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즈마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9/30 따지마할 by 환타fanta
  2. 2009/03/10 [011019]KBS세계는 지금_인도의 외국인 이중요금제 by 환타fanta (4)
  3. 2009/03/01 아그라 개요 introduce agra by 환타fanta
  4. 2007/11/18 인도내 관광지 입장료 변동 by 환타fanta (2)

따지마할

인도 프렌즈 2011/09/30 17:17



따지마할을 조용히 관람하는 사람은 없다. 따지마할은 이래저래 시끄럽다. 

커플들이라면 대부분 이런 그림

'당신도 나를 위해, 내가 죽으면 이런걸 만들어 줄 수 있어?'

남성들의 반응은 반반이다.솔직한 성격의 남자라면 묵묵 부답. 

'당연하지! 이거뿐이야. 이보단 좀 커야지.'정도 말하는 남자라면 상당한 정치력의 소유자다.


독신인 여성들은 이 앞에서 주로 한탄을 한다.

'에휴 난 이런거 만들어줄 어떤 놈 없나?'

만약 그녀에게 흑심이 있다면 들이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 할 수 있는데……'라는 말 한마디면 우선 기본 점수는 따고 들어가지 않을까?


내가 아는 욕쟁이 친구중 한명은 따지마할에서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씨발새끼 만들어 놓고 졸라 뿌듯했겠네!'


늘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뭔갈 선물하고는 능력있는 남자라고 뻐기는 그 다운 말이었다.

아마 그가 이렇게 욕을 한 이유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인도로 날아온 탓이리라.    



1631년 7월 17일, 무굴의 5대 황제 샤 자한의 아내였던 뭄타즈 마할이 38살을 일기로 죽었다. 

스무살에 첫 아이를 가진이래 18년동안 무려 13명의 아이를 낳은 그녀는 결국,  14번째 아이인 가우하라 베굼 Gauhara Begum을 출산하는 과정에 죽고만다.

사실 황후로서의 삶은 겨우 4년째가 되던 해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18년동안 14명의 아이를 낳는 것도 좀 상식 밖이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뭄타즈 마할은 한 곳에 정착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무굴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과 달리 큰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전통이 없었다. 왕자들끼리 자유경쟁을 통해 가장 나은 아들(바꿔 말하면 아버지에게 가장 잘 보인)이 황위를 계승했다.

이러다 보니 왕자들은 전공을 세워야만 했고 끊임없이 병력을 이끌고 원정에 나서곤 했다. 


다정도 병인가 하노라라는 싯구는 아마 이 커플에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샤 자한은 원정을 할때조차 뭄타즈 마할과 동행했다. 


뭄타즈 마할의 임신 기간을 고려했을때, 그녀는 상당 기간동안 임부의 상태로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것도 그냥 여행이 아니라 전쟁터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그렇게 쌓은 공적으로 샤 자한은 황제가, 그녀는 황후의 자리에 올랐건만 겨우 4년 만에 죽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 

'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덤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에 대해 마치 철없는 황후 마마. 즉 마리 앙뜨와네뜨의 화신인것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옥중에 갇힌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했던  '내가 죽으면 도령님 선산에 묻어주오.'라는 유언과 더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뭄타즈의 집착은 회한에 가까웠다.


샤자한도 냉큼 그러마라고 약속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샤자한은 슬픔이 깊었던 나머지 뭄타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모두 세었다고 한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보다 한 살이 많아서 당시 서른 아홉이었다.


그의 백발설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정자왕(!) 샤 자한은 이후 단 한 명의 아이도 가지지 않는다. 

  

유능했던 꿀람(샤 자한의 왕자시절 이름)은 뭄타즈가 사망한 이후 변해버렸다. 제국의 통치보다는 제국의 영화를 바탕으로 심시티 Simcity에 몰두했다. 


뭄타즈가 죽고 바로 1년 후, 따지마할의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가 시작됐다는 말은 이미 설계를 비롯한 계획이 수립됐다는 이야기. 이건 다시말해 샤 자한은 뭄타즈가 죽자마자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의미다. 


