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프렌즈'에 해당되는 글 18건
- 2011/01/15 표지 확정!! (1)
- 2011/01/10 내 맘대로 선정한 인도 프렌즈 베스트 원고 -개요편- (3)
- 2010/12/15 저자 인사말 by 인도 네팔 프렌즈 11-12 (4)
- 2010/10/03 인도 비자 받기 -2010년 10월 수정판- Ver.1.02 (1)
- 2010/09/09 인도에서 아이폰 3Gs 사용하기 (14)
- 2010/08/18 뜨거운 남자들 (1)
- 2010/08/18 [요즘 인도풍경]충전 전쟁 (3)
- 2010/08/07 뭄바이 택시 카드 2010년 7월 1일자.
- 2010/05/06 환타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4)
- 2010/05/05 불교성지로 가는 특별열차 마하빠리니르반 익스프레스 (5)
까르나따까의 정신적 수도. 벵갈루루가 인도의 미래라면 마이솔은 빛나던 까르나따까 주의 영광이다. 전통적으로 발달한 향 산업으로 인해 ‘백단향의 도시’라는 제법 낭만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고, 시가지에 남아있는 궁전의 웅장함은 도시의 이미지에 기품을 더한다.
그 뿐인가? 19세기 마이솔을 지배하던 이슬람왕조는 인도 역사상 유일하게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대영항쟁을 벌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국에 의해 스스로 포섭된 지배자들에 의해 자발적 식민지화가 이루어졌던 인도 근대사에서 마이솔이 없었다면, 이들의 역사는 정말 부끄러웠을 것이다.
영국이라는 거대 세력에 맞서 독립을 지키려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그들의 기상과 정신만큼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여 년 전 대영항쟁의 와중, 영국과 타협한 인도의 지배자들은 마이솔 사람들의 저항을 달걀로 바위치기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는 수많은 달걀들이 모여 결국 바위를 깨트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이솔을 가리켜 '까르나따까 주의 자부심'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꾸쉬나가르 Kushinagar
삶. 80년, 찰나라면 찰나인 그 시간이 단숨에 지나갔다. 서른다섯에 깨달음을 얻고, 그 지혜를 나눈 지도 45년. 시간이 갈수록 빛나는 그의 지혜와 달리 몸은 나날이 낡아갔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 夏安居를 보낸 후, 죽음을 위해 예비한 땅 꾸쉬나가르를 향해 나아갔다.
정들었던 도시, 이제 다시는 육신의 옷을 입고 밟지 못할 땅. 바이샬리 어귀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도시를 바라봤다. 철없는 제자들은 스승의 선택을 말렸다.
‘부다라는 호칭을 얻은 분의 입멸지로 꾸쉬나가르는 너무 좁습니다. 조금 더 큰 도시로 나가야 합니다.’
꾸쉬나가르로 가는 도중 그의 몸은 더 망가져 갔다. 대장장이 춘다가 해준 요리가 문제였다. 밤새 붉은 피를 쏟아냈다. 죽음은 한 층 더 가까이 다가왔다. 대장장이 춘다의 집에서 꾸쉬나가르는 오늘의 거리로 약 20㎞. 그 거리를 스물다섯번이나 쉬면서 몸을 끌어가며 꾸쉬나가르로 왔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시간에도 깨달음을 구하는 이의 발길이 다가왔다.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였다. 죽음은 그로 인해 늦춰졌다. 마지막 가르침. 수바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직전 그는 마지막 제자를 얻었다.
제자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비구들이여. 모든 현상은 변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꾸쉬나가르, 불교의 4대 성지. 부다가 생을 마친 곳이다.
3.바라나시 Varanasi
인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중첩된 이미지를 모두 품고 있는 3,000년 고도 古都.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라고......
미국의 대문호인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은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는 말로 바라나시를 압축했다. 그 또한 두 차례나 바라나시를 여행하며, 그 알 수없는 모호함 때문에 한차례 붓을 꺾었던 터였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이 어머니라 부르는 강 강가(=갠지스)와 동일시되고, 때로는 시바신 그 자체로도 받아들여진다. 인구 100만의 도시가 그 자체로 신화에 재현이 되었고, 만신 萬神이 모여 있는 신들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신화는 어느 샌가 현실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수많은 사상가들은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강가에서 그의 깨달음을 검증받았다. 떠돌던 이들이 강가의 신성함을 넘어 성자가 되었고, 일없는 여행자들 또한 바람처럼 흘러들어 불타는 장작더미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풀리지 않는 그 해답을 뒤로한 채, 이제 당신이 바라나시를 바라볼 차례다. 바라나시는 무엇인가?
