삘이 왔다구나 할까?

내가 가야할 길은 삼성이 아니라 대우였다.

그리고 컴퓨터 구입은 의외로 싱거웠다.


1985년 뭔 바람이 불어서인지 가전제품을 다량구입

(우리집 최초의 칼라 티비, 냉장고, 컴퓨터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게 된 것이다.


티비는 당시 처음 시작한 스테레오(이게 뭔지도 몰랐다.) 및 음성다중(어지러웠다.) 방송을 지원하는 14인치.

냉장고도 당시로서는 처음인 영하 20도 급속냉각기능이 있는 아이씨 냉장고

그리고 아이큐 1000............


사양은 다음과 같다.

MSX BASIC V1.0 (16 KB)

  • RAM: 8 KB minimum, most machines provided either 32K or 64K, machines with 128 KB exist
  • Video Display Processor: Texas Instruments TMS9918 family
    • Video RAM: 16 KB
    • Text modes: 40×24 and 32×24
    • Resolution: 256×192 (16 colours) <=이거 중요하다. 당시로서는 최강....16색!!
    • Sprites: 32, 1 colour, max 4 per horizontal line
  • Sound chip: General Instrument AY-3-8910 <=3중화음 8옥타브를 지원하던....오디오 칩


베이직 프로그램 연마는, 아이큐 1000을 구입하는 즉시 잊었다.

엠에스엑스는 두가지 방법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롬팩이라고 하는 지금의 닌텐도 디에스같은 롬 칩을 끼우는 방식과

SPC-1000에서도 애용하던 카세트 테이프(데이터 레코더라고 했다..)를 쓰는 법....


롬팩은 넣자마자 게임이 되었지만, 비쌌다.

1985년 물가로 19800원에서 29800원까지.....

카세트 테이프 게임은 쌌다...3000원...

당시로서는 3000원도 꽤 큰돈.......

진정 부잣집 자제들은 롬팩을 박스로 가져다 놓고 했지만,


난 한달에 게임 테이프 한개 사기도 버거웠고,

덕분에 한우물만 팔 수 있게 되었다. --;;;

하여튼 첫번째 게임기 --;;; 아니 컴퓨터 아이큐 1000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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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