연 인원 20만 명, 약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자재를 날랐다. 그러고도 22년이나 걸렸다.


설계는 이란 출신의 천재 건축가 우스타드 이샤 Ustad Isa(주1)가 맡았다. 우스타드 이샤는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따지마할에 그대로 투영했다. 





따지마할 아름다움의 핵심은 바로 완벽한 대칭구조, 돔과 아치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곡선미, 그리고 대리적 공예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Pietra Dura(인도에서는 빠르친 까리 Parchin Kari라고 부른다.)의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딸리아에서 전래된 피에트라 두라는 따지마할 장식의 핵심을 차지하며 결국 인도에서 만개한다. 피에트라 두라의 기법은 사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대리석 바탕위에 준보석이나 보석을 붙여만든 일종의 모자이크. 한국의 나전칠기와도 재료가 다를뿐 원리 자체는 같다. 




이렇게 지어진 따지마할은 빛의 예술을 선사받았다. 순백의 대리석 자체도 태양의 위치에 따라 흰색과 노랑색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여기에 보석 모자이크가 더해져 시간에 따라 다른 색감을 자랑하게 된 것. 


쳐다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달리 보이는 따지마할의 마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완공되던 날, 황제의 몸으로 독신을 지키며 뭄타즈만을 그렸던,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샤 자한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애정도 길이라면 길이었지만,  외길만을 달려온 샤 자한의 말년은 우울했다.    


샤 자한은 아그라를 온전히 뭄타즈만의 도시로 남기를 원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죽은 아그라는 더 이상 제국의 수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아그라에서 버틸수가 없었다. 


샤 자한은 아그라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수도를 델리로 천도한다.  


타지마할이 한참 지어지고 있을 때,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델리에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왕궁인 붉은 성,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자미 마스지드가 따지마할과 동시에 건설됐다. 


후일 건축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샤 자한은 어쩌면 아주 약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통치 포기와 심시티 놀이는 제국의 재정을 파탄 지경까지 몰고간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남은 생은 그저 그녀를 기념하기 위했음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샤 자한은 야무나 강 건너, 그러니까 따지마할 맞은 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따지마할과 똑같은 무덤 건설을 계획했다고 한다. 검은 따지마할은 바로 샤 자한 자신의 무덤이었다. 흑/백의 따지마할 사이에는 아치로 만든 다리가 연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검은 따지마할이 없는 이유는 샤 자한이 뭄타즈마할과의 사이에서 난 여섯번째 자식인 아우랑제브가 반란에 성공, 샤 자한을 강제로 폐위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은 큰형인 다라 시코만 편애한 아버지를 극도로 싫어해서 따지마할에서 겨우 2km 떨어진 아그라 성의 남동쪽 끝에 있는 작은 정자에 가둬버렸다. 샤 자한은 그 곳에서 부인의 무덤을 7년간 바라보다 쓸쓸하게 죽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죽은 후, 뭄타브 마할의 무덤 옆에 묻어줬다. 합장이라고 본다면 배려일테고, 무굴의 황제중 유일하게 무덤 더부살이중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아우랑제브를 끝까지 그를 경멸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건 이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대신 가장 시끄러운 무덤속에서 지금도 안식을 취하고는 있다. 아마 하루에도 수백번씩 '그럼 그 사람들이 여기 묻혀있는거야?'라는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부러움 가득한 여인네들의 한탄을 듣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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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
와!! 이번 인스펙션 마치고.......
인도랑 홍콩 디비디 구으면서(무려!!! 디비디 21장...이게 모두 이미지 파일 --;;)
예전에 했던(무려 2001년!!) KBS '세계는 지금' 출연분을 찾았습니다.
씨디로 구워놓은지 하도 오래되서 그런가.....외장 하드로 복사하는데 1시간이나 걸리더라는(용량은 얼마 안됨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시 보니 --;; 좀 쪽팔리긴 해도....좋군요...
이럴때도 있었다니....