4.스리나가르 Srinagar
인간에 의해 지옥이 되어버린 낙원. 이 한마디의 말보다 더 스리나가르와 카슈미르 일대를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눈 덮인 설산과 그 순백마저 담아버린 새파란 호수. 길게 이어진 수로, 날렵하게 호수 면을 스치듯 지나가는 인도식 곤돌라 시카라 Sikara의 행렬.
시카라 속에 노를 젖는 사람들의 찌든 얼굴, 도로 곳곳에 착검을 한 채 눈을 부라리는 인도군. 야간의 통행금지, 불법 연행에 의한 약 1만 여명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실종자들. 인도의 신문지상을 매일같이 장식하는 죽음, 죽음.
인간은 얼마나 무지해야 할까?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 가치는 인간에게 악마의 탈을 씌웠다. 악마의 이름은 바로 종교분쟁이다. 1948년 인도 독립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리한 분쟁은 1990년대 전체를 피로 물들게 했다. 특히 1995년 트레킹을 즐기던 영국인 여행자 납치 살해사건은 한때 지상낙원의 대명사이던 이곳의 관광업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21세기의 벽두, 다시금 화해의 바람이 부는가 싶었지만, 그마저도 다시 교착상태. 인도군의 물리적 힘에 의해 평화는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 어두웠던 시절, 스리나가르의 최대 고객은 군대 경험 탓에 살벌한 풍경이 오히려 익숙한 이스라엘인과 한국인 여행자의 독무대였다.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행을 적극 권하기에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인도-네팔 프렌즈≫는 공식적으로 스리나가르와 카슈미르 여행 자제를 권고한다.
5.레 Leh
티베트 고원과 이어지는 라다크 지방 최대의 도시로 해발 3,520m의 높이를 자랑한다.
원래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티베트에 속해 있었는데, 10세기경, 라다크 Ladakh 왕조가 독립하며 티베트의 제후국으로 발전했다. 티베트 고원과 인도 대륙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때 남부 실크로드의 중간기지로 대상들이 북적대는 번화한 곳이었다고.
레가 속한 라다크의 80% 가량이 해발 3,000m이상의 고원지대로, 잠시 머물다 가는 대상들을 제외하고는 외계와의 문화적 교류가 전혀 없던 지역이었다.
레가 오랜 침묵을 깨고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건, 라다크 일대의 모계사회 전통에 관심을 가진 서구의 미디어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라다크는 이른바 개방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모든 것이 그렇듯, 개방과 개발 과정이 라다크와 레에 긍정적인 의미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꽤 많은 여행자들에게 마지막 샹그릴라, 오지중의 오지라는 상상을 품게 했던 레는 소박했던 불편함이 영악한 편리함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레는 여름철 인도 여행의 핵심적인 위치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파랗다는 말로는 부족한 압도적인 청색의 하늘. 일필휘지로 휘갈긴 것 같은 세찬 산맥의 웅장함, 고유문화를 지키고 있는 자그마한 불교사원의 평화로운 모습은 레를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6.뭄바이 Mumbai
누군들 알았을까? 벌레들이 우글대던 습지가 오늘날 인도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원래 포르투갈령이었던 오늘날의 뭄바이 일대는 1661년 포르투갈의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 2세에게 혼수로 들고 가 버리며 영국령으로 변신한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영국은 당시 기준으로는 불모지에 불과했던 땅을 훗날의 세계적인 항구로 변신시키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특히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더 이상 아프리카의 희망봉으로 우회하지 않아도 되자 뭄바이의 항구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배세력에 따라 도시의 위상은 늘 바뀌기 마련이지만, 뭄바이만큼은 예외였다. 영국식민지시절이나 지금이나 뭄바이는 인도 제 1의 경제도시로서의 황금빛 찬사와 엄청난 빈부격차의 굴레로 떨어진 빈민들의 한숨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
오늘도 인도 농촌의 누군가는 뭄바이 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가난으로부터 카스트의 사슬로부터 탈출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일까? 인도인들은 뭄바이를 사쁘네 까 사하르. 즉 꿈의 도시라고 부르곤 한다. 비록 많은 이들에게 슬프디. 슬픈 꿈일지언정......
