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7/13 [세계일보 080711]인도의 백만 촛불 디왈리 by 환타fanta
  2. 2008/06/29 우리가 후퇴할 명분을 다오! by 환타fanta
  3. 2008/06/27 순수, 그래 쉽게 생각해보자. by 환타fanta
  4. 2008/06/23 2008년 6월 이 순간 이 땅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by 환타fanta (3)
  5. 2008/06/06 촛불 집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들 by 환타fanta (3)
  6. 2008/05/26 서른 중반, 거리에 서다. by 환타fanta (2)
촛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라마야나에 악마로 등장하는 라바나의 이미지중에 쥐와 겹치는게 없나 좀 찾아봤는데, ㅎㅎㅎ 사자의 이미지더라구요.
뭐 꽤나 많은 함의를 담고 싶었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맹숭맹숭했던 글입니다.
이 정도의 장치는 괜찮은가봅니다. 신문사 담당 주간님께서 칭찬을 날려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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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단위의 집회도 쉽지 않던 상황에서
전국 100만의 인파가 거리로 나왔다.
1987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국회의원이 집회 현장에서 연행되었다.
1987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국회의원이 폭행을 당했다.
1982년 이후 처음이란다.
정확히 26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촛불 들고 평화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이야기좀 들어달라고
우리 이야기좀 들어달라고
그렇게 근 60일에 거쳐
50회 이상의 집회동안 청와대에 외쳤다.

듣겠다고 했다.
고치겠다고 했다
두번이나 사과를 했다.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린다고했다.

당신은 사과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과는 앞으로 그리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무었이 변했는가?
변한 것이 있다면 사과를 계기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약간 오르자

우리는 국민에서 폭도가 되었고
우리는 시민에서 과격 폭력세력이 되었다.

근 60일이 가까워진다.
촛불시위가 처음 어찌 시작해서 어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라.
최대 100만의 사람들이 거의 매일 같이 모여
요구를 했다.
들어달라 부탁을 했다.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외쳤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시위대 대표 한두사람 만나 이야기를 듣는 척 했어야 한다.
사회 원로라는 지고지순, 높은 분들만 만나서 자기이야기만 하다
그는 모든 것을 강행했다.

4.19, 6.10 모두 20일간에 승부가 갈렸다.
2008년 거의 60일째다.
과거와 비교해서 시민들은 놀랄만큼 자제를 발휘하고 있다.

제발 지금이라도 재협상을 실시하라.
고시를 철회하라.

미국이 아닌 국민의 말을 들어라.
여론에 귀를 귀울여 달라.

제발 정직하게 살아라
국민들은 이명박 회사의 직원이 아닌 주권자다.

우리의 요구는 분노의 수위가 점점 높아가는 지금도
이처럼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세상 그 어떤 정권도
국민을 이긴 정권은 없었다.
국민을 이길려는 정권의 말로는 언제나 똑 같았다.
이명박이 천수를 누릴수 있기를 지금까지 국민으로서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있는 나는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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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그래 쉽게 생각해보자.


애초 여고생의 행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당신들 말대로 순수했다 치자.
그때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뭐라 했는지 먼저 기억해보자.
유언비어, 괴담, 배후가 문제였다.


그들에게 대중은 무지하고 쉽게 혹세무민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살뜰한
사상 통제를 벗어나면 안되는 그저 무지랭이일뿐이었다.


실수, 그래 쉽게 생각해보자.


정부는 두 번의 끝장 기자회견마저 열었지만, 수습이 되지 않았다
괴담이 원인이 아니라 애초에 졸속협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보까지 해석하는 촌극을 벌이고 나서야, 미국내 사료 강화 조치가
실은 강화가 아닌 약화이거나 현상유지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협상을 마친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나라들이 20개월, 혹은 30개월 이하의 살코기만을 받아들인다는
인터넷 5분만 뒤지면 나오는 증거에도 그들은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했다.


