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09/30 따지마할 by 환타fanta
  2. 2011/09/14 인크레더블 아그라 by 환타fanta (4)
  3. 2009/03/10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아그라 성 Arga Fort by 환타fanta
  4. 2009/03/01 아그라 개요 introduce agra by 환타fanta
  5. 2007/07/09 파테뿌르 시크리 by 환타fanta (5)
  6. 2006/07/07 아그라 타즈마할 야간개장. by 환타fanta (4)
  7. 2006/06/26 인도 100배 뻥치기.... by 환타fanta (7)

따지마할

인도 프렌즈 2011/09/30 17:17



따지마할을 조용히 관람하는 사람은 없다. 따지마할은 이래저래 시끄럽다. 

커플들이라면 대부분 이런 그림

'당신도 나를 위해, 내가 죽으면 이런걸 만들어 줄 수 있어?'

남성들의 반응은 반반이다.솔직한 성격의 남자라면 묵묵 부답. 

'당연하지! 이거뿐이야. 이보단 좀 커야지.'정도 말하는 남자라면 상당한 정치력의 소유자다.


독신인 여성들은 이 앞에서 주로 한탄을 한다.

'에휴 난 이런거 만들어줄 어떤 놈 없나?'

만약 그녀에게 흑심이 있다면 들이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 할 수 있는데……'라는 말 한마디면 우선 기본 점수는 따고 들어가지 않을까?


내가 아는 욕쟁이 친구중 한명은 따지마할에서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씨발새끼 만들어 놓고 졸라 뿌듯했겠네!'


늘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뭔갈 선물하고는 능력있는 남자라고 뻐기는 그 다운 말이었다.

아마 그가 이렇게 욕을 한 이유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인도로 날아온 탓이리라.    



1631년 7월 17일, 무굴의 5대 황제 샤 자한의 아내였던 뭄타즈 마할이 38살을 일기로 죽었다. 

스무살에 첫 아이를 가진이래 18년동안 무려 13명의 아이를 낳은 그녀는 결국,  14번째 아이인 가우하라 베굼 Gauhara Begum을 출산하는 과정에 죽고만다.

사실 황후로서의 삶은 겨우 4년째가 되던 해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18년동안 14명의 아이를 낳는 것도 좀 상식 밖이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뭄타즈 마할은 한 곳에 정착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무굴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과 달리 큰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전통이 없었다. 왕자들끼리 자유경쟁을 통해 가장 나은 아들(바꿔 말하면 아버지에게 가장 잘 보인)이 황위를 계승했다.

이러다 보니 왕자들은 전공을 세워야만 했고 끊임없이 병력을 이끌고 원정에 나서곤 했다. 


다정도 병인가 하노라라는 싯구는 아마 이 커플에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샤 자한은 원정을 할때조차 뭄타즈 마할과 동행했다. 


뭄타즈 마할의 임신 기간을 고려했을때, 그녀는 상당 기간동안 임부의 상태로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것도 그냥 여행이 아니라 전쟁터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그렇게 쌓은 공적으로 샤 자한은 황제가, 그녀는 황후의 자리에 올랐건만 겨우 4년 만에 죽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 

'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덤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에 대해 마치 철없는 황후 마마. 즉 마리 앙뜨와네뜨의 화신인것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옥중에 갇힌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했던  '내가 죽으면 도령님 선산에 묻어주오.'라는 유언과 더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뭄타즈의 집착은 회한에 가까웠다.


샤자한도 냉큼 그러마라고 약속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샤자한은 슬픔이 깊었던 나머지 뭄타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모두 세었다고 한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보다 한 살이 많아서 당시 서른 아홉이었다.


그의 백발설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정자왕(!) 샤 자한은 이후 단 한 명의 아이도 가지지 않는다. 

  

유능했던 꿀람(샤 자한의 왕자시절 이름)은 뭄타즈가 사망한 이후 변해버렸다. 제국의 통치보다는 제국의 영화를 바탕으로 심시티 Simcity에 몰두했다. 


뭄타즈가 죽고 바로 1년 후, 따지마할의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가 시작됐다는 말은 이미 설계를 비롯한 계획이 수립됐다는 이야기. 이건 다시말해 샤 자한은 뭄타즈가 죽자마자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의미다. 


연 인원 20만 명, 약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자재를 날랐다. 그러고도 22년이나 걸렸다.


설계는 이란 출신의 천재 건축가 우스타드 이샤 Ustad Isa(주1)가 맡았다. 우스타드 이샤는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따지마할에 그대로 투영했다. 