7.티루바난다뿌람
인도의 최남단이 깐야꾸마리 Kanyakumari에서 북쪽으로 겨우 87㎞, 티루바난다뿌람은 인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대도시로 께랄라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도시 자체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으로 18세기 트라방코르 왕조의 수도로 건설되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트라방코르 왕조는 일부 마하라자가 힌두교에 대한 믿음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을 사원에 노예로 기증해버려, 대신들이 사원에 몸값(?)을 주고 왕을 되찾아오거나, 나라 전체를 봉헌해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던 왕조였다고.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며 마하라자들이 근대교육기관 설립 등 국민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지식인 배출에 힘써, 다른 지역과 다른 께랄라만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이런 토대를 바탕으로 께랄라는 1957년 세계 최초로 투표에 의해 공산당이 집권, 지방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께랄라 주는 오늘날까지 인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고 복지 정책이 완비된 지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흑..재미없으면 말구.
환타
인도 100배 즐기기 03-04(버전 1.0), 06-07(버전 2.0)에 이어 인도 네팔 프렌즈 10-11(버전 3.0)이라는 이름의 환타와 그 일당들의 인도 네팔 가이드북 전면 개정판을 내게 되어 개인적으로 정말 감개무량-상투적이지만, 이 이상의 단어가 생각이 안난다.-하다.
이 책으로 한국 가이드북은 전과 후가 나뉠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지도는 그간 중국, 상하이, 홍콩, 베이징 가이드북의 경험을 되살려 95%교체했고, 정확도에 있어서도, 저자의 덤벙거림과 GPS오류로 인해 좌우가 헷갈리는 몇몇 지역을 빼고는 GPS에 의한 실측 구조로 바꼈다. 지도는 이번 버전의 가장 핵심적인 업데이트 포인트중 하나다.
본문, 특히 볼거리는 인문적,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는 방향으로 거의 새로썼다. 단순하게 몇년도에 누가 지었다는 식의 단편적인 내용은 제공하기 않기위해 애를 썼다. 실용서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인도 문화, 역사, 인문 입문서가 될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실용정보, 특히 식당은 기존의 3~4줄에서 벗어나 식당의 분위기를 묘사할 수 있도록 애썼으며, 무엇보다 각 지방의 로컬요리 식당을 찾아내는데 집중했다.
초판당시만해도 인도 음식을 먹게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인도 요리에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판단하에 탄두리치킨, 알루고비, 빨락 빠니르같은 표준 요리 밖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다.
쩝, 거의 책을 새로 쓴 셈이다.
마녀
환타가 실컫 책자랑을 했으니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책쓰다 인도에서 이 세상을 떠날뻔했다.
이쯤되면 인도에 몸서리가 쳐져야 하겠지만, 팔자인지, 전생인지 인도는
그럼에도 그립다.
아마 이 그리움이 책을 만드는 동력이 되는것이라고 생각된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인도는 정말 많이 변하고 있다.
인도는 결코 변치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던게 불과 얼마전인데
이제는 너무 빨라라며 비명을 질러야 할 지경이다.
여행자로서는 아쉽고, 한 인간으로서는 어쨌건 인도가 빈곤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모습이 대견하다.
우리처럼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이 책이 인도 조사에 참여하는 마지막 책이 될 전망이다.
공동 저자로서는 함께 하지만, 인도땅은 다시는 못밟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늘 씩씩하다.
이 책의 모든 지도는 내 작품이다. ^^ v
비자 발급
여권이 해외에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이라면 비자는 방문을 원하는 국가에서 입국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가서’다. 경우에 따라 정부간 협정에 의해 비자없이 방문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인도는 여기서 예외. 비자를 받지 않으면 인도에 갈 수 없다.
비자의 종류
목적에 따라 관광, 사업, 유학비자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출장등 사업이나, 유학을 갈게 아닌 단순 관광목적이라면 그저 관광(T)비자 하나만 알아두면 된다.