그들에게 대중은 그저 잠깐 속이면 넘어가주는,

눈앞에 손바닥을 대면 하늘도 바라보지 못하는 바보 천치였을 뿐이다.


 

사과, 그래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첫 번째 사과가 있고, 얼마 안 있어 경찰에 머리를 짓밟히는 서울대생 동영상이, 경찰에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는 애국소녀 사진이 등장했다. 겨우 몇일이 지났을 뿐이다.
두 번째 사과는 조금 더 극적이었다. 감성라인을 따라 신파조의 문장이 흘렀다. 국민들은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두 번째 사과 이후 몇일 안가, 물대포가 재등장하고, 현역 국회의원이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연행되었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들에게 대중은 그저 똥개일 뿐이었다.

오다리 한 개와 몽둥이. 두 개만 있으면 언제든 좌지우지 할수 있는 병신들의 집합일 뿐이다.




PD수첩, 그래 따져보자.
PD수첩으로 인해, 촛불 시위의 동력이 발생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처음부터 괴담만을 주장하다 여론이 나빠지자
두 번에 걸친 거짓 사과쇼를 했고, 다시 여론이 좀 나아지는 듯하자, 다시 PD수첩 조작을 내세우며 괴담설을 재 유포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피디수첩이 제기했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현재도 유의미하다.
그간 조중동은 정부는 얼마나 피디수첩의 내용을 분석해가며 흠 찾아내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하나가 나왔다.(그 난리 부르스중 딱 하나다.)
디씨 인사이드에서 처음 주장된 이른바 번역문제다.


그래 피디수첩의 잘못이라 치자.
하지만 3%의 잘못된 번역 하나만으로 그들이 말한 97%의 진실을 가릴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시점에서 왜 번역자는 양심선언을 해야 했을까?

그녀가 양심선언을 할 타이밍은 많았다.

그런데 이명박의 공안정국 조성과 함께 정말 적절한 타이밍이 터져주고 있다.



그 전에 일개방송 프로그램도 아닌
대한민국 현 정부의 현재 모습은 대체 무엇인가?
사과하고 물대포 쏘고,
고개 숙인 뒤 국회의원을 폭행하고(국회의원이 맞는 이 판국에 당신이나 나 같은 무지랭이는
어떤 대접을 받을 것 같나? 단지 시위를 하기위해 거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문서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고, 도장조차 안 찍힌 협의문을 흔들어대고, 본질적 변화는 없음에도
끝났다 끝났다를 외치는 정부보다 피디 수첩이 더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살인자가 말실수 한 사람에게 죄를 추궁하고 있다.

이제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은 바른 곳을 향해야 한다.


결국 본질적으로 바뀐것은 없다.


순수했다던 여고생의 최초 촛불집회는 그들에게 괴담의 결과였고

정당 방위에 가까운 물리력을 행사하는 시위대에게는 그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랜다

순수함을 잃었다고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못했다는 분은 다시 괴담을 주워섬기고 있다.


그럼 늬들이 말하는 그 순수의 정체는 대체 뭐냐?

니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값싸고 좋은 소고기를 먹게되 행복해하는 그 순수를 바란것은 아닐까?



사과 또한 공염불이었다.
공염불 몇 번하면 이제 학습효과 생겨야 한다

대운하?
촛불이 밀리는 순간 재 추진된다.
돈냄새 잘맞는 증권가에서 왜 대운하 관련주가 뛰는지 정확히 간파하자.


소고기?
추가협상도 아닌 회의하고 왔다.
쉽게 말해 외교, 군사와 함께 국가 존립의 가장 중대한 기반중 하나인
통관-검역에 대한 권리가 미국에 위탁되었거나, 최소한 민영화 되었다.


우리는 변한 것 없는 현실에서,
오히려 기만을 당하면서,
그래도 좀 나아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신이 없다.
경찰폭력이 난무하는, 현직 의원마저 연행당할 정도로 신체권이 위협받는 나라에서 살 자신이 없다.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이 사소하고 가벼워 보이는 자유의 무게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그걸 밀쳐내 20년 전으로 회귀하려는 저들을 참을 수가 없다.