따지마할 아름다움의 핵심은 바로 완벽한 대칭구조, 돔과 아치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곡선미, 그리고 대리적 공예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Pietra Dura(인도에서는 빠르친 까리 Parchin Kari라고 부른다.)의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딸리아에서 전래된 피에트라 두라는 따지마할 장식의 핵심을 차지하며 결국 인도에서 만개한다. 피에트라 두라의 기법은 사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대리석 바탕위에 준보석이나 보석을 붙여만든 일종의 모자이크. 한국의 나전칠기와도 재료가 다를뿐 원리 자체는 같다. 




이렇게 지어진 따지마할은 빛의 예술을 선사받았다. 순백의 대리석 자체도 태양의 위치에 따라 흰색과 노랑색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여기에 보석 모자이크가 더해져 시간에 따라 다른 색감을 자랑하게 된 것. 


쳐다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달리 보이는 따지마할의 마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완공되던 날, 황제의 몸으로 독신을 지키며 뭄타즈만을 그렸던,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샤 자한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애정도 길이라면 길이었지만,  외길만을 달려온 샤 자한의 말년은 우울했다.    


샤 자한은 아그라를 온전히 뭄타즈만의 도시로 남기를 원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죽은 아그라는 더 이상 제국의 수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아그라에서 버틸수가 없었다. 


샤 자한은 아그라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수도를 델리로 천도한다.  


타지마할이 한참 지어지고 있을 때,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델리에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왕궁인 붉은 성,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자미 마스지드가 따지마할과 동시에 건설됐다. 


후일 건축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샤 자한은 어쩌면 아주 약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통치 포기와 심시티 놀이는 제국의 재정을 파탄 지경까지 몰고간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남은 생은 그저 그녀를 기념하기 위했음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샤 자한은 야무나 강 건너, 그러니까 따지마할 맞은 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따지마할과 똑같은 무덤 건설을 계획했다고 한다. 검은 따지마할은 바로 샤 자한 자신의 무덤이었다. 흑/백의 따지마할 사이에는 아치로 만든 다리가 연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검은 따지마할이 없는 이유는 샤 자한이 뭄타즈마할과의 사이에서 난 여섯번째 자식인 아우랑제브가 반란에 성공, 샤 자한을 강제로 폐위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은 큰형인 다라 시코만 편애한 아버지를 극도로 싫어해서 따지마할에서 겨우 2km 떨어진 아그라 성의 남동쪽 끝에 있는 작은 정자에 가둬버렸다. 샤 자한은 그 곳에서 부인의 무덤을 7년간 바라보다 쓸쓸하게 죽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죽은 후, 뭄타브 마할의 무덤 옆에 묻어줬다. 합장이라고 본다면 배려일테고, 무굴의 황제중 유일하게 무덤 더부살이중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아우랑제브를 끝까지 그를 경멸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건 이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대신 가장 시끄러운 무덤속에서 지금도 안식을 취하고는 있다. 아마 하루에도 수백번씩 '그럼 그 사람들이 여기 묻혀있는거야?'라는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부러움 가득한 여인네들의 한탄을 듣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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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관광청의 공식 구호는 인크레더블 인디아 Incredible India.
느끼기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대략 믿어지지 않는 인도, 놀라운 인도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인도여행을 하기 전, 이 인크레디블은 인도가 가진 유적지. 이를테면 불세출의 금자탑인 따지마할같은 건물을 연상시키는 작용을 한다.
한낮,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가운데, 몽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따지마할의 모습은 진짜로 믿기 힘든 풍경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막상 인도를 방문한다면, 이 인크레디블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를테면 황당한 인디아랄까?
한국인들의 국제경험 부족탓도 있겠지만, 인도여행에서 만나는 인도인들의 황당함을 상상을 초월한다.

하늘이 무너질듯 호들갑을 떨며 온갓 구라(거짓말은 적당하지 않은 단어다.)를 떨다가도, 정색을 하며 너 거짓말이지? 라고 말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
왜 5분도 안가 들통날 거짓말을 그리 해대는지.
부모가 죽은 듯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짓는 거지에게 큰 맘먹고 적선을 하는 순간. 그러니까 동전이 짤그랑하고 그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안면은 몰수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보이던 얼굴이, 우주에서 가장 무덤덤한 얼굴로 바뀌는 찰나의 드라마틱함은 누구에게나  황당한 경험을 선사한다.


황당한 인디아.
그 중에서도 아그라는 내가 여행해본 곳 중 가장 웃기고 황당한 도시중 하나다.

아그라는 인도여행에서 필수 방문지다.
누군들 따지마할의 아름다움을 외면할 수 있을까?