관광비자의 종류
기한에 따라 3개월~5년까지의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다. 2009년까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적용되던 비자규정은 2010년을 기준으로 강화되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대충 신청을 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3개월 비자
기간이 3개월일 비자로 여행 비자의 가장 기본형이다. 비자 기간내 인도 입국 횟수에 따라 한번의 입출국만 가능한 싱글, 두번의 입출국이 가능한 더블, 그리고 세번의 입출국이 가능한 트리플로 분류된다.
인도만 여행할 예정이라면 싱글, 인도-네팔-인도의 순으로 여행하고자 한다면 더블비자가 필요하다.
▶3개월 초과~5년
대한민국 주재 인도대사관 영사와의 인터뷰가 필요하며, 거부 가능성도 있다.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6개월, 1년, 5년 비자가 있다.
6개월 비자의 경우 더블, 트리플이 가능하며, 1년 이상 비자의 경우는 기간동안 회수에 관계없이 인도를 방문할 수 있는 멀티플 비자가 있다.
영문 여행 일정표
비자 규정이 엄격해지며, 더블, 트리플, 멀티플 신청자의 경우 영문으로 된 여행 일정표를 제출해야 한다.
영문 여행일정표에는 여행기간내의 머물 날짜, 도시, 관광예정지, 투숙 예정 호텔을 기입해야 한다. 만약 여행 예정일이 30일이라면 1일~30일까지 작성되야 한다.
영문 여행일정표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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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
City |
Visiting Spot |
Ho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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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
Inchon to New Delhi by Flight |
New Delhi Int/l Air Port |
Spot Ho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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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
New Delhi |
Red Fort, Chandni Chowk, National Museum, India Gate |
Spot Ho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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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New Delhi to Agra by Train |
Taj Mahal, Agra Fort, Sikandra |
Shanti G.H |
장기 인도여행
비자규정이 강화된 후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케이스다. 1년 이상 여행비자의 경우 인도 방문시 한번에 최대 체류할 수 있는 날짜는 90일이내이며, 인도밖으로 출국했을 경우 60일 이상 인도 밖에서 체류해야 인도에 재입국이 가능하다.
즉 5년짜리 비자라해도 기간안에 무한정 인도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인도에 가장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은 6개월 더블/트리플 비자를 발급 받는 길이다. 6개월 더블/트리플 비자의 경우 2010년 5월 규정이 완화되며 60일 해외 체류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인도만을 꾸준히 팔 예정이라면 입국 90일 이전에 주변국을 잠깐 들어갔다, 재입국하면 된다는 이야기.
관광비자 발급 서류
6개월 이상의 기간이 남은 여권 원본
(발급받은지 6개월 이내의 새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면, 반드시 구 여권의 여권번호를 비자 신청서에 기재해야한다.)
비자신청서
비자 대금에 대한 무통장 입금증 원본
여권 사진 2매
영문 여행 일정표(더블/트리플/멀티플 비자 신청자에 한함)
E-Ticket(더블/트리플/멀티플 비자 신청자에 한함)
비자 요금
3~6개월 관광비자 74,570원
1년 관광비자 114,570원
5년 관광비자 219570원
비자의 신청
비자 신청법은 크게 두가지. 인터넷과 택배사를 이용한 비 방문 접수방법과 인도 비자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갖는 아웃소싱 업체인 티티서비스 코리아를 방문해 접수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비 방문 접수는 영사 인터뷰가 필요없는, 즉 3개월 관광비자의 경우만 해당되며, 영사 인터뷰가 필요한 비자를 받는 경우는 이용할 수 없다.
▶비 방문 접수
①http://goo.gl/WTvp 에 들어가 온라인상에서 주소및 인도비자 신청서를 기입한다. 신청과정이 끝나면 자동 작성된 pdf파일이 사용하던 PC에 저장된다.
②자동 작성된 PDF파일을 출력한 후, 첫번째 페이지에 여권용 사진 2매를 붙인다.