이때만해도,
집에서 완전 내놓은 자식, 국제거지였는데....
방송에 나온다고 집안 노인네들 꽤나 뿌듯해 했다는.....

참고로 이 프로는 똠방님이 소개시켜줘서 하게 된겁니다.
그리고 이 솔찮은 알바 비용이 바로 인도 100배 즐기기 초판에 사용 되었었죠...ㅋㅋㅋ

마지막으로 저도 지금 리뷰하다 알았는데
거의 방송사고 수준의 실수가 있더군요.
처음 소개화면에 지도가 아프리카 지도라는....

물론 제 책임 아님다.
전 이때 알모라에서 녹음만 했을 뿐이예요....(국제전화요금..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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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
누구나 아는 도시, 인도를 상징하는 유물인 타즈마할이 있는 도시 아그라는 신기루 처럼 빛나는 타즈마할이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현재는 북부인도의 중추적인 공업도시로 그다지 매력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인도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방문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16~17세기까지 무굴제국의 수도로써 인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아그라는 1638년 샤쟈한이 새로운 도시 델리를 건설하면 수도로서의 지위를 델리에 넘겨주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도 현재는 파키스탄 땅인 라호르, 델리와 함께 무굴제국 시대의 가장 중요한 3개의 도시중 하나로써 그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아그라는 역시 타즈마할로만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델리로부터 24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지리적인 이점은 아그라를 델리-바이푸르와 함께 북부인도 여행의 트라이앵글로 만들어 놓았다.

 

아그라로 가는 길

유명한 관광지이자 교통의 요지답게, 수많은 버스와 기차들이 아그라를 연결하고 있다. 240Km정도의 거리인 델리에서는 수많은 버스들이 모든 등급으로 아그라를 연결하고 있는데 정부버스들은 카쉬미르 게이트쪽의 ISBT를 출발점으로 삼는다.(5시간 소요, 70루피)  델이 이외에도 자이푸르(6시간 소요, 93루피, 디럭스 112루피), 마투라(1시간 30분 소요, 21루피), 카쥬라호(12시간 소요, 120루피, 오전 5시 한 대!)등이 이드가 버스스탠드에서 출발한다. 디럭스버스의 경우는 아그라 역 근처에 있는 SHEETAL호텔 근처의 공터에서 출발한다. 푸쉬카르로 연결할 경우 푸쉬카르에서 12Km 떨어진 아즈메르로 가야 하는데, 이 것 역시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델리에서 기차로 연결할 경우는 선택의 폭이 더 많은데, 델리와 아그라를 단 두시간정도에 연결하는 초특급에서 5시간에 걸쳐 연결하는 일반 익스프레스까지 수많은 기차들이 두도시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카쥬라호에서 올 때는 쟌시역에서 아그라로 오게 되는데, 쟌시역 역시 델리로 가는 대부분의 기차들이 아그라역에서 정차하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너무 많아서 기차번호를 나열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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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환타fanta
달러 약세의 영향이 인도 입장료에까지 미치는 군요.

현재 인도내 관광지(문화유적지)의 입장료는 달러 혹은 루피로 지불이 가능합니다.
최근 몇년새의 달러화 약세로 달러로 입장료를 내는 것이 여행자들에게는 이익이었는데요.

입장료 징수의 주체인 인도 고고학회에서 입장료 징수 방침을 바꿀 예정이라고 합니다.

타즈마할의 경우 US$5+Rs500 or Rs750이었는데요. 이제는 Rs750만 받습니다.

US$5 or Rs250을 선택해서 낼수 있었던 꾸뜹미나르, 후마윤의 무덤, 아잔타, 엘로라, 마말라뿌람의 해변사원, 함피의 유적지들도 Rs250으로 내야합니다.

US$2 or Rs100이었던 붉은성, 잔시 성등도 무조건 Rs100만 받습니다.

인도 네팔 100배 즐기기에 나온 달러 요금의 입장료는 이제 잊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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