하지마 그 덕에 아그라는 인도, 아니 세상에서 가장 음식이 맛없는 도시로 등극했다.
어차피 볶음밥을 만들건 개 죽을 쒀주건 여행자는 아그라를 들를 수 밖에 없고, 왔으면 맛있건 맛없건 먹어야 한다.
하긴 따지고 보면 서울역 주변의 식당도 맛이 없긴 매 한가지다.
어차피 그런 곳에서 손님이란 뜨내기. 멀고 먼 인도땅 따지마할 앞 식당의 입장에서야 오늘 오는 손님중 그 식당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몇%나 될까?

여행자 시절에도 아그라는 정말 먹을 곳 없는 곳이었지만, 막상 가이드북을 쓰게되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많은 것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 분명 행복이지만,
없는 것들을 추려서 그나마 나은 놈들을 골라내는 일은 고역이다.
맛이 없더라도 그나마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하는 집들을 골라서 추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따지마할 남문 앞에는
티베탄 키친 Tibetan Kitchen이라는 집이 있었다.
아그라의 고만고만한 집 치고는 그래도 컨셉이 확실했다. 참고로 티베트 음식은 인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국물 요리가 있어서 뭔가 떠 먹고 싶을 때 가장 선호되곤 한다.
문제는 정말이지 티베트 음식을 한번도 안 먹어보고 음식을 만드는게 분명해 보였다.
한국의 만두와 비슷한 티베트 음식인 모모의 속은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 카레양념한 감자가 들어간다.)와 똑같았고,물국수인 툭파국물은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내가 풀풀 났다.

당연히 책에 추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이런 집은 책에 소개와 상관없이 한국인 여행자들이 방문 할 수 있다. 



고심끝에 이 집만큼은 가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 책에 썼다.

티베탄 키친 Tibetan Kitchen
티베트 음식을 한번도 안 먹어봤음이 분명한 주인장이 요리를 만드는 곳으로,
최근에는 한국 음식도 선보인다.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이 음식을 하니 얼마나 맛없겠냐고!


그리고......

책이 나오고 1년 반쯤 지나서 나는 다시 아그라를 찾았고, 정말이지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따지마할 주변의 레스토랑이 일제히 한글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티베탄 키친', '100배 추천'이라는 한글 간판이 붙어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모두 티베탄 키친이라는 간판을 달았을까?

결국 취재 일정을 접고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밝혀내야만 했다.



이틀쯤 탐문했을 때 나는 대강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작은 일부 한국 여행자들의 독해문제에서 비롯됐다.

'한번도 안 먹어봤음이 분명한'이라는 문장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추천으로 이해한 여행자들이 꽤 많았고, 따지마할 주변의 기름에 버무린 볶음밥과 닝닝한 인도 커리나 군내나는 국물의 물국수, 사모사 맛 모모나 별 차이도 없더란다.
이런 이유로 오히려 티베탄 키친은 책에 '소개'내지는 '추천'한 집으로 분류되며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장사가 잘된 것. 특히 특정 국적의 사람들이 몰린것은 결국 화가 됐다.
특히 건물 주인이 이 점을 시기했다. 결국 가게세를 대폭올렸고 티베탄 키친은 가게세를 감당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건물주의 실수였던것이 한국인들은 일종의 특정 시기에만 몰리기 때문에 일종의 착시현상이 발생한다는걸 몰랐던 탓도 있다.


티베탄 키친은  이렇게 책에 소개된지 채 1년도 안돼서 없어졌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은 이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책을 들고 그 주변을 서성이며 티베탄 키친이 어디니라고 묻고 다녔다.
그러자 한 식당 주인이 그냥 가짜로 티베탄 키친이라고 간판을 달았는데, 그 집으로 한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더란다. 더 웃긴건 그 집은 티베트 음식을 전혀 취급하지도 않았다. 



이 집의 성공을 본 옆가게, 또 그 옆가게의 옆가게가 하나둘 티베탄 키친이라는 한글 간판을 달기 시작했고, 결국 그 일대에 있는 무려 아홉개의 레스토랑이 한글로 티베탄 키친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더 웃긴건 이렇게 자기들끼리 가짜 경쟁이 격화되며 스스로 원조를 자처 어떤 집은 책의 해당 페이지를 크게 복사에 가게 앞에 걸기도 하고, 또 다른 집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부탁 '환타가 인정한 바로 그 맛'(이 간판은 정말 민망하더라.)이라는 입간판을 붙여놓기도 했다.

 


급기야는 나에게 누군가는 메일도 보냈다.
'어디가 진짜 티베탄 키친인가요?'