③받고자 하는 비자에 해당되는 비자요금을 송금하고 무통장 입금증 원본을 보관한다.(비자요금 안내는 상단 ‘비자요금’참고)
입급 계좌: 외환은행 630-005805-964(티티서비스 코리아 (주))
입금증을 출력하기 곤란한 ATM송금, 폰뱅킹의 이용과 시티은행, HSBC은행에서 송금한 입금증은 인정되지 않는다. 잘못하면 환불관련 문제로 몇날 몇일을 싸울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④역시 인도 비자업무를 처리하는 독점적 위치의 택배사인 일양택배(1588-0002)에 전화해 인도비자 보낼거라고 말하고 집주소를 알려준다.
⑤대부분 택배 기사는 방문 시간을 알려준다. 이제 여권, 사진 두장이 붙은 인도비자 신청서, 무통장 입금증 원본과 택배비 6.000원(더블/트리플 비자 신청자라면 영문 여행 일정표 포함)을 들고 기다리다, 기사가 오면 모두 주면 된다.
⑥몇일 후 다시 비자를 배달해준다. 다시 6.000원을 낸다.
▶방문 접수
①http://goo.gl/WTvp 에 들어가 온라인상에서 주소및 인도비자 신청서를 기입하거나http://goo.gl/McA7 에 들어가 비자 신청 폼을 다운 받아 출력한 후, 수기로 작성한다.
②어떤 방법을 택하건 종이 출력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여권용 사진 2매를 붙인다.
③받고자 하는 비자에 해당되는 비자요금을 송금하고 무통장 입금증 원본을 보관한다.(비자요금 안내는 하단 참고)
입급 계좌: 외환은행 630-005805-964(티티서비스 코리아 (주))
입금증을 출력하기 곤란한 ATM송금, 폰뱅킹의 이용과 시티은행, HSBC은행에서 송금한 입금증은 인정되지 않는다. 잘못하면 환불관련 문제로 몇날 몇일을 싸울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④여권, 사진2장을 붙인 비자 신청서, 무통장 입금증 원본(더블/트리플 비자 신청자라면 영문 여행 일정표 포함)을 들고 인도 대사관 맞은 편에 있는 인도 비자 접수센터로 간다. http://goo.gl/9h67
data→█인도 비자 접수센터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6-1, 여선교회관 2층 티티서비스 코리아(주)
전화 (02)790-5672
영업 비자 접수 월~금 09:00~12:00, 13:00~15:00(15:00정각에 번호표를 들고 있는 사람까지 인정)/ 비자 수령 월~금 16:00~17:00
휴무 토, 일, 한국과 인도의 법정 공휴일
www.ttservices.co.kr
⑤안내 데스크에서 비자 신청서가 제대로 기입되었는지 검사 받는다.
⑥번호표를 뽑고 대기한다.
⑦번호를 호출하면 창구로 가서 서류를 접수하고, 접수증을 받는다. 접수증에는 여권을 수령하기 위한 재방문 날짜가 지정되어 있다.
⑧재방문 날짜에 맞춰 인도 비자 접수센터에 가서 인도비자가 붙어있는 여권을 수령한다.
⑨가끔 실수가 발생한다. 비자에 적힌 영문이름(여권과 동일), 비자 종류, 기간등이 제대로 찍혀 있는지 확인한다. 이거 제대로 확인안하면 인도 못갈수도 있다.
그래도 종종 길이나 기차안, 관광지 같은데서 사진 찍어 달라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도 해변에서 한명에게 모래찜질을 해주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나를 보더니 한방 찍어달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동의를 표하자.
갑자기 친구를 묻어놓은 모래를 마구 파헤치더니 이런 자세를 만들어버렸다.
한국에서라면 아마 깔린 아저씨가 깜짝 놀랐을수도 있지만,
뭐 늘 그랬다는 듯, 배에 눌리는 하중에도 불구하고 나름 편안한 웃을 짓는다.
처음 인도 가서 깜짝 놀라는 것중에 하나가
인도에서는 남자들끼리 손잡고 다닌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이게 특정 성 취향으로 보이는지라 많은 여행자들이 의문을 품는다.
통계적으로 인도는 극심한 남처지역지라
실제로 성적 소수자들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손을 잡은 모두가 그런건 아니다.
원채 접촉을 싫어하는 문화인지라.
(왜 합장을 하는 인사가 발달했냐면, 서로 카스트를 모르는 상황에서 접촉하기 싫은거다.