무신불립 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믿음이 없는 정부는 서지 못한다.
이미 당신이 촛불시위를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최소한 현 정부는 국민에게 믿음을 잃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이미 소고기 정국을 거치며 본 사회적 손실이 3조를 넘었댄다
김종훈이 추가협상 위장극을 하고 와서그랬다. 협상을 파기하면 1조 1천억 가량의 무역손실을 본다고
뉴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우리는 협상 파기 비용 3배의 사회적 손실을 감수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고,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 동안 그 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일 것이다.


믿음을 잃은 정부아래, 이제는 우리가 고를건은 두가지 뿐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힘으로 저들을 끌어낼 것인가?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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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울었습니다.

그것도 비오는 거리에서, 비닐 비옷 뒤집어 쓰고, 빗물떨어지는 처마아래 주저 앉아.....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기자완장 떼어내고 당장 거리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 추스리며,
눈 바깥에 한꺼풀 씌인 액체로 인해, 뷰파인더 속 피사체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행복하게 광화문의 이른 아침을 보았습니다.

밤새 소화기 분말에 맞아 실려가는 사람이 속출했던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장대같은 비속에서 해맑게 웃으며, 세상을, 시대를, 운명을, 조국의 미래를 낙관했습니다.

그간 저는 소고기 문제의 승리, 재협상 관철에만 매몰되었습니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돌진해 버리는 성격상의 문제였죠.
오늘 아침, 광장의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비워지더군요.

이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서 함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 순간, 다시 못올 이 순간이 너무나 아쉬워, 다시 눈물이 흐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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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이십 몇일의 밤을 나는 기억한다.
그날 나는 길동에서 술을 먹고, 친구와 함께 자주가는 야식집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당시 경제 부총리였던 임창용이 나와 IMF 구제금융이라는 걸 신청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뭘 알았나?

우리나라 이제 망하는거야?
글쎄 나도 몰라....

이런 대화만 오갔다.
그날은 꽤 추웠으며, 길동에서 성내동 집으로 오는 10여분의 거리를 종종걸음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두번째 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율은 달러당 2000원을 순식간에 넘었다.
환전을 미리 해놓은 나는 앉아서 두배쯤의 돈을 벌었다.
달러부족으로 인해 생긴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을 금을 내 놓았고
그 당시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오렌지족(돈 펑펑 쓰는 부잣집 자제를 당시에는 오렌지족이라고 했다.)도 상상못하는 행위.
해외여행객=매국노였다.

하지만 당장 인도를 가지 못하면 내 명에 못 죽을것 같던 나는....결국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을 거쳐 인도로 가는 비행기는 반쯤 비어있었고, 한국인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리고 6개월후 한국에 돌아왔다.
김포에서 내리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하고, 가정이 파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독기어린 표정으로 무언갈 향해 달려갈것 같던 그 표정은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로 인한 일격.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고
그 어떤 조직도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채 각개 전투만을 펼쳤다.
사람들은 수없이 잘렸지만,

우리는 고작, 나라나 체제가 아닌 정권만을 그것도 오차 범위내의 근소한 차로,
극우진영과 연합까지 해서야 바꿀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우리는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집단으로 대응해도 이길까 말까한 시스템과의 싸움에, 각개약진으로 돌파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80년대의 빛나는 유산인
집단 지성과 집단 해결의 방식을 모두 놓아버리고,
토플과 토익, 학점의 수렁.
모두가 경쟁자인 시대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만 행복할 수 있는(그러나 언제 뒤쳐질지 늘 걱정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촛불 집회의 그 어떤 모습보다.
우리가 세대와 계급적 이익을 뛰어넘어, 사회적 불의에 집단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능력을 부활시켰기에
이를 긍정한다.

시청으로 나가보라.
20대와 40대가, 전혀 모르는 그들이 단지 거리에 섰다는 동지애적 애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20대는 40대를 꼰대라 부르지 않으며
40재는 20대의 말을 경청한다.