결국 이 상황은 다음 개정판에서 '티베탄 키친'이라는 이름을 빼며 종료됐다.
책에서 빠지니 찾는 사람이 없어졌고, 식당 주인들도 굳이 가짜 간판을 달 필요가 없어졌다.


따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의 우스꽝스러운 평화는 이렇게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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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긴 무굴제국은 1564년에서 1574년에 걸쳐 아그라성을 건축하였는데, 지금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은 건축광이라 불리우는 샤 쟈한 때의 일이다. 아그라 성은 왕궁과 전투요새의 역할을 동시에 할수 있게끔 설계가 되었는데, 성 주의의 해자나 20여 미터나 되는 높은 성벽은 이것을 잘 나타낸다.


무굴의 황제이던 악바르는 아쇼카 황제와 더불어 인도 역사상 둘밖에 안되는 '대제'라는 칭호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악바르 황제는 13세에 왕위에 올라 군사적인 정복전쟁에서도 능해 인도의 영토를 넓혔지만 그가 진정한 대제로써의 칭호를 받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은 바로 그의 포용정책이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약간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힌두교, 불교를 포함한 당시 인도내의 모든 종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의 당대에 시크교의 성지인 암리차르가 건설되었다는 것은 이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의 증손자격인 아우랑제브의 편협성과 비교하면 악바르의 업적은 더욱더 빛을 발하는데, 그는 회교도 교리상 인정되지 않았던 우상에 대한 조각(왕성의 기둥에 코끼리를 조각)을 한 것이다.

이처럼 악바르의 체취가 강하게 남아있는 아그라 성은 샤자한 시대에 와서 한층더 증축이 되는데, 특히나 건축적 감각이 남달랐던 샤 자한에 의해 아그라 성은 더욱더 화려해진다.

이런 아그라성의 역사는 성을 중건한 샤 자한의 비극으로 더욱더 우리의 뇌리속에 강하게 남는다. 재위기간중,  델리의 붉은성, 자마 마스지드, 아그라의 타지마할등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낸 샤 자한은 말기에 자신의 막내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어 아그라 성에 갇혀서 말년을 보내게 되는데, 아그라성에서 타지마할은 아련히 보이게 마련이어서, 그곳에서의 샤 자한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19세기 이후 영국치하 시절의 아그라성은 군대의 주둔지로 사용이 되었는데, 그런 성내의 일부가 개조되면서 약간은 훙물스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인도 고고학조사국에 의하면 성의 주위가 해자에 둘러싸여 있어서 습기에 의한 침식이 우려된다고 하는데, 먹고 살기도 힘든 인도에서 얼마나 이부분에 신경을 쓸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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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도시, 인도를 상징하는 유물인 타즈마할이 있는 도시 아그라는 신기루 처럼 빛나는 타즈마할이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현재는 북부인도의 중추적인 공업도시로 그다지 매력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인도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방문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16~17세기까지 무굴제국의 수도로써 인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아그라는 1638년 샤쟈한이 새로운 도시 델리를 건설하면 수도로서의 지위를 델리에 넘겨주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도 현재는 파키스탄 땅인 라호르, 델리와 함께 무굴제국 시대의 가장 중요한 3개의 도시중 하나로써 그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아그라는 역시 타즈마할로만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델리로부터 24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지리적인 이점은 아그라를 델리-바이푸르와 함께 북부인도 여행의 트라이앵글로 만들어 놓았다.

 

아그라로 가는 길

유명한 관광지이자 교통의 요지답게, 수많은 버스와 기차들이 아그라를 연결하고 있다. 240Km정도의 거리인 델리에서는 수많은 버스들이 모든 등급으로 아그라를 연결하고 있는데 정부버스들은 카쉬미르 게이트쪽의 ISBT를 출발점으로 삼는다.(5시간 소요, 70루피)  델이 이외에도 자이푸르(6시간 소요, 93루피, 디럭스 112루피), 마투라(1시간 30분 소요, 21루피), 카쥬라호(12시간 소요, 120루피, 오전 5시 한 대!)등이 이드가 버스스탠드에서 출발한다. 디럭스버스의 경우는 아그라 역 근처에 있는 SHEETAL호텔 근처의 공터에서 출발한다. 푸쉬카르로 연결할 경우 푸쉬카르에서 12Km 떨어진 아즈메르로 가야 하는데, 이 것 역시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델리에서 기차로 연결할 경우는 선택의 폭이 더 많은데, 델리와 아그라를 단 두시간정도에 연결하는 초특급에서 5시간에 걸쳐 연결하는 일반 익스프레스까지 수많은 기차들이 두도시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카쥬라호에서 올 때는 쟌시역에서 아그라로 오게 되는데, 쟌시역 역시 델리로 가는 대부분의 기차들이 아그라역에서 정차하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너무 많아서 기차번호를 나열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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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네팔 100배 즐기기, 파테뿌르 시크리 추가사진입니다.
역시 사진 땟갈은 인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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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도 100배 06-07(07-08일지도...--;)의 개정정보입니다.
중요도 때문에 웹에 우선 공개합니다.