자기가 오염될지도 모르니까)
한번 접촉이 허용되도 되는 관계가 되면 미친듯이 쪼물딱거린다.
남녀가 유별하다보니 동성간 쪼물딱 거림이 더 발달했다고 해야하나?
뭐 우리도 언니들끼린 손 잡고 다니잖냐?
서양아이들은 한국와서 그런거 보면 놀란다고 하더만.
그르게,
어렸을때는 남자들끼리 어깨동무 새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하면서 놀았는데,
한국의 이상하게 강조되는 남성성이 문제인듯 싶기도 하고.
간혹, 아주 간혹
친구놈의 손을 잡고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어쨋건 쟈네들은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고,
그 자유로움이 나는 부럽다.
특히 기차역은 콘센트만 있으면 충전중.
그곳이 기차역 홀이건, 웨이팅 룸이건 가리지 않는다.
인도를 오래 다닌거와는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외국인인 나는
눈알을 두리번 거리며 저들의 충전 행렬에 동참한다.
잠시 딴짓을 하다가도 어느새 화들짝 놀라 충전중인 전화를 확인하는거 보면
은근히 웃긴다.
여행중에 은근히 소심한 성격탓에
초대형 사고가 없긴 했지만,
반면, 인도여행 15년차의 간지따위는 나지 않는다.
이번에 가면 아이폰을 저리 충전해야 하는건가?
Rs30000루피 짜리 기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찌 감시해야 할런지..
지금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이팟 괜히 판건가 싶기도 하네.
2010년 7월 1일 부로 다시 올랐습니다.
아주 가이드북 쓰는 사람들을 죽일려고 작정을 했나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론리 플래닛 한글판, 세간다 인도, 인도 100배와는 모두 30%의 요금 차이가
발생합니다.
변경된 택시 요금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벌써 1년 반이나 지났군요.
어쩌다 보니 인도 관광청에서 시행하는 팸투어에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팸투어. ㄷ ㄷ ㄷ ㄷ 넹 특정 여행관련 정부 부처나 항공사등지에서 시행하는 주로 미디어나 여행사 관계자들을 데리고 공짜여행 시켜주는 겁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죠. 미디어는 기사, 여행사는 해당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뭐 그런 조건이 붙긴합니다.
신문의 경우, 소개되는 모든 해외여행란이 이런 팸투어로 만들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기사가 여행정보라기보다는 사진으로 도배되고
두루뭉술한것도 그때문이죠. 짜여진 일정대로 쉽게 말해 고급 패키지에 가까운 형식이라 스케치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 대상으로 쓰여진 기사기도 하죠.
제가 탄 특별 열차는 파리니르반 익스프레스라고 하는 일종의 불교성지 특별 열차입니다. 일종의 절약형 궁전열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차 외관은 뭐 평범합니다. 인도의 다른 기차와 별반 다를게 없죠.
기차의 출발역은 델리 삽다르정 기차역입니다. 저도 이런데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특별열차 받는다고 나름 외관은 신경을 써놓긴 했는데, 가는 길이 장난 아니더군요.
인도를 처음 가보는 기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런 모습보면 내 나라도 아닌데 저는 또 왜 그리 민망해지는지.....
아이쿠 기차입구에는 잘 차려입으신 아저씨가 서 있습니다.
사실 인도가 아니었다면 예쁜 언니가 서 있었을 확율이 더 높았겠죠.
역시 인도는 남자의(응? --;;) 나랍니다.
복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는 기차와는 다른 컴파트먼트, 즉 독립 객실식입니다.
중국기차 침대칸과 좀 비슷한 모습이죠. 문도 안에서 잠글수 있습니다.
커텐과 바닥 카페트(?)의 재질은 그닥입니다.
객실의 모습입니다.
제가 탄 칸의 경우는 뽑기운이 좋아서 한 컴파트먼트에 이렇게 두개의 침대만 있었습니다만,
이런 배정은 한대뿐이었구요. 다른 칸은 2개의 침대가 마주보는 즉 한 컴파트먼트에 4명이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룸메이트가 스님이이었는데, 지루한 기차여행도중 훌라에 심취하셔서 늘 딴방가서 노셨고 저는 주로
언니들(거기서도 언니들이랑만 놀았습니다. 남노소 싫어요.)방에 가거나, 언니들을 제 방으로 약취유인(응? --;) 하거나
혼자 사진정리를 했습니다. ㅋㅋ
배식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각 방으로 배달해주는데요. 뭐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타보신분은 겪으셨겠지만 베지와 논베지 둘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습니다.
닭고기를 못먹는 관계로(알러지 나요. 그리고 인도가면 어쩔수 없는 베지테리안이 되죠. 뭐 한국에서의 식성도
베지에 가까운데 내 살은 뭐냐구요!) 한국인 일행중 베지테리안은 저 뿐이었습니다.(응? 그렇드라구요 ^^;;)
기차 타자마자 준 일종의 웰컴 간식입니다.
샌드위치, 빠니르 파코라 2쪽, 그리고 스위트가 나오더군요.
다들 스위트를 못먹어서 스위틑 거의 다 제 몫이 되었었습니다.
본 차이나 접시에 음식이 담겨나온다는 게 인도에서는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메인은 이렇게 나옵니다.
인도식과 중식으로 나뉘는데 이건 중식입니다.
사실 저는 애매한 중식보다는 인도식이 훨씬 더 입에 맞더군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반대였지만요.
이날은 밥을 남기고, 컵라면을 하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식기라도 제대로 정돈해서 찍었어야 하는데, 음식을 보면 눈이 뒤집어지는 성격인지라..ㄷ ㄷ ㄷ ㄷ
식당차 내부입니다. 생각외로 깨끗해서 놀랐습니다.
이른 아침 모닝티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프레스가 좋은 점은 이런데를 마구마구마구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제가 이 기차에서 가장 놀란 설비는 이겁니다.
샤워실이 있고, 무엇보다 제트 샤워 시스템.
한국의 모텔에나 있다는(아닌가? --;;) 레버를 돌리면 사방에서 물이 촤아아아아악 나오는 그겁니다.
이걸 인도에서, 그것도 기차에서 보다니...ㄷ ㄷ ㄷ ㄷ ㄷ
수압도 제법 괜찮았고, 온수도 잘 나왔습니다.
문제는 인도물 특유의 석회질이 샤워기 구멍을 군데 군데 막아놨더군요.
물이 이 모양이라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샤워물을 정수할수도 없구요.)
기차에서 하차할때는 쿨리 사마께서 저렇게 짐을 챙겨주십니다.
숙박은 기차반, 호텔 반이었는데요. 호텔에서 자는 날은 늘 저렇게 챙기더군요.
저 짐은 호텔로 배달됩니다.
아무래도 저는 배낭여행자 출신이라 이게 더 불편합니다.
대략 25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의 가방을 호텔 로비에 풀어놓고 그걸 찾는 일도 보통이 아니거든요.
기차에서 내리면 늘 무장 경관이 대동합니다.
맨 처음에는 미디어들이라 나름 보호한다고 하는줄 알았는데, 이 기차에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더군요.
VIP대접 받는다고 분명 좋아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리고 원채 위험하기로 유명한 비하르라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기차역 등지에서 통로 확보한다고 몽둥이로 인도인들 때려가며 길 터주는건 심하더군요.
여기는 가야역입니다.
가야역을 떠날때는 아마 밤이었을겁니다.
가야역 가보신분들 아시지만, 역 플랫폼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잡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이 외국인 프레스들에게 부끄러울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단잠자는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단잠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 프레스들에게 살금살금 걸어달라고 요청하는 나라가
저는 올바른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뭐, 물론 가카 2년 사이 한국도 인도 수준이 되었으니 할말이 없지만요.
여행 내내 불편한 VIP서비스였습니다.
기차안이건, 호텔 안이건 밤은 늘 이 친구와 함께. ㄷ ㄷ ㄷ ㄷ
젝아 인도에서 술사기 힘들다고 델리에서 무조건 킹피셔 10박스, 양주 한박스 사자고 했으나..ㄷ ㄷ ㄷ ㄷ
결국 조언도 제가하고,(물론 묵살당하고 흑흑)
술사러도 제가 다녔습니다.
동네마다 박혀있는 술집을 아는 사람이 저 밖에 없었으니까요. ㄷ ㄷ ㄷ 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