아이를 보행기에 태우고 마실나오듯 집회를 나온 가족들을 보며.
애기 이쁘네요. 하면서 볼을 만져도
이제 괜찮은 세상이 오고 있다.

나같은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지나가면
수고한다는 모르는 사람들의 격려가 들려온다.

나와 그들은 실제 모르는 사람이고
과거의 경우를 봤을때, 모르는 사이에 서로 말을 거는 일은 '도를 믿으세요?' 나부랭이나 노방전도하는 기독교 조직을 빼고는 없었다.

밤새 김밥을 말아오는 사람들
양이 부족하면 알아서 김밥의 반을 꽉 깨물어 먹고, 남은 반을 옆사람에게 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 해방을 본다.


아파트값 짬짜미가 아닌 긍정적 의미의 공동체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굳건한 믿음이 지금 시청을 중심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나는 다시 세상을 긍정한다.
우리는 이제서야 IMF의 망령을 극복해 가고 있다.


시위는,
거리는,
우리가 책에서 배우는 그 어떤 것보다 엄청난 진리를 일깨운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운 이명박이여.
당신은 유다가 배신했기에 예수가 존재할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유다같은 존재다.

마이 배웠다. 이제 그만 내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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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부끄러움입니다.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너희 기성세대들의 투표실패를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냐고 외칠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단지 민주세력에 투표 한번 해주면서 공화국의 민주시민으로써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자위하며

책임을 방기한것은 아닌지.....


저는 91학번입니다.

1991년 4월 26일, 동기인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전경에게 맞아죽을때 같은 1학년으로서

불타는 91년의 봄과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서울에 근 100만이 모여 시위를 했지만,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외국어 대학교에서 벌어진 정원식 신임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계란투척 사건으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며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그 패배로 인한 패배주의는 지금까지 내 의식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신촌에서 종로로 이동하며 하늘을 보았습니다.

1991년 5월의 하늘은 수많은 죽음에 상관없이 한없이 맑기만했습니다.

아마 그때 나는 스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보여, 제 옆의 동기년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저 하늘을 보고 파랗다고 느낄수 있을까?

서른이 되었을때,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고

민주주의라는거 정말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저는 지금 거리로 나온, 자신있게 촛불을 든 10대들이 패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패배의 쓰라린 기억없이 승리의 기억만을 가지길 원합니다.


그게 기성세대로써 제가,

91학번으로 한때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한 인간으로서

승리의 감격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선사할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아픕니다.


지난 10년간, 누가 정권을 잡건 세상이 변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냉소(아! 세상은 더디 변합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했고, 우리마저 비웃고 냉소하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목을 멨습니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지금와서는 정말 사소하기만한 그의 '말실수'에 적극 변명하지 않고

인간관계 따진답시고,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지 않기위해 사람들의 욕설에 분위기상 살짝 동조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정부를 옹호하지 못하고

긍국적으로 이 꼴을 만든 제 자신이 밉고,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 10년,

정말 많이 변했었던거였습니다.


요 며칠 거리에서 시민들이 연행되고, 그저 자신의 건강권에 대한 소박한 요구들이

묵살되며 길바닥에 짓이겨 질때,


관계기관 대책회의니 특별감사니, 광고 제한이니 80년대에나 볼수 있던 공안 드라이브를 보며


적어도

적어도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 꼴은 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잊고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지난 10년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그 변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시간을 2007년 12월 18일로 되돌릴수는 없지만,

최소한 앞으로 닥칠 재앙을 막기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소고기 문제가 밀리면, 앞으로 더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더이상 대통령 선거를 못할지도 모르고,
박근혜파, 이명박파, 이회창파가 번갈아가며 수상놀이 할때
치다치다 가슴이 피멍이 들어,
돌아오지 않는 그날을 바라보며 분노와 눈물의 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와주세요.
청계천이든 시청이든,
시위대가 있는 곳에서 함께해 주세요.
불법이 싫으시면 인도를 따라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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