Travel Tip―〉■타즈 마할 야간 개장
타즈 마할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보름달이 뜬 밤이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상식. 하지만 인도 정부와 인도 고고학회는 야간 개장시, 여행객의 통제 불능을 이유로 지금까지 타즈 마할 야간 개장을 불허했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호사가들은 보름달 뜬 타즈 마할의 우아한 자태를 상상하면 침만 꿀꺽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는데요. 지성이면 감천이었는지, 요지부동이던 인도 고고학회가 타즈 마할의 야간 개장을 허용했습니다.
단! 무척, 아주, 제법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니 아래의 내용을 잘 읽어보세요.
야간 개장이 가능한 날은 1달에 단 5일, 바로 보름달이 뜨는 날, 그리고 보름날 전․후 2일씩입니다. 인도 고고학회는 타즈 마할의 보호를 위해 개장날도 관람객을 하루 400명, 그것도 8개의 팀으로 쪼갠 후, 한 팀당 50명만 동시입장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타즈 마할에 들어간다 해도 자유행동은 물론 관람 시간까지 회당 30분으로 제한이 됩니다.
최고의 낭만을 꿈꾸는 호사가라면 한번 도전해 보세요! 단 요금은 만만치 않습니다.
Data―〉■타즈 마할 야간 개장
․개관 매월 보름날 그리고 보름 전․후 2일. 20:30~00:30
․요금 Rs750 or US$15
5~15세 Rs500 or US$10
! 입장 24시간 전까지 타즈 마할 매표소에서 구입.
! 비디오 촬영 금지.

표―〉■타즈 마할 야간 개장일
2006년 10월 5~9일
2006년 11월 3~7일
2006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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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by Lonely Planet'이라는 간판이 서양 여행자들이 숙소나 식당을 선택하는데 결정적 작용을 한다면,

'인도 100배 강추!'라는 문장은 한국인 여행자들의 선택을 좌우합니다.

엘피 번역판이 나와있는 현실이지만, 어쨋건 현재까지 인도 100배 즐기기는 한국인에 한해서는 시장 점유율 70% 정도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인도에서는 인도 100배의 추천 여부를 가지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그라.

100배에서 추천한 티베탄 키친 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초판부터 추천에서 짤리지 않는 곳입니다만, 이 집이 맛있어서 추천한건 아닙니다. 책 보시면 알겠지만 '티베트 음식을 한번도 안 먹어 봤음이 분명한' 주방장이 요리한다고 비꼬아 놓은데거든요.

아그라 가보신분 알겠지만 이 동네 진짜 맛있는 음식 없습니다.
뭐 맛없지만 이런 류의 음식이 땡기면(물론 맛은 없겠으나, 맛없는 카레 먹을래? 맛없는 모모 먹을래의 차이죠.) 먹으라는 겁니다. --;





문제는 이 집이 2005년 초에 망했습니다.
문제는 저는 2004년 12월에 현 05-06의 개정을 끝낸 관계로 이 집이 망한지를 알리도 없고, 그냥 책은 팔려나갔죠. --;(이거 어쩔수 없는거 아시죠?)

여행자들은 100배를 들고, 일부는 맛없는 모모를 먹을려고, 일부는 제 비꼼을 이해못한채로 티베탄 치킨을 찾았습니다.

이미 망한 집이지만 한국인이 찾는다는 걸 안 인도인. 가만있을리가 없습니다.

한 집이 티베탄 키친이라는 이름을 달자, 한국인들은 그집이 그집인줄 알고 갔고, 그 집이 장사가 되자, 타즈간즈의 모든 식당은 티베탄 치킨이라는 이름을 달았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아그라 가면, 타즈간즈의 꽤나 많은 식당들이 죄다 티베탄 키친입니다.

무슬림이 하는 집도, 힌두가 하는 집도, 얼굴은 꺼멓지만, 무조건 티베탄 키친이라고 우기는 거죠.


이번 개정 여행시, 아그라 가서 저도 무척 황당했다는......

작가에게 자기책이 인용되는건 좋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이건 좀 아니더라구요.


젠장 맛있어 보이면 말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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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