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야나에 악마로 등장하는 라바나의 이미지중에 쥐와 겹치는게 없나 좀 찾아봤는데, ㅎㅎㅎ 사자의 이미지더라구요.
뭐 꽤나 많은 함의를 담고 싶었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맹숭맹숭했던 글입니다.
이 정도의 장치는 괜찮은가봅니다. 신문사 담당 주간님께서 칭찬을 날려주시더군요
1만 단위의 집회도 쉽지 않던 상황에서 전국 100만의 인파가 거리로 나왔다. 1987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국회의원이 집회 현장에서 연행되었다. 1987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국회의원이 폭행을 당했다. 1982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6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촛불 들고 평화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이야기좀 들어달라고 우리 이야기좀 들어달라고 그렇게 근 60일에 거쳐 50회 이상의 집회동안 청와대에 외쳤다. 듣겠다고 했다. 고치겠다고 했다 두번이나 사과를 했다.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린다고했다. 당신은 사과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과는 앞으로 그리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무었이 변했는가? 변한 것이 있다면 사과를 계기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약간 오르자 우리는 국민에서 폭도가 되었고 우리는 시민에서 과격 폭력세력이 되었다. 근 60일이 가까워진다. 촛불시위가 처음 어찌 시작해서 어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라. 최대 100만의 사람들이 거의 매일 같이 모여 요구를 했다. 들어달라 부탁을 했다.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외쳤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시위대 대표 한두사람 만나 이야기를 듣는 척 했어야 한다. 사회 원로라는 지고지순, 높은 분들만 만나서 자기이야기만 하다 그는 모든 것을 강행했다. 4.19, 6.10 모두 20일간에 승부가 갈렸다. 2008년 거의 60일째다. 과거와 비교해서 시민들은 놀랄만큼 자제를 발휘하고 있다. 제발 지금이라도 재협상을 실시하라. 고시를 철회하라. 미국이 아닌 국민의 말을 들어라. 여론에 귀를 귀울여 달라. 제발 정직하게 살아라 국민들은 이명박 회사의 직원이 아닌 주권자다. 우리의 요구는 분노의 수위가 점점 높아가는 지금도 이처럼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세상 그 어떤 정권도 국민을 이긴 정권은 없었다. 국민을 이길려는 정권의 말로는 언제나 똑 같았다. 이명박이 천수를 누릴수 있기를 지금까지 국민으로서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있는 나는 간절히 원한다. |
순수, 그래 쉽게 생각해보자.
애초 여고생의 행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당신들 말대로 순수했다 치자.
그때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뭐라 했는지 먼저 기억해보자.
유언비어, 괴담, 배후가 문제였다.
그들에게 대중은 무지하고 쉽게 혹세무민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살뜰한
사상 통제를 벗어나면 안되는 그저 무지랭이일뿐이었다.
실수, 그래 쉽게 생각해보자.
정부는 두 번의 끝장 기자회견마저 열었지만, 수습이 되지 않았다
괴담이 원인이 아니라 애초에 졸속협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보까지 해석하는 촌극을 벌이고 나서야, 미국내 사료 강화 조치가
실은 강화가 아닌 약화이거나 현상유지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협상을 마친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나라들이 20개월, 혹은 30개월 이하의 살코기만을 받아들인다는
인터넷 5분만 뒤지면 나오는 증거에도 그들은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했다.
그들에게 대중은 그저 잠깐 속이면 넘어가주는,
눈앞에 손바닥을 대면 하늘도 바라보지 못하는 바보 천치였을 뿐이다.
사과, 그래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첫 번째 사과가 있고, 얼마 안 있어 경찰에 머리를 짓밟히는 서울대생 동영상이, 경찰에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는 애국소녀 사진이 등장했다. 겨우 몇일이 지났을 뿐이다.
두 번째 사과는 조금 더 극적이었다. 감성라인을 따라 신파조의 문장이 흘렀다. 국민들은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두 번째 사과 이후 몇일 안가, 물대포가 재등장하고, 현역 국회의원이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연행되었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들에게 대중은 그저 똥개일 뿐이었다.
오다리 한 개와 몽둥이. 두 개만 있으면 언제든 좌지우지 할수 있는 병신들의 집합일 뿐이다.
PD수첩, 그래 따져보자.
PD수첩으로 인해, 촛불 시위의 동력이 발생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처음부터 괴담만을 주장하다 여론이 나빠지자
두 번에 걸친 거짓 사과쇼를 했고, 다시 여론이 좀 나아지는 듯하자, 다시 PD수첩 조작을 내세우며 괴담설을 재 유포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피디수첩이 제기했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현재도 유의미하다.
그간 조중동은 정부는 얼마나 피디수첩의 내용을 분석해가며 흠 찾아내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하나가 나왔다.(그 난리 부르스중 딱 하나다.)
디씨 인사이드에서 처음 주장된 이른바 번역문제다.
그래 피디수첩의 잘못이라 치자.
하지만 3%의 잘못된 번역 하나만으로 그들이 말한 97%의 진실을 가릴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시점에서 왜 번역자는 양심선언을 해야 했을까?
그녀가 양심선언을 할 타이밍은 많았다.
그런데 이명박의 공안정국 조성과 함께 정말 적절한 타이밍이 터져주고 있다.
그 전에 일개방송 프로그램도 아닌
대한민국 현 정부의 현재 모습은 대체 무엇인가?
사과하고 물대포 쏘고,
고개 숙인 뒤 국회의원을 폭행하고(국회의원이 맞는 이 판국에 당신이나 나 같은 무지랭이는
어떤 대접을 받을 것 같나? 단지 시위를 하기위해 거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문서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고, 도장조차 안 찍힌 협의문을 흔들어대고, 본질적 변화는 없음에도
끝났다 끝났다를 외치는 정부보다 피디 수첩이 더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살인자가 말실수 한 사람에게 죄를 추궁하고 있다.
이제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은 바른 곳을 향해야 한다.
결국 본질적으로 바뀐것은 없다.
순수했다던 여고생의 최초 촛불집회는 그들에게 괴담의 결과였고
정당 방위에 가까운 물리력을 행사하는 시위대에게는 그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랜다
순수함을 잃었다고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못했다는 분은 다시 괴담을 주워섬기고 있다.
그럼 늬들이 말하는 그 순수의 정체는 대체 뭐냐?
니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값싸고 좋은 소고기를 먹게되 행복해하는 그 순수를 바란것은 아닐까?
사과 또한 공염불이었다.
공염불 몇 번하면 이제 학습효과 생겨야 한다
대운하?
촛불이 밀리는 순간 재 추진된다.
돈냄새 잘맞는 증권가에서 왜 대운하 관련주가 뛰는지 정확히 간파하자.
소고기?
추가협상도 아닌 회의하고 왔다.
쉽게 말해 외교, 군사와 함께 국가 존립의 가장 중대한 기반중 하나인
통관-검역에 대한 권리가 미국에 위탁되었거나, 최소한 민영화 되었다.
우리는 변한 것 없는 현실에서,
오히려 기만을 당하면서,
그래도 좀 나아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신이 없다.
경찰폭력이 난무하는, 현직 의원마저 연행당할 정도로 신체권이 위협받는 나라에서 살 자신이 없다.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이 사소하고 가벼워 보이는 자유의 무게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그걸 밀쳐내 20년 전으로 회귀하려는 저들을 참을 수가 없다.
무신불립 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믿음이 없는 정부는 서지 못한다.
이미 당신이 촛불시위를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최소한 현 정부는 국민에게 믿음을 잃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이미 소고기 정국을 거치며 본 사회적 손실이 3조를 넘었댄다
김종훈이 추가협상 위장극을 하고 와서그랬다. 협상을 파기하면 1조 1천억 가량의 무역손실을 본다고
뉴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우리는 협상 파기 비용 3배의 사회적 손실을 감수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고,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 동안 그 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일 것이다.
믿음을 잃은 정부아래, 이제는 우리가 고를건은 두가지 뿐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힘으로 저들을 끌어낼 것인가?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다.
그래요
부끄러움입니다.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너희 기성세대들의 투표실패를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냐고 외칠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단지 민주세력에 투표 한번 해주면서 공화국의 민주시민으로써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책임을 방기한것은 아닌지.....
저는 91학번입니다.
1991년 4월 26일, 동기인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전경에게 맞아죽을때 같은 1학년으로서
불타는 91년의 봄과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서울에 근 100만이 모여 시위를 했지만,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외국어 대학교에서 벌어진 정원식 신임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계란투척 사건으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며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그 패배로 인한 패배주의는 지금까지 내 의식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신촌에서 종로로 이동하며 하늘을 보았습니다.
1991년 5월의 하늘은 수많은 죽음에 상관없이 한없이 맑기만했습니다.
아마 그때 나는 스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보여, 제 옆의 동기년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저 하늘을 보고 파랗다고 느낄수 있을까?
서른이 되었을때,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고
민주주의라는거 정말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저는 지금 거리로 나온, 자신있게 촛불을 든 10대들이 패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패배의 쓰라린 기억없이 승리의 기억만을 가지길 원합니다.
그게 기성세대로써 제가,
91학번으로 한때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한 인간으로서
승리의 감격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선사할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아픕니다.
지난 10년간, 누가 정권을 잡건 세상이 변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냉소(아! 세상은 더디 변합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했고, 우리마저 비웃고 냉소하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목을 멨습니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지금와서는 정말 사소하기만한 그의 '말실수'에 적극 변명하지 않고
인간관계 따진답시고,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지 않기위해 사람들의 욕설에 분위기상 살짝 동조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정부를 옹호하지 못하고
긍국적으로 이 꼴을 만든 제 자신이 밉고,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 10년,
정말 많이 변했었던거였습니다.
요 며칠 거리에서 시민들이 연행되고, 그저 자신의 건강권에 대한 소박한 요구들이
묵살되며 길바닥에 짓이겨 질때,
관계기관 대책회의니 특별감사니, 광고 제한이니 80년대에나 볼수 있던 공안 드라이브를 보며
적어도
적어도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 꼴은 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지난 10년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그 변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시간을 2007년 12월 18일로 되돌릴수는 없지만,
최소한 앞으로 닥칠 재앙을 막기위해,
